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의 세상 스케치 - 214회
보스톤코리아  2009-09-14, 14:59:12 
"짐은 다 쌌니?" 하고 물어오는 친구에게 언제나 대답은 한결같다. "뭐 짐 쌀거나 있나!" 하고 툭 던지는 투박스런 말에 서로 너무도 잘 아는 우리는 함께 그냥 웃는다.

미국에서든 한국에서든 여행하면서 미리미리 짐을 챙기지 않는 버릇이 있다. 미리 계획하면 무엇인가 허전해지는 것은 타고난 성격 탓이리라. 아마도 성질 급한 주변 사람들은 가끔 답답해할 때도 있을 게다. 하지만, 모두가 똑같지 않은 사람과 세상살이에서 서로에게 배움이 될 수 있기에 또한 고맙고 감사하지 않을까 싶다.

몇 년 전 알고 지내던 지인(시인) 선생님을 통해서 그분과 가깝게 지내는 사진기자 분을 만날 수 있었다. 한국과 보스턴의 소식도 서로 가끔 전하고 전해 들으며 일상에서의 작은 인연을 맺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를 지나다 생활에 바쁘다는 이유로 한참을 잊고 살았다.

가끔 한국의 문화와 문학 뉴스를 접하다 보면 시인 선생님의 소식을 듣게 될 때 함께 떠오르는 사람이 바로 사진기자 분이었다. 한국에 계시는 그분들의 소식이 가끔은 궁금했지만, 이내 하루의 바쁜 일상으로 돌아오면 그만 또 미루게 되곤 했었다. 엊그제 하루는 반가운 만남에 깜짝 놀랐던 날이었다.

인연이라는 것이 이런 것이로구나, 하고 소스라치듯 놀라는 순간이었다. 살면서 서로 스치듯 만나는 일이야 있을 테지만, 한국의 서울에서도 먼 도시에 사는 사람이 넓디넓은 미국땅의 보스턴에서 약속도 없이 함께 만난다는 것은 놀라운 인연이었다.

어디서 본듯싶은 마음에 몇 번을 서로 스치듯 느낌만으로 있다가 그분이 먼저 물어오신다. 너무도 반가운 마음에 '인연'이라는 것을 또 깊이 생각해 보았다. 인연이란 이처럼 삶에서 서로 약속 없이 만나고 기약 없이 떠나는 것이지 않을까 싶다. 삶의 여정에서 무엇인가 붙잡고 놓치고 싶지 않은 욕심이 생길 때 가끔 '인연'을 떠올려 본다. 인연은 이처럼 물과 같은 것이라고, 구름과 같은 것이라고, 바람과 같은 것이라고 나 자신에게 타일러 주곤 한다.

자식이든, 부모든, 남편이든, 아내이든 간에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그 무엇 하나나 있을까. 그저 바라다 봐주고 기다려 주는 일이 서로에게 줄 수 있는 깊은 배려이고 사랑이라는 생각을 한다. 어떤 일에서든 사람이나, 일에 대한 열정과 욕심만으로 일의 성사를 이룰 수는 없다.

바로 일이든, 사람이든 서로 인연이 닿아야 하는 까닭이다. 물론 만남에서 좋은 느낌으로 남는 이도 있을 테고, 부담스럽도록 짐이 되는 이도 있기도 하다. 하지만, 이 모두가 인생의 큰 그림을 놓고 본다면, 밝은 느낌과 어두운 느낌이 조화를 이루어 아름다운 그림의 귀한 작품이 되는 것이다.

작은 조각의 모자이크가 모여 큰 그림의 명암(明暗)을 이루는 것처럼 이 모두의 인연이 우리의 삶에서 필요한 인연이었음을 고백하게 되리라. 창조주의 섭리 앞에 그만 무릎을 꿇고 마는 일이 얼마나 많던가. 이 넓고 큰 우주에서 먼지 터럭만 한 우리의 존재가 자연과 함께 호흡한다는 사실이 놀라운 오늘이다.

오늘도 마음이 설레고 떨려온다. 오늘 하루는 또 어떤 인연을 만나 함께 호흡하고 떨리는 가슴으로 공명할까 하는 마음에 이미 행복은 내 가슴에서 출렁인다. 오늘의 만나는 인연이 아주 오랜 미래에 이미 만났던 인연이었을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인생의 여정 중에 우리가 만나는 인연이란 이렇듯 신비롭고 경이롭다는 생각을 가끔 한다.

어떻게 만났을까, 너와 내가 그리고 우리가. 지금 이 시간에 이 자리에서 우리가 만났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때 명백한 운명(manifest destiny)을 지으신 신(神)을 마음으로 고백한다. 찰나와 영원 사이에서 만나는 인연 앞에서 크신 창조주의 놀라움과 작은 피조물인 나를 고백하고 돌아본다.

오늘에 만나는 작은 인연들이 얼마나 고맙고 감사한 이들인지 깨닫는 아침이다. 오늘, 지금 여기에서 스치듯 만나 지나는 작은 일이나 작은 사람일지라도 소홀히 여길 수 없는 까닭이다. 이처럼 서로에게 귀한 인연으로 남아 작은 기쁨과 행복의 씨앗이 되고 마음에서 오래도록 머물러 꿈과 희망의 씨앗이 될 수 있다면 삶의 나무에는 귀한 열매가 가득 열리리라. 서로의 인연은 계절마다 넉넉하고 풍성한 열매와 그늘이 되어주리라.

시인 신영은 월간[문학21]로 등단, 한국[전통문화/전통춤]알림이 역할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skybosto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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