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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한 컬럼 [18] - 일본 다시보기: 오이타현 3 (2)
보스톤코리아  2009-07-28, 14:26:51   
구마모토 성 정문앞에 있는 가토 기요마사 동상. 친환경 벽돌, 하수도 침전물로 만들었다.
구마모토 성 정문앞에 있는 가토 기요마사 동상. 친환경 벽돌, 하수도 침전물로 만들었다.

구사센리의 말고기 바베큐 집.
구사센리의 말고기 바베큐 집.
 

오이타현의 구중(九重)에서 서쪽으로 구마모토 현에 이르기까지의 높은 화산 지대를 말한다. 야마나미 highway가 공원을 서남쪽으로 가로 지르는데 도로 주위로 구로가와(黑川) 온천을 비롯한 크고 작은 온천과 구주 고원 지대의 자연 경관하며 아소산 주위로 광활하게 펼쳐져 있는 넓은 초원 구사센리(草千里)를 곁들여 아소산까지 볼 수 있는 일본 최초의 국립 공원이다.

아소산은 멀리서 보면 꼭 부처님이 누워 있는 형상을 하고 있다. 머리 부분이 제일 높은 다카다케(1592m), 가슴 부분이 네코다케(根子岳), 배에 해당되는 나카다케(中岳) 다리 부분에 해당하는 기지마 다케와, 에보시 다케(鳥帽子岳) 다섯 봉우리를 아소오악(阿蘇五岳)이라고 하는데 아소오악을 통틀어서 아소산이라고 부른다.

5개의 봉우리 중에 배에 해당하는 나카다케(中岳)는 아직도 화산재와 연기를 내뿜고 있는 활화산이다. 일본 열도에 있는 화산 중에 20여 곳은 언제고 폭발 가능성이 있는 활화산인데 나카다케산도 그 중의 하나이다.

최근에도 1958년과 1979년에 화산이 폭발하여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서 분화구 관광을 할 수 있는데 화산 활동이 심하거나 바람이 많이 불고 안개가 많이 끼면 관광을 못하게 하고 있다. 또 아황산 가스가 많이 끼면 관광을 못하게 하고 있다. 또 심장이나 폐 질환이 있으면 분화구에 올라가는 것은 삼가야 한다.

분화구 근처에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서 시멘트로 여러 개의 대피소를 만들어 놓고 있다. 분화구는 크기가 남북 1km 동서 400m 에 깊이가 100m쯤 되는데 날씨가 좋아야 분화구 바닥을 들여다 볼 수가 있다.

분화구 옆에는 지장 보살 상이 세워져 있다. 왜 하필 이곳에 “지장 보살” 이 계시는 것일까? 그에 관한 옛 이야기를 들어 보면 이해 할 수 있다. 그의 어머니가 지옥에 떨어지자 그는 어머님을 구제하겠다고 모든 것을 팔아 부처님께 바쳤다. 그의 효심에 감복한 부처님께서 지장 보살을 지옥으로 보내 주셨는데 지옥에서 중생들이 고통스러워 하는 것을 보고는 천상에서 지옥에 이르는 육도(六道) 의 중생을 모두 구제하는 그날까지 성불하지 않겠다고 말한 보살이다. 바로 이 분화구가 지옥과 같은 곳이기 때문에 모든 중생을 구제하려고 그가 이곳에 있는 것이다.

원래 지장 보살은 일본보다는 조선에서 많이 모시던 보살로 이조 성종 때 전북 고창군 아산면에 있는 선운사를 왕실의 원찰로 모셨는데 일제시대 때 못된 사람들이 불상을 훔쳐서 소장하는 과정에 훔쳐간 사람들의 집안에 우환이 끊이지 않아 결국은 일본 히로시마에 가있던 불상을 다시 찾아 모셨다는 이야기가 있다.

아소산 주위에는 억새풀이 우거진 광활한 초원과 온천이 있는 구사센리가 펼쳐져 있다. 한가롭게 풀을 뜯는 소나 말을 보면 아늑한 평화로움을 만끽할 것 같지만 이 산자락에 살고 있는 6개 마을 5만 명의 주민들은 언제 닥칠지 모르는 화산 폭발에 전전 긍긍 하면서 살고 있다. 일본사람들이 무서워 하는 것이 4가지가 있는데 아버지, 지진, 화재, 그리고 화산 폭발이라고 한다.


< 구마 모토 의 말고기>
원래 구마모토(態本) 는 향토 음식으로 말고기가 유명한 곳이다. 일찍이 조선과 일본에서는 말(馬) 의 적고 많음이 국력을 가름한다는 주장으로 말의 도축을 법으로 금지 시켜 왔었다. 그런데 정유 재란때 왜군의 선봉장 이었던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가 세가 불리 하여 경상도 울산성에서 조선과 명나라 연합군에게 포위 당했을 때 먹을 것이 부족해서 군마까지 잡아 먹게 되었다. 그것이 일본사람들이 말고기를 먹게 된 시초라고 하지만 일본 서기 에는 서기 661년에 탐라(제주도) 에서 말린 말고기를 수입해 먹었다는 기록으로 미루어 일본사람이나 조선사람들이나 모두 옛부터 말고기를 먹어 왔다고 하겠다.

도꾸가와 막부가 들어서면서 말(전쟁) 과소 (농사)의 도축을 법으로 금지 했지만 가토 기요마사가 다이묘로 있었던 구마모토는 에도(東京) 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법령이 제대로 실행이 안되어서 말고기를 계속 먹었다고 한다. 지금도 구마모토 에서는 바시시(馬刺)라고 부르는 말고기 회가 일급 향토 요리로 되어 있고 구사센리 곳곳에는 말고기 바베큐 식당이 널려 있다. 유럽의 러시아, 벨기에, 네델란드, 독일, 프랑스 에서도 말고기를 일급 요리로 치고 있는데 이들이 말고기를 먹기 시작한 것은 나폴레옹이 러시아를 침공했다가 동장군을 만나 크게 패하면서 식량 부족으로 말을 잡아먹은 데서 비롯했다고 한다.


<겨울 연가와 파친코>
일본에서는 도시와 시골을 불문하고 한국에서 “빠칭코” 라고 부르는 파친코 오락장이 없는 곳이 없다. 국민오락이라고 해서 남녀노소 온 국민들이 즐기는데 특히 30~40 대 아줌마 들에게는 남편만큼 중요한 것이 “파친코” 라고 한다.

구마모토는 다른 곳보다도 유난히 “파친코” 놀이장이 많이 보인다. 파친코는 1920년대에 시작 되었는데 이름이 파친코로 부르게 된 어원이 재미 있다. 쇠구슬이 기계에서 흐르는 소리가 파치 파치 또는 파친 파친으로 들리고 구슬 떨어지는 소리가 코로코로라는 소리를 내서 “파친코로”로 부르다가 로를 빼버리고 “파친코”가 되었다고 한다. 그것이 한국에 들어 와서는 “빠찡코” 가 된 것이다.

원래 일본은 카지노를 포함해서 도박을 법으로 금지하고 있는데 파친코는 경마 경륜과 함께 도박이 아니고 어른들의 놀이 문화라고 합법으로 인정 해주고 있다. 현재 일본 전국에 1만3천의 놀이장에 500만대가 넘는 파친코 기계가 있다고 한다. 경영주는 60%가 재일 한국인이라고 하는데 일본 사회가 한국인들의 취업에 차별을 두기 때문에 한국인들이 파친코 사업에 몰려 든다고 한다. 파친코를 하기 위해 일본사람들은 일년에 GNP의 3%를 소비한다고 한다. 국방비의 2배가 넘는다. 국민오락 한가지를 위해 엄청난 돈을 소비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에서 한국의 드라마 “겨울 연가” 가 히트한 다음부터는 “겨울 연가 파친코”라는 특별한 파친코 기계를 설치 해서 많은 손님을 끌어 모으고 있다. 특히 20대에서 40대 사이의 일본 여자들은 웬만한 먼 거리는 마다하지 않고 “겨울 연가 파친코” 찾아 몰려들고 있다. 준상(배용준)을 찾는 유진(최지우)을 상혁이(박용하) 돌려 세우는 장면에서 갑자기 눈이 내리는 장면이 파친코 기계에서 보이게 되면 그것은 대박중의 대박이 터지는 것이라고 한다. 세 숫자가 맞아 떨어지면 배용준과 최지우가 만나는 장면이 보여지고 겨울연가 주제곡이 울려 퍼지면서 구슬이 떨어지기 시작한다고 하는데 일본의 여성들은 욘사마 얼굴도 보면서 파친코도 할 수 있으니 이게 바로 세상 사는 재미라고 한다.

몇 년 전에 동경 긴자에서 본 것으로 이병헌의 대형 전신 사진을 건물 5층 전면에 전시한 것을 본적이 있는데 일본에서 한류스타에 대한 인기도는 우리의 상상을 훨씬 넘는 것이었다. 미안한 얘기지만 동경이나 오사카의 번화가에서 오고가는 일본의 남녀들은 주시해 보면 왜 그들이 한류에 열광하는 지 그 이유를 아주 쉽게 알게 된다.


<구마모토>
구마모토현은 규슈의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다. 동쪽으로는 아소 국립공원을 경계로 오이타현과 서쪽으로는 나가사키현 북쪽으로는 후쿠오카, 남쪽으로는 가고시마 현과 경계를 접하고 있다. 구마모토 현과 이름이 같은 같은 구마모토 시는 인구 63만 명의 큰 도시로 임진왜란 때 일본군의 선봉장으로 조선을 침공한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가 축성한 구마모토 성을 비롯하여 일본의 전통 정원으로 후지산을 포함한 일본을 축소 시켜서 표현 했다는 스이겐지(水前寺) 정원 등이 있어 역사 문화 광광 자원이 풍부한 곳이다. 깨끗한 하천과 녹지대에 구획이 잘된 현대 감각을 지닌 도시지만 80년 전에 운행하던 전차가 아직도 중요한 교통수단으로 시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하천의 폐수를 정화한 다음에 남아 있는 침전물로 만든 특별한 벽돌을 보도블록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웬만한 힘으로는 내려쳐도 깨지지 않는다고 한다. 구마모토하면 가토 기요마사를 빼 놓을 수 없다. 400여년 전에 그가 구마모토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가토 기요마사(가등청정)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함께 아이치 현 출신으로 히데요시와는 외가로 6촌간이 되고 후일에는 히데요시의 양자가 된다. 히데요시를 섬기면서 많은 공을 세운 대가로 그의 평생 내내 앙숙이고 숙적이었던 고니시 유키나가(소서행장)와 함께 구마모토를 남북으로 나눠서 다스리게 되었다.

임진, 정유재란을 끝내고 일본으로 돌아올 때 울산 지방의 수많은 건축, 토목, 도공들을 붙잡아와서 그들의 도움으로 구마모토 성을 축성하고 구마모토의 산업을 일으키게 되었다. 오늘날 구마모토에서 가토에 대한 평가는 아주 대단하다. 그의 동상이 있는가 하면 그를 신으로 모신 신사까지 있다.

구마모토의 산업을 일으키고 백성들의 생활을 윤택하게 만든 그의 리더십에 대한 존경의표시일 것이다. 그러나 그가 일으킨 산업 발달의 배후에는 한반도에서 억지로 끌려온 조선 사람들의 헌신이 있었다는 것을 간과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조선 사람들이 모여 살던 곳은 시내에서 30분 정도 서쪽에 있는 우루 산정(울산정)으로 이곳을 찾는 우리들의 심금을 울려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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