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의 세상 스케치 -196화
보스톤코리아  2009-04-27, 15:59:49 
한 이틀 봄비가 내렸다. 겨우내 움츠렸던 만물을 깨우려는 듯 하늘과 땅을 이은 빗줄기는 바람을 이끌며 세차게 내렸다. 밤새 잠에 들었던 모든 생명의 기운을 어우르듯이 새벽을 기다리며 봄비는 내렸다. 봄에는 모든 만물이 소생하는 계절이라 하지 않던가. 자연과 사람이 오가는 길목에서 스치고 만나는 저 바람의 기운이 바로 우리의 인연일진대….

봄바람이 살랑이니 마음도 싱숭생숭 하다. 어찌 이 봄바람을 나이 탓이라 할까. 저 들 가에 들풀들만이, 들꽃들만이 꽃을 피우는 게 아니라고 마음에서 자꾸 부추긴다. 아무리 숨기려 애써도 숨길 수 없는 것이 마음이지 않던가. 이미 마음에서는 꽃망울을 틔우더니 봄꽃을 피우고 있지 않던가.

"뭐, 기분 좋은 일이 있나 봐요?"
"내심, 속마음을 들킨 것처럼…." 얼굴이 붉어진다.

오랜 친구이자 남편인 한 남자가 가끔 아내인 내게 던지는 말이 있다.

"이 세상에서 걱정없는 사람은 당신 한 사람뿐일걸!" 한다.
"언제나 걱정없는 것이 걱정이라는 이 남자의 고마운 말 앞에서…."

늘 부족하고 철없는 나 자신이 가끔 부끄러워지는 순간이기도 하다.

언제나 가정에서의 큰일은 남편의 몫이다. 사실, 가정에서의 작은 일이라는 것이 더 번잡스럽고, 복잡하고, 어지러운 일이 아닐까. 그래도 큰일을 하는 남편이 든든하다고 믿어주니 이 남자는 제일 행복하단다. 이처럼 가정에서나 사회에서는 그 어떤 관계에서도 믿어주는 일보다 더 귀한 일이 또 있을까 말이다.

가정에서 아내가 남편을 믿어주고 남편이 아내를 믿어주는 일처럼 고맙고 감사한 일이 없다는 생각이다. 물론, 부모와 자녀와의 관계에서도 꼭 필요한 일이다. 그 일이 쉽지 않아 세 아이와 큰 소리로 싸우기도 하고 토라지기도 하지만 이내 마음을 열어 마주한다.

이 봄에는 모두가 시인이 된다. 가끔 봄비가 내리면 빗소리가 좋아 블랙커피 한 잔 탁자에 놓고 창밖을 바라보는 일은 또 하나의 행복한 시간이기도 하다. '작은 몽상가'가 되어 하늘을 날기도 하고 잠깐의 일탈을 꿈꾸어보기도 한다.

물론, 이내 제자리로 돌아오는 현실 앞에 놀라기도 하지만, 그 어떤 자리보다 귀중한 한 가정의 아내이고 세 아이의 엄마이고 며느리인 모습에 실망보다는 안도의 쉼을 얻기도 한다. 어쩌면 내 자리에 대한 안식 같은 거랄까. 저 높은 하늘을 더 멀리, 더 높이 날고 싶을 때 돌아올 수 있는 보금자리가 필요하듯이 말이다.

요즘 만나는 사람마다 모두가 힘들다고 한다. 여기저기 한숨의 소리 깊어지고 경제 침체로 말미암아 가정의 불화도 커지고 속이 상하는 일이 더욱 많아졌다고 한다. 자녀를 대학에 보내야 하는 학부모들로서는 더욱이 속이 탈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자녀가 원하는 대학에 보내고 싶은데 경제적인 여건이 허락되지 않아 보내지 못할 때의 심정이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일이다. 물론, 자녀의 마음은 또 어떻겠는가. 하지만, 인생이라는 큰 그림을 본다면 지금 대학입학의 관문은 아주 작은 밑그림에 지나지 않는다. 부모와 자녀 간에 서로 이해하고, 배려하고, 양보한 자리가 분명히 있으리란 생각이다. 그쯤에서 웃으며 마주할 수 있는 그 자리가 행복의 자리라는 생각을 한다.

요즘 시내에 나갈 일이 많아졌다. 젊음이 푸릇푸룻 한 풋내가 도는 젊은이들 곁을 걸어도 심장이 뛴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넉넉한 푸릇함, 언젠가 나도 저런 때가 있었음에 웃음지으며 지난 설렘에 가슴이 쿵쾅거리는 순간이다. 특별한 약속이 없으면 집안에서 혼자 있길 좋아한다.

그 누구의 관심 밖에서 있고 싶을 때가 있다. 하지만, 저토록 푸른 물결에 있으면 가슴이 뛴다. 주체할 수 없는 심장 박동소리에 젊은 피가 내 온몸을 돌듯이 말이다. 그래서 가끔 만나는 노인들과 마주하길 좋아한다. 저 젊고 푸릇한 기운을 마음으로 담아 저 노인들께 전달하고 싶기 때문이다.

이 봄에는 푸른 꿈을 노래하자. 겨우내 잠자던 감성을 일깨워 축축하던 몸과 마음의 기운을 흔들어 깨워보자. 저 들에 핀 들 가의 이름 모를 들꽃의 이름을 불러주며 우리의 잃어버린 이름도 불러주자. 살면서 꽃피우지 못한 마음속 씨앗들의 봄을 흔들어 깨우며 꽃피워보자.

이 봄에는 모두가 시인이 된다. 삶의 여정에서 만나고 느꼈던 그 많은 슬픔의 얘기들을, 기쁨의 얘기들을, 고통의 얘기들을, 행복의 얘기들을 하나씩 찾아서 '삶의 노래'를 불러보자. 이 봄에는 너도나도 모두가 시인이 되어보자.

시인 신영은 월간[문학21]로 등단, 한국[전통문화/전통춤]알림이 역할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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