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의 세상 스케치 - 204회
보스톤코리아  2009-06-22, 14:50:58 
한 가정의 주부로서 아내로서 세 아이 엄마의 역할은 그리 만만치 않음을 절실히 느끼며 산다. 시간이 흐르면 조금은 쉬워지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었지만 그것은 오산이었다. 아이들이 유아원을 마치고 유치원 그리고 초등학교까지는 그런대로 엄마의 말을 잘 들어주었다.

하지만, 학년이 오를수록 중학교 입학을 하고 중 3 정도가 되니 사춘기도 시작되려니와 학교 공부도 만만치 않아 아이들이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했다. 이 어려운 시기에 있는 아이들과 실랑이를 벌이는 것은 엄마로서 참으로 무모한 짓이라는 생각을 했다.

아이들이 커갈수록 아이들 각자의 생각을 들어주고 믿어주고 존중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마음처럼 행동은 쉬이 되지 않는다. 가끔 엄마에게 말대답을 시작하는 아이들에게 화가 치밀어 소리도 몇 번 지르기도 했다.

사실 아이들 교육은 만 6살 때 이민을 와서 미국식 교육을 훤히 아는 남편에게 일임할 일이었지만 바깥 사업에 바쁜 사람에게 아이들 키우는 일까지 시간을 빼앗기 싫어던 마음이다. 하지만, 혼자서 교육에 관한 일을 감당하기는 더욱이 힘겨운 일이었다. 아이들이 사춘기 고민을 하는 시간에 곁에서 엄마인 나도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던 시간이었다.

딸아이에게는 늘 미안한 마음이 남는다. 첫 아이라서 경험도 없기에 더욱 실수가 많아 고생했던 딸아이다. 연년생으로 남동생을 보았던 이유로 할머니 댁에서 많이 자랐다. 유아원에 입학해서는 미국 아이들에 비해 영어 단어가 많이 부족했다.

집에서 한국말을 더 많이 사용했던 이유이기도 했다. 남편은 아이들을 집안에서는 영어보다는 한국말을 하라고 가르쳤다. 물론, 그 사람은 한국말보다 영어가 더 편안했지만, 그 당시(1970년)에는 한국학교도 없어 한글을 잘 쓸 줄 모르고 한국말 역시 대학 졸업할 때까지 많이 서툴렀었다.

그래서일까, 이 사람은 아이들이 영어만 쓰다가는 한국말을 전혀 못할 수도 있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딸아이를 유아원에 보내 놓고 아이들이랑 공부하는데 지장이 있을까 많이 염려를 했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그런 일 없이 학업에 잘 따라가고 있었다.

딸아이는 어려서부터 엄마가 시키는 것을 싫다는 말도 못하고 다 쫓아다녔다. 나이 어린아이에게 피아노를 시작하기 위해 좋은 선생님을 찾는 일과 그리고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가르치고 기계 체조를 시키고 그리고 수영까지 그렇게 바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둘째인 큰 녀석은 한 살 터울인 누나 덕분에 많은 시행착오를 겪지 않고 조금은 쉽게 학습하는 법과 그 외의 과외 공부도 간단하게 시작할 수 있었다. 물론, 학교 외에도 토요일이면 한국학교에 다녀야 했으며 한국의 언어인 한글을 배우는 일은 즐겁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물론, 한국학교에 다니면 매주 토요일에 있는 즐거운 운동과 게임(야구나 축구 그리고 그 외의 스포츠)을 할 수 없는 안타까운 시간이기도 했다. 하지만, 한국 문화와 전통 그리고 역사를 하나씩 배우고 익히는 일도 타국에서 이민 2세대, 2.5세대로 사는 아이들에게는 귀한 공부였다.

막내 녀석이 유아원을 입학하고 초등학교에 다닐 즈음에는 마음이 더욱 여유로워졌다. 딸아이와 큰 녀석의 학교 공부와 과외 공부를 가르치며 경험했던 시간이 막내 녀석에게는 '자유로운 공부'를 하도록 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 녀석에게는 누나와 형에게 했던 '엄마의 강요'는 없었다.

물론, 막내 녀석의 고집도 있었겠으나 두 아이를 키우며 나름대로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꼭 중요하지 않음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래서 이 녀석은 학교 공부 외에 과외 공부보다는 운동(야구, 축구, 아이스하키)을 선택했다. 물론, 한국학교에도 한글을 배우기 위해 등록을 했으나 운동을 선택하는 이유로 한 학기밖에 다니지 못했다.

우리 집에서 정한 교육 방침이 하나 있었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집에 돌아오면 집에서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는 TV나 비디오를 보지 못하게 하는 규칙을 정했다. 주말(금, 토, 일)에만 TV와 비디오를 볼 수 있었다. 물론, 혼자인 경우는 몰래 TV를 볼 수 있었겠지만, 삼 남매가 함께 사는 집에서는 어려운 일임을 그 아이들도 깨달았나 보다.

세 아이가 자라서 9월이면 딸아이는 대학 2학년이 되고, 큰 녀석은 대학 1학년이 되고, 막내 녀석은 12학년(고 3)이 된다. 생각해 보면 참으로 빨리 지나온 시간이다. 너무도 부족했던 엄마의 모습이 세 아이에게 때로는 부끄럽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다. 하지만, 부족한 대로 열심히 세 아이에게 좋은 엄마가 되려고 노력했던 시간이었다.

시인 신영은 월간[문학21]로 등단, 한국[전통문화/전통춤]알림이 역할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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