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의 세상 스케치 -194화
보스톤코리아  2009-04-13, 16:29:27 
어찌 우리 선조의 해맑은 지혜를 따를 수 있을까. 먼 타국에서의 생활이 고향을 더욱 그립게 하는가 싶다. 해를 묵을수록 새것보다는 옛것이 그리운걸 보면. 불혹의 언덕에 올라서야 어릴 적 어머니의 따뜻한 사랑과 정성이 그리워지기도 한다.

가끔 세 아이를 보며 지금은 세상에 아니 계신 내 속에 있는 머문 여린 빛 어머니를 본다. 언제나 당신 것은 없으시고 남편과 자식에게 내어주기만 하셨던 그 정성과 사랑 그리고 희생을 내 평생에 '어머니 흉내'나 내 볼 수 있을까.

엊그제는 시부모님께서 와싱턴 큰아들 집에 며칠 머무시다 보스턴의 막내아들 집에 다니러 오셨다.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오셨다니 딸아이는 멀리 대학 기숙사에서 주말에 6시간이나 버스를 타고 다녀갔다. 두 녀석은 할머니께서 만들어주시는 음식이 좋아 벌써 주문을 다 끝내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큰 녀석은 마른 오징어를 물에 불렸다 만든 '오징어 반찬' 그리고 막내 녀석은 '장조림'을 기다리고 있었다.

"엄마, 엄마가 만든 장조림보다 할머니가 만든 장조림이 훨씬 맛있어요." 한다.
말하다 말고 엄마에게 조금은 미안했던지….
"엄마, 나는 엄마가 만든 육계장이 제일 좋아요."
"식당에서 먹는 것보다 훨씬 맛있어요." 한다.
그래, 그 애교의 마음으로 고맙지.

우리 시어머님과 막내며느리의 인연도 20년이 되었다. 이제는 고부간의 갈등이라기보다는 서로 장, 단점을 꿰뚫고 있으니 그저 보듬어 주려는 마음이 터 커졌다. 처음부터 쉽기야 했을까. 시어머님께는 친정 동생들이 한 동네에 몇 살고 있었다. 막 시집 온 새댁인 며느리로서는 여간 힘겨운 시간이 아닐 수 없었다. 세월이 약이라더니…. 이제는 모두가 지난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는다. 가끔 그 시간으로 나 자신을 돌아다 볼 수 있는 귀한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언제나 다정다감한 시어머님은 동네의 친구들에게는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자기 시어머님처럼 며느리에게 잘하는 시어머니가 세상에 또 어딨니?" 하는 친구들의 한결같은 목소리.
"그래, 주변의 다른 시어머니들이 며느리에게 대하는 모습을 보면 참으로 고마운 분이시다."
물론, 자랑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내게도 결혼 초의 많은 시댁 가족들로 어려운 시집살이가 있었기에….

사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너무도 부족하고 철없는 막내며느리를 많이도 다독거려 주셨다. 지금도 그 따뜻한 사랑과 정성에 감사함이 가득하다. 가끔 시어머님 곁에서 부러움 반, 노여움 반, 질투 반으로 계신 시아버님께서는 이런 말씀을 하신다.

"당신은 좋겠어! 아들, 며느리, 손자들이 모두 당신만 좋아하니…. " 하시며 한바탕 웃음을 나눈다.
며칠 지내시며 시어머님께서는 아이들 반찬도 만들어 주시고 여기저기 주섬주섬 쌓인 먼지도 닦아주시고 설거지와 빨래도 거들어 주신다. 이제는 고부간에 '미안한 마음'보다는 '고마운 마음'이 세월만큼이나 쌓였는가 싶다.

"어머니, 그냥 놔두세요!" 하면서 제 할 일을 하고 있는 뻔뻔스런 며느리….
"얘, 우두커니 앉아 있으면 뭐하니? 이렇게 움직이면 너도 좋고 나도 좋은데…." 하시는 시어머니.
여느 시어머님들과는 다른 분이시라고 늘 여기고 살았다. 막내아들 집에 놀려오셔도 큰 며느리 흉을 단 한 번도 보신 일이 없으시니 늘 믿음이 가기 때문이다. 나의 부족함과 철없음을 흉 거리로 보시지 않으시리란 아주 오랜 믿음 말이다.

엊그제는 '건강뉴스'를 들추다 "수정과도 항암제?…한의연, 계피 항암효능 첫 확인"이라는 기사를 보게 되었다. 어려서도 어머니가 만들어 주셨던 수정과를 좋아했다. 맑게 비치는 수정과에 둥둥 떠 있는 곶감이 더 탐이 났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요즘은 가족의 건강에 관심을 모으니 건강 음식에 대한 정보를 들추는 버릇이 생겼다. 사실, 무엇이 좋다고 해서 굳이 만들어 먹는 성격도 아니면서 그래도 늘 귀에 담아두곤 한다.

"어머니, 계피가 항암작용을 한다네요?" 하며 호들갑을 떨며….
"당에도 좋고 항암효과도 높다는 발표가 있어요" 어머니께 말씀을 드렸다.
"그래, 몇 년 전에 이씨 아줌마가 계피가 당에 좋다고 곗피가루를 '환'으로 만들어 먹곤 했었잖니!" 하신다.
"그래요, 어머니? 그럼, 우리도 그 곗피가루로 '환'을 만들어 먹으면 좋겠네요."

하루는 시어머님과 며느리가 마주 앉아 시어머님은 곗피가루 반죽을 해주시고 며느리는 손바닥으로 동굴이며 '계피 환'을 만들었다. 며칠 후 이씨 아주머니께서 시부모님께서 다니러 오셨다고 인사를 하러 오셨다. '계피 효능'에 대해 얘기를 하다가 아주머니는 오랜 세월(만 6년)동안 '계피 환'을 만들어 드셨다며 즐거운 얘기가 끝이 없었다. 아주머니와 시어머니 그리고 며느리 셋이서 '계피 환'을 만들다 보니 진한 계피 향에 취해 그만 반나절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계피 향만큼이나 진한 삶의 얘기를….

시인 신영은 월간[문학21]로 등단, 한국[전통문화/전통춤]알림이 역할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skybosto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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