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의 세상 스케치 - 209회
보스톤코리아  2009-08-10, 13:03:01 
열 손가락 깨물어 아프지 않은 손가락이 없다는 옛 어른들의 귀한 말씀이 있다. 그만큼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은 그 어디에도 비할 대가 없다는 얘기일 것이다. 특별히 어머니의 사랑은 어른이 되어 자식을 낳고 늙어가면서도 잊지 못하는 애틋한 사랑이다.

그것도 자식이 여럿도 아닌 단 하나인 외아들이라면 더욱 애틋하고 간절하지 않을까 싶다. 살면서 기쁨과 행복한 시간보다 힘겹고 고통스러운 시련 가운데 더욱 간절히 떠오르는 이름이 바로 어머니다. 동네에서 가까이 지내는 가정이 몇 있다.

그중에서 한 부부의 외아들 녀석이 한국군대에 지원했다는 얘기를 몇 달 전에 전해 들었다. 그리고 엊그제 7월 초에 한국에 도착하여 중순경에 논산 훈련소에서 훈련을 받고 있다. 가끔 여러 가족이 모일 경우 엄마와 아들은 여느 모자지간 보다 가까운 편이다. 엄마랑 아들이랑 무슨 얘길 그렇게 하는지 소곤거리곤 했었다.

아버지도 조용하고 성실한 분이며 자신의 분야에서 인정받는 박사이지만 언제나 겸손한 분이다. 어머니도 활달하고 열정적인 성격에 곁에 있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친구다.

이 녀석은 3살 때 이민을 온 아이다. 한국말이 서툴긴 하지만 온순하고 조용한 성격의 아이라 어른들께 늘 맑고 밝은 착한 아들이라는 소릴 들었다. 공부도 잘하는 편이라 뉴욕의 명문대 2학년에 재학 중에 한국군대에 지원서를 냈던 것이다. 처음 이 얘길 들으며 선뜻 이해가 되질 않았다.

한국에서도 군대를 기피하는 경우가 있다는데 굳이 가지 않아도 될 군대에 지원한다는 얘기에 모두들 놀랐다. 이 녀석이 졸업을 하면 한국에서 살고 싶다는 것이다. 그리고 한국 남자라면 군대에 꼭 다녀오고 싶다는 것이 그 이유란다.

그 아들의 제안에 부모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을 그 마음이 자식을 키우는 부모의 심정으로 다가온다. 자식이 대학에 입학하고 처음 기숙사에 놔두고 올 때의 마음도 아리고 아픈데 군에 보낸 어머니 마음을 어찌 헤아릴 수 있겠는가.

세월이 좋아져 한국군대도 옛날 같지 않다지만, 이 8월의 무더위 속에 훈련으로 있을 자식을 생각하면 마음이 어찌 아리고 저리지 않을까 말이다. 그 부부를 가끔 만나면 아들의 안부를 물으면서도 왠지 미안한 마음이 든다.

"생손을 앓아본 일이 있는가?" 손톱 끝에 달린 거스러미 귀찮아 찝어당기면 금방이라도 아림에 펄쩍 뛸 것만 같은 아픔을 느낀다. 아이의 여린 손을 잡고 길을 걷다가 문득 놓아버린 엄마의 손에 밀려 아이가 넘어져 울면 속상했던 마음. 아스팔트 길에 넘어져 무릎에 상처로 피가 흐르면 내 몸에서의 떨려오던 전율을 기억하는가?

살이 떨리는 아픔과 뼈가 아리는 아픔의 경험을…. 어머니의 마음은 이렇다. 자식의 길에 언제나 사랑과 희생으로 묵묵히 있는 사람이 어머니다. 살과 피를 나눠가진 내 분신인 까닭이다.

아버지와 딸이 그렇듯 어머니와 아들은 불가분의 관계다. 우리 집에서도 딸아이를 보면 아빠를 참으로 좋아한다. 가끔 아빠랑 엄마랑 즐겁게 장난하는 것에 서운한 눈빛을 비추기도 한다. 뭐 이렇다 말할 수 없는 그런 것이 있기도 하다. 어릴 적 나도 아버지를 무척이나 좋아하고 따랐던 것처럼 말이다.

이처럼 어머니와 아들은 아버지도 눈치채지 못할 '달콤한 비밀'을 가지고 있다. 아버지도 아내(어머니)와 아들의 둘 사이에 끼어들지 못할 '모자간의 애틋한 사랑'이 있는 것이다.

선택은 언제나 나 자신에게 있다. 하지만, 많은 사람은 선택에 대한 용기가 없기에 이런저런 핑계로 이유를 만든다. 가끔은 자신의 인생행로에서 갑자기 멈춰 설 때가 있다. 또한, 그 멈춤의 시간은 바른 방향을 제시해주는 나침판과도 같은 역할을 하기도 한다. 다른 사람의 눈에 어리석은 판단처럼 여겨질 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 내 인생의 주인은 될 수 없기에 선택은 언제나 나 스스로 감당해야 할 몫이다. 내 삶의 주인은 바로 남이 아닌 나인 까닭이다. 인생의 시작점에서 자신의 갈 길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었던 녀석의 용기가 참으로 멋지고 아름답다는 생각을 했다.

이 녀석이 자랑스럽게 느껴지는 순간 그의 어머니를 떠올렸다. 하나밖에 없는 외아들을 선뜻 한국군대에 보낼 수 있었던 그 어머니의 용기도 참으로 아름답다는 생각을 했다. 그 녀석을 보면서 그의 부모님의 깊은 사랑과 지켜봐 줄 수 있는 여유를 또 배웠다.

여느 부모들처럼 안달하지 않고 보채지 않는 그 넉넉한 성품이 그 당당하고 용기있는 아들을 키워낸 것이리라. 살면서 이처럼 곁에 좋은 친구가 있어 행복하고 서로 주고받을 수 있는 마음이 있어 감사한 날이다. 8월의 무더위 속에서 훈련받는 녀석이 몸과 마음이 건강하고 삶의 깊이를 더욱 깨달을 수 있는 귀한 시간이길 기도하면서….

시인 신영은 월간[문학21]로 등단, 한국[전통문화/전통춤]알림이 역할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skybosto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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