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의 세상 스케치 - 201회
보스톤코리아  2009-06-01, 16:22:17 
오월은 모두가 푸르다. 산도 들도 하늘도 땅도 그 무엇 하나 푸르지 않은 것이 없다. 그들 속에 속한 나도 푸르고 너도 푸르고 우리는 모두 푸르다. 하늘거리며 오가는 바람도 둥실둥실 떠다니는 흰 구름도 오월의 푸른빛에 물들어 모두가 푸르다. 오월은 이토록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오른다. 생명에 대한 감사가 저절로 흘러넘친다. 겨우내 땅속에 있던 생명을 지닌 기운들이 봄기운을 들고 일어선다.

오월은 집 안팎을 청소하느라 집집마다 분주하다. 동네의 밖에서는 여기저기에서 잔디를 정리하느라 랜스캡핑 하는 landscaper의 기계 소리가 요란하다. 기계의 엔진 소리가 창틈을 타고 오르락내리락 거릴 즘 옆집 잔디를 깎은 뒤 우리 집 잔디로 옮겨와 시작한다. 잔디를 깎기 위해 걸리는 시간은 겨우 20~30분의 소음이지만 가끔은 귀에 거슬리기도 하다. 하지만, 잔디가 깎이면 깎일수록 풀향이 가득해 온다. 잘려나간 풀잎마다 남은 진한 향이 집안으로 비집고 들어온다.

엊그제(2009년 5월 23일)는 갑작스런 한국의 盧 전 대통령의 비보에 한참을 앉아 있었다. 고국을 떠나온 지 오래되었지만 늘 내 조국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야 변할 수 있을까. 한국의 국제,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변화 물결을 바라보고 느끼며 멀리서도 가까운 마음으로 있었다. 요즘 계속되던 시끄러운 한국의 <박연차 게이트> 뉴스를 접하며 섭섭한 마음과 안타까운 마음이 교차하고 있을 무렵 이렇게 커다란 비보를 접하게 된 것이다.

盧 전 대통령은 이날 가족들 앞으로 남긴 유서에서 "그동안 너무 힘들었다. 많은 사람을 힘들게 했다. 책을 읽을 수도 없다. 삶과 죽음이 하나가 아닌가. 화장해달라. 마을 주변에 작은 비석이나 하나 세워달라"는 내용의 마지막 인사를 남기고 떠난 것이다. 처음에 이 기사를 보면서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이었다. 어떻게 일국의 한 대통령이 '자살'이라는 방법을 마지막으로 선택했을까. 너무도 무책임한 행동이 아닌가 싶은 마음마저 들었다. 하지만, 한 인간의 죽음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많은 사람의 고통을 먼저 생각했던 그 깊은 사랑과 책임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한국의 그 어떤 정치나 어느 대통령을 지지하거나 반박하는 입장은 아니지만, 이번 盧 전 대통령의 서거를 통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믿고 따르던 사랑하는 한 사람을 잃은 애통함과 비통함에 젖은 국민의 소리없는 울음은 참으로 아름다운 슬픔이었다. 그 수많은 끊이지 않는 국민의 조문객들과 애도의 물결을 보면서 그의 뒷모습이 어리는 것은 '당신은 참으로 아름다운 사람이었습니다(You are so beautiful).'라고 마음에 남는다.

또한, '시민분향소' 통행제한을 하는 또 하나의 모습은 참으로 안타깝고 어처구니없는 모습이 아니던가. 뉴스 기사의 사진을 살펴보면서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다는 생각을 잠시 하고 말았다. "경찰은 시민 분향소가 설치된 대한문 앞은 물론 서울시청 광장, 청계광장 등에 모두 60여 대의 경찰버스로 차벽을 만들어 시민의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라는 내용은 더욱이 그랬다. 대한문 앞의 인도와 차도 사이는 경찰버스 20여 대가 이중으로 주차돼 분향소는 바깥과 완전히 차단됐다고 하니 어인 일인가.

사람의 손으로 어찌 흐르는 물을 막을 수 있을까. 사람의 손으로 어찌 하늘을 덮고 가릴 수 있을까. 세상에는 사람이 만든 사람의 법만 있는 것이 아닌 하늘의 법(道 /이치)이 있지 않겠는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손에 잡히지 않지만 귀에 들리지 않지만 '진정한 울림의 파장'인 공명의 기운이 흐르지 않겠는가. 푸른 잔디에 기계음 웅성거리고 날카로운 칼날이 지나 풀의 목이 잘리면 더욱 풀향이 짙어진다. 그 향기 눈에 보이지 않고, 손에 잡히지 않고 귀에 들리지 않지만 바람 따라 흘러 흘러 멀리멀리 퍼져 나간다. 잘린 풀잎의 향은 진하다.

시인 신영은 월간[문학21]로 등단, 한국[전통문화/전통춤]알림이 역할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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