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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다시보기-사가현 V
보스톤코리아  2009-04-13, 16:03:08   
명치 유신 때의 인류 고고학자 도리이 류조 씨는 BC 3 세기경에 한반도에서 철기문화를 가지고 도래한 한반도 이주민들이 선주민인 아이누 족을 축출하고 현재의 일본인이 되었다고 주장하였다.

인류 고고학자의 권위자인 고야마 수조 교수는 BC 3세기에 일본 전체 인구는 고작 7만 5천에 불과하였고 규슈의 인구는 겨우 6천명 뿐으로 규슈는 말 그대로 무주공산(無主空山)의 땅이었다고 한다.

한반도에서의 이주가 활발해진 야요이 시대에 접어들어서는 59만 5천명으로 급증하였고 나라시대(710~784)에는 무려 5백 40만 명으로 대폭 증가하였다고 한다. 따라서 예나 지금이나 일본인들의 조상은 한국인이라고 해서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BC 3세기경부터 AD 3세기에 걸쳐 이룩한 일본의 야요이(彌生) 문화 역시 한반도로부터 전래된 문화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규슈 사가현 간자키(신기)군에 있는 요시노가리(길야리)에서 야요이(BC 3세기~AD 3세기) 시대의 대규모 유적지가 발견되었다.

이곳에서도 어김없이 우리 조상들의 족적을 찾을 수 있다. 요시노가리 유적은 1986년부터 본격적으로 발굴하기 시작해서 지금까지도 계속하고 있는데 그 규모와 발굴 성과가 세계를 놀라게 하고 있다.
40 ha가 넘는 넓은 지역을 방책과 해자로 둘러싼 대표적인 환호집락으로, 제사를 올리던 건물, 창고, 도구제작소(거푸집) 등이 복원되어 있다.

탄화미(炭化米)와 함께 한반도 고대의 고유 유물인 무문토기, 절구공이와 세형동검(細形銅劍), 토기 아가리에 덧띠를 덧붙인 덧띠토기(粘土帶土器)가 출토되는 것으로 미루어 한반도의 벼농사가 규슈로 전래되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 외에도 가야의 김수로 왕능에서 나왔던 파형동기(巴形銅器)나 다뉴세문경(多紐細文鏡) 등 높은 지위에 있던 인물이나 왕능에서 발굴되는 상징물과 가야지방의 장례문화인 옹관묘(독에 시신을 넣어 장사 지내는 것)가 다수 발굴되는 것으로 미루어 이곳은 한반도에서 온 가야 사람들이 이룩한 부족국가였다는 것을 추정하게 한다.

중국 진(晉) 나라의 진수(233~297)가 저술한 3국지 위지동이전(魏志東夷傳)의 맨 끝부분 왜인전(倭人)에서 당시의 왜국에 대한 소개가 있다. 한반도는 삼국시대 초반을 지나 중반기에 다다를 때였다.

당시의 왜국은 100여개의 부족국가가 난립해서 서로 공격과 정벌을 벌이는 대혼란기였는데 30여 개 국가가 한 여성을 추대하여 왕을 삼았는데 그 이름이 히미코(卑彌呼)였다. 남편은 없었고 남동생이 도와서 나라를 다스렸다. 히미코가 다스린 여왕국의 이름이 야마타이(邪馬台)였으며 세대수가 7만호였다고 한다.
왜인전에서는 야마타이국의 위치가 규슈에 있었던 것으로 암시하고 있는데 요시노가리 유적이 그런 기록을 암시하고 있다.

히미코 여왕의 출신을 한반도로 추정하고 있는데 그 근거가 이렇다.
첫째, 당시 규슈는 청동기 후기에서 철기 시대로 넘어갈 때였는데 철기 문화를 지니고 도래한 한반도인이 세력을 잡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인류 역사상 청동기 문화가 철기 문화를 이겨본 전례가 없다.

둘째, 요시노 가리에 파형동기와 거푸집(제작소)이 있다는 것은 가야국에서 온 왕자급 인물이 이곳에 군사력을 지니고 있었다는 사실을 웅변하고 있다. 이것은 에가미 나미오 박사가 주장한 고대 한국의 기마 군단이 일본 중부 지역을 정벌했다는 기마민족 정복설과 합치된다.(일본의 말은 한국에서 전래된 것이다.)

셋째, 일본 고대사에서 사가현 일대를 말로국이라고 하는데 경남 밀양이 말라국이었다.

넷째, 사가현 남쪽에 있는 구마모토(態本)현 야쓰시로(八代) 시에는 야쓰시로 신사가 있다. 묘견(妙見) 공주를 제신(祭神)으로 모시는 곳이다. 그들은 묘견 공주를 야마타이(邪馬台)국의 여왕과 똑 같은 이름인 히미코(卑彌呼)라고 불렀는데 그녀가 한반도에서 왔다는 증거가 있다.

이 곳의 전설로는 묘견 공주가 거북을 타고 이 곳에 왔다고 한다. 이 것은 김수로 왕이 강림한 김해시 구산동의 구지봉(龜旨峯)의 전설과 연결되고 있다. 거북은 가야국의 건국신화와 연결된 가야를 의미하는 동물이기 때문이다. 야쓰시로 신사의 기와는 몸체는 거북의 형상인데 머리는 뱀의 형상을 한 기와가 있다. 또 가야 왕조의 문양인 물고기가 마주 보고 있는 쌍어(雙魚) 조형물이 신사의 지붕에 있다. 묘견공주(일면 히미코)가 한반도의 가야와 관련이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다섯째, <김해김씨 왕세계>의 기록에는 위지왜인전의 기록을 뒷받침하는 신녀(神女)가 남자동생과 함께 어디론가 떠났음을 묘사하는 구절이 있다. 선견(仙見)이라는 이름을 가진 왕자가 신녀와 더불어 구름을 타고 떠났는데 거등왕(김수로왕의 장남)이 강가에 잇는 바위에 올라가 선견왕자를 배웅하며 아쉬워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야먀타이국의 히미코 여왕이 남동생의 도움을 받았다는 것과 관련 지을 수 있다.

여섯째, 또 삼국사기에 기록되기는 김수로 왕은 허황옥(許黃玉) 왕비와의 사이에 10명의 왕자와 공주를 두었다. 장남은 2대 거등왕이고 차남은 허황후가 사망한 뒤 허씨 가문을 잇기 위해 성을 허씨로 바꾸어 김해 허씨의 시조가 되었다. 나머지 8명의 왕자 중 7왕자는 고령의 가야산에 들어가 도를 닦았으며 그 후에 지리산에 들어가 성불(成佛)한 후에는 구름을 타고 떠났다고 전해진다.

공주 2명 중에 한 명은 신라의 셔(昔) 태자에게 시집갔다고 기록되어 있다. 나머지 한명의 왕자와 한 명의 공주가 있는데 이들이 가야를 떠나 규슈로 떠난 선견 왕자와 묘견 공주라고 이종기 씨는 그의 저서 <가락국기)에서 주장하고 있다.

이상에 열거한 여러가지 이유와 요시노 가리에서 출토되는 많은 가야의 유물로 미루어 야마타이국의 여왕 히미코가 한반도의 가야국에서 건너온 요시노가리의 여왕이었다는 것을 역사학자들은 추정하고 있는 것이다.
나머지 7명의 왕자들은 어데로 간 것일까? 일본의 저명한 사학자인 아라타에이세이는 구름을 타고 떠났다는 7왕자가 현해탄을 건너 일본 규슈에 도착하여 일본 건국의 주역이 되었다는 논문을 발표한 바 있다. 그는 이 논문을 쓰고는 계속 우익 테러분자들의 협박을 지금까지도 받고 있다.

규슈의 남쪽 미야자키(宮崎) 현에는 쿠지후루다케(龜旨峯)와 바로 인근에 가라쿠니다케(韓國岳)라는 산이 있다. 쿠지후루다케는 가야의 시조 김수로 왕의 강림장소인 김해의 ‘구지봉’과 똑 같은 이름이고 가라쿠니다케의 ‘가라쿠니’는 ‘가락국’의 일본어 발음이다. 그런데 바로 이 두 산에서 일본 개국을 시작하는 천손강림(天孫降臨)의 신화가 시작되는 것이다. 가야국 김수로 왕의 개국 신화를 그대로 베껴 내고 있다.

일본 서기와 고사기에 일본의 초대왕인 진무(神武) 천황의 증조부이자 가야국의 7왕자의 화신(化神)으로 표현되는 니니기 노미코토가 쿠지후루다케(구지봉)에 강림하여 제전의식을 올린 후에 가라쿠니다케(韓國岳)로 올라가 북쪽의 한반도를 바라보며 “여기는 좋은 곳이다. 왜냐하면 가라쿠니(가야국)를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라는 조칙을 남겼다고 기록하고 있다.

니니기 노미코토의 조국이 가락국임을 강력하게 시사하고 있는 것이다.
고대 규슈는 가야인들에 의해 가야의 문화와 역사를 간직한 가야의 분국이었다는 것이 결론이다.

사가현의 까치
원래 일본에는 한국에서 흔히 보는 까치가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사가 평야에서 많은 까치를 볼 수 있게 되었다. 임진왜란 때 왜병들이 부산포에 쳐들어 왔을 때 까치가 군선의 돗대 위에 날아와서 “까치까치”하며 울어댔기 때문에 행운을 가져다 주는 길조로 여겨 사가현으로 가져 왔다고 한다.

까치는 일본말로 ‘승리’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이때 일본으로 건너간 까치를 일본 사람들은 까마귀와 구분하기 위해 한국말인 까치에다가 까마귀를 덧붙여서 가치카라스(까치까마귀)로 부르고 있다.
처음으로 일본에 조선의 까치가 건네진 것은 신라 진덕여왕 원년(647)에 김춘추가 사신으로 일본에 오면서 앵무새 한쌍과 까치 한쌍을 가져 왔다는 기록이 있지만, _은 까치를 가져 와서 번식 시킨 것은 임진왜란 때 시작한 것이다.

이렇게 건너간 까치는 사가현에서는 상서로운 새로 여겨져 많은 애호를 받아왔다. 1641년에 사가번의 번주 나베시마 카쯔시게는 까치를 보호하는 법까지 만들어 까치를 보호하여 지금은 꽤 많은 까치가 사가평야와 북규슈에 서식하게 되었다.

1923년에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고 지금은 이 까치가 사가현을 대표하는 현조(현조)로 지정되었다.
사가현의 봉건 영주 나베시마 집안은 조선과는 끈질긴 인연을 가지고 있다.

임진왜란 때 나베시마 나오시게는 조선의 도공들과 까치까지 사가현으로 가져왔는가 하면, 명치유신 때의 나베시마(鍋島直大)의 손녀 이방자(李方子) 여사는 조선의 마지막 황태자 이온 공의 황태자비가 된 것이다. 그녀의 어머니 나베시마 이즈꼬가 일본 왕족 나시모토(梨本宮守正)와 결혼해서 태어난 장녀가 이방자 여사였다. 이방자 여사는 한국에서 심신장애자 어린이들을 위해 자혜학교와 명휘원을 운영하면서 국가에 봉사했지만 그녀의 친가(일본왕실)와 외가(나베시마가)가 우리나라에 입힌 피해는 필설로 기록할 수가 없을 정도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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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한 칼럼니스트    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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