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의 세상 스케치 -193화
보스톤코리아  2009-04-06, 17:21:08 
올겨울은 유난히도 보스톤에 눈이 많이 내렸습니다. 겨울에 태어난 이유일까, 겨울을 그 어느 계절보다도 좋아합니다. 사계절 중 코끝이 찡해오는 11월 초, 늦가을에서 초겨울 사이에서 느끼는 행복은 말할 수 없는 혼자만의 비밀입니다.

물론, 사계절을 누릴 수 있는 뉴-잉글랜드 지방(보스톤)에서 사는 것은 감사이고 축복입니다. 계절과 계절 사이에서 만나고 느끼는 행복의 누림은 말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느낌이기 때문입니다.

엊그제(03/21/2009)는 봄바람 따라 찰스강변(Charles River)을 걸었습니다. 매일 아침 남편의 배웅을 대문만 열고 손을 흔들지만, 요즘은 가끔 주말에 남편을 따라 함께 나갑니다. 남편의 일터(비지니스)를 가려면 집에서 보스톤 시내로 향하다가 보스톤 시내를 진입하는 Storrow Drive를 지나 찰스강변을 지나야 합니다.

그 강변을 따라가다 보면 비지니스가 있는 공간을 만납니다. 토요일 오전 남편을 따라나오다가 차창가에 닿는 햇살이 어찌나 곱고 따스하던지 남편에게 찰스강변 입구에서 내려달라 했습니다. 물론, 걸어서 남편이 일하는 곳까지 가려면 편안한 걸음으로 2시간은 족히 걸릴 거리입니다.

자동차에서 내려 하늘을 올려다보니 하늘은 파랗고 구름은 하얗고 강바람은 살랑살랑 볼을 스치며 철없는 아줌마를 유혹하고 맙니다. 그만, 모른 척 그 유혹에 슬쩍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긴 겨울에 있던 사람들이 봄을 무척이나 기다렸나 봅니다. 찰스강변을 따라 많은 사람이 조깅을 하며 걸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고운 햇살에 반짝거리는 푸른 물결의 찰스강에는 여러 개의 Crew rowing 연습을 하는 이들이 싱그럽게 보였습니다.

가끔씩 끼룩거리며 나는 갈매기와 철길을 오가는 전차들의 움직임은 살아 있음의 행복을 전해줍니다. 파란 하늘과 흰 구름 그리고 푸른 물결의 찰스 강가에서의 이 행복은 혼자서 누리기에는 아까운 행복입니다. 길게 늘어진 찰스 강가에서 바라보는 곳곳의 아름다움은 한 폭의 말간 풍경화입니다.

눈길이 머무는 곳 어디에서나 마음으로 만나는 아름다운 수채화입니다. 지나다 만나는 작은 호숫가 벤취에는 등 굽은 노인이 두터운 재킷을 걸치고 앉아 있습니다. 또한, 그 곁에는 그 외로움을 달래주기라도 하듯이 오리 두 마리가 정을 나누고 있습니다. 멀리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순간입니다. 언제 어느 곳에서나 꿈틀거리는 생명이 있는 곳에서는 서로의 가슴이 울림으로 남습니다. 말하지 않아도 울림으로 느껴지는 공명으로 흐르는 때의 느낌처럼 말입니다.

자연은 언제나 우리들의 친구입니다. 자연은 언제 어디서나 그 어떤 불평이나 욕심 없이 혼자서 유유히 제 걸음걸이 폭만큼만 걷고 제 호흡만큼만 흘러갑니다. 바쁘다고 보채지도 않고 느리다고 짜증을 내지도 않습니다. 그저, 사람만이 기다리지 못하고 안달하고 보채고 조바심에 애를 태우는가 싶습니다. 저 유유히 흐르는 찰스 강물을 바라보면서 내 마음 안에도 저 강물처럼 여유로운 마음으로 살기를 소망합니다. 자연은 언제나 베풀 뿐 준 것에 대해 바라거나 기다리지 않습니다.

'하늘을 바라보면 하늘을 닮고 싶고, 바다를 바라보면 바다를 닮고 싶었는데…. ' 찰스강변을 걸으며 가끔 멈춰 선 자리에서 강물을 바라보니 강을 닮고 싶어졌습니다. 출렁거리지 않고 고요히 흐르는 저 강물을 바라보면서 물처럼 살 수 있다면 하고 혼자만의 명상에 있었습니다. 쉼 없이 흐르는 저 강물을 바라보면서 물은 언제나 아래로, 저 아래로 흐른다는 잠깐의 명상이 '화두'로 남습니다. 물처럼 살 수 있기를 소망하면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겸손과 그 어느 것과도 부딪히지 않고 모두를 끌어 안아주고 감싸 안아주고 보듬으면서 흐른다는 사실에 깜짝 놀라는 시간이었습니다.

봄바람에 마음이 살랑거려 나섰던 길에 큰 행복 보따리를 얻어왔습니다. 마음에 가득 담아온 이 행복에 곁에 있는 님도 덩달아 행복해 합니다. 언제나 철부지 아내를 불평하지 않고 기다려주는 묵묵한 남편이 고마운 날입니다. '이 여자는 언제쯤 철이 들까?' 싶지만, 아직도 모를 일입니다. 혹여 나이가 들수록 더 철없어지지 않을까 염려스러울 뿐입니다. 그래도 어쩌겠는지요? 곁에 있는 한 남자는 이 여자가 사랑스러워 행복하다는 것을…. 봄바람 따라 찰스강변을 걸으니 마음 깊은 곳에서의 꿈틀거림이 봄을 예찬합니다. 마음 안에 있는 봄꽃들을 하나씩 피워보라고 유혹합니다. 이 봄에….

시인 신영은 월간[문학21]로 등단, 한국[전통문화/전통춤]알림이 역할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skybosto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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