김은한 컬럼 [7] 일본 다시보기-후쿠오카 V
보스톤코리아  2009-03-03, 19:20:21 
다자이후 텐만구는 일본에서 학문의 신(神)으로 크게 존경받고 있는 스가와라노 미치자네 (管原道眞, 845~903)를 모시는 곳으로 다자이후에 905년에 건립되었다. 그는 일본에 천자문과 논어를 전수해준 백제 왕인 박사의 후손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헤이안(平安)시대 초기의 출중한 시인이며, 문장가요 철학자로 당대 최고의 학자였다.
그의 아버지 스가와라노 고레요시(812-880)도 뛰어난 학자로 일본 정부의 고관이었다. 어머니는 백제인 계열의 고관 요토모씨 가문의 딸이었다. 그는 11살때 시를 읊었고, 17세때 과거에 급제했으며 22세때 벼슬길에 들어섰다.
그는 29세때에 문장박사가 되고 조정의 고관으로 요직을 거치면서 삼대실록이라는 역사책을 편찬하기도 했다. 885년에 민부경(지금의 내무장관)이라는 벼슬에 있다가 899년에 우대신(右大臣)이라는 높은 자리에 앉게 된다. 그러나 899년에 호사다마로 좌대신 후지와라노 도키히라에게 모함을 받게 된다.
내용인 즉슨 당시 우다왕이 897년에 제1 왕자인 다이고왕에게 왕의 자리를 물려주고 자신은 상황(上皇)이 되어 섭정을 하고 있었다. 도키히라는 미치자네가 그동안 은혜를 입어왔던 우다상황(上皇)을 폐립시키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다고 모함을 한것이다.
모함이 먹혀들어 미치자네는 규슈의 다자이후 정청으로 좌천되고 그의 가족들도 교토에서 추방당하게 된다. 실의에 빠진 그는 2년 후인 903년에 다자이후에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의 나의 59세였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가 세상을 뜨자 그를 모함했던 사람들이 모두 이름모를 이유로 죽어가는 것이었다.
그를 모함한 도키히라 좌대신은 38세의 젊은 나이에 요절하고, 도키히라의 사위이자 다이고 천황의 아들 타이시 요시아키라신노 (太子 克明親王)도 급사하였으며, 연이여 질병과 천재지변이 끊이지 않게 되었다. 사람들은 미치자네의 원혼이 앙갚음 한 것이라고 수근거렸다.
지금 오사카에서 벌이는 텐진마쓰리(天神祭)는 억울하게 죽은 미치자네의 원혼을 달래기 위해서 시작한 축제였는데, 지금은 미치자네를 회고하면서 학업성취를 기원하고 전염병을 막고 예방하는 의미의 축제로 개념이 확장되었다.
그를 장사 지낼 때의 이야기이다. 시신을 옮기던 소가 지금 다자이후 텐만구 자리에서 꼼짝하지 않아서 할 수 없이 그 자리에 시신을 장사지내고 다자이후 텐만구를 세웠다고 한다.
학문의 신으로 추앙받는 스가와라노 미치자네를 모시고 있기 때문에 매년 1~2월의 입시철이 되면 일본 각지에서 수험생들과 부모들이 모여 들어 합격을 기원하고 복을 불러 들이려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매년 200만명이 몰려든다고 한다. 요근래는 교육열로는 세계 제일이라는 한국의 학부모들까지 가세하고 있다.
미치자네는 생전에 매화꽃을 아주 좋아했다고 한다. 경내에는 5천500그루의 매화나무가 있어서 매년 2월 중순부터 3월 중순까지는 매화축제(우메마츠리)가 열린다. 일본에서는 이곳의 매화가 제일 먼저 꽃망우리가 터진다고 한다. 이 매화를 헌상매화라고도 하는데 일본 각지로부터 미치자네를 추모해서 일부러 찾아온 매화나무들이라서 그렇게 부른다고 한다.
다자이후 텐만구는 전철역에서 도보로 12분 밖에 안되는 가까운 거리에 있다. 찾는게 아주 쉬운 것이 그곳에 사람들이 많이 몰려 있고, 도리이가 있는 곳을 찾으면 틀림없다. 신사로 들어가는 길은 자동차 2대가 겨우 지나갈만한데 사람들로 꽉차서 아주 혼잡하다.
길 양쪽으로는 우메모치(매화가지떡)를 파는 떡집이 줄을 서있는데 이 떡을 먹으면 병마를 물리치고 정신도 맑아지며, 시험에 딱 합격한다고 한다. 일본도 한국처럼 몸에 좋고 시험에 잘 붙는다면 만사오케이다. 일본 전역에서 주문이 폭주한다고 한다.
신사 입구에는 석비가 세워져 있는데 미치자네가 다자이후로 떠나면서 교토의 매화와 석별의 정을 나누면서 읊은 시가 적혀 있다. "동풍이 불면 매화의 향기를 바람에 실려 보내다오. 매화여, 주인이 없다고 봄을 잊지 말아다오."
한쪽 옆에는 청동으로 만든 황소(御神牛)가 한마리 누워 있다. 이 소의 뿔을 만지면 자기의 소원이 이루어 진다고 한다. 하도 많은 사람들이 뿔을 만져서 소뿔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다.
신사로 들어가려면 다이고 바시라는 과거, 현재, 미래를 의미하는 3개의 다리를 건너야 한다. 말로는 이다리가 속세와 내세를 갈라놓는 다리라고 한다. 첫번째 과거의 다리에서는 뒤돌아 보고 후회하지 말고, 두번째 현재의 다리는 당당하게, 세번째 미래의 다리는 행여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걸어가라고 한다.
본전 앞의 넓은 뜰에는 입시철이 아닌 10월인데도 합격을 기원하고 복을 비는 사람들로 꽉차 있었다. 본전 오른쪽에 있는 나무가 그 유명한 도비우메(飛梅) 나무다. 미치자네가 죽는 날 매화가지가 교토에서 규슈로 날아와 하루 밤새에 6천그루의 매화꽃을 피웠다는 전설의 나무다. 본전의 양쪽에는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부적을 파는 상점들이 줄지어 있었다.
스가와라노 미치자네의 출신이 왕인 박사의 후손으로 지금까지 알려졌지만 일본의 저명한 역사학자들은 그가 신라인의 후손이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내용인 즉슨 일본 간무천황때(781-806) 일본 고대 왕실 족보인 "신찬 성씨록"을 출간하였는데 하지 씨는 일본 개국의 천손(天孫)으로 신라에서 건너온 하지숙니의 후손으로 되어 있다. 고닌왕 원년에 왕이 하지씨의 성씨를 "스가와라노"로 바꾸게 하였다는 것이다.
일본고대 신도 연구의 권위자인 이마이게이이치 교수는 하지씨 가문의 조상은 이즈모神(신라계 왜왕실)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게이오 대학의 미즈노유((水野祐) 교수도 이즈모 민족은 신라인 이라고 단언하고 있다.
일본 서기에서도 일본의 개국신 스사노오 노미코토는 신라신으로 아들 이타게루신을 데리고 신라국으로 내려와서 그곳의 우두(牛頭)라는 곳에 살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하지씨의 조상이다.
명치유신때 동경제국대학의 저명한 사학자 구메구니다케(久米邦武, 1839~1931년)교수는 자신의 저서인 일본고대사에서 개국신 스사노오 노이코토가 신라인이고, 춘천에 있는 우두산(牛頭山)이 개국신이 살던 곳이라고 주장하면서 신도(神道)는 하늘을 모시는 오랜 풍속이라는 글을 발표했다가 황국사관에 어긋난다고 교수직을 면직당하기도 했다. 그래서 우두(牛頭)는 일본 개국신을 의미하는 말이 된것이다.
서기 947년에 교토 근처에 있는 스가와라노 미치자네의 고향에 그의 신주를 모시는 기타노 텐만궁을 세웠는데 개국신과 미치자네를 의미하는 황소 신상(神像)이 길목마다 보일정도로 많이 있다. 그가 신라계 개국신의 후손이라는 뜻이다. 어쨋든 간에 스가와라노 미치자네 학문신(學神)은 왕인의 자손이든 신라계 개국신의 자손이든 간에 한국인의 피를 물려 받은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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