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의 세상 스케치 - 219회
보스톤코리아  2009-10-19, 16:12:41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일은 어쩌면 운명처럼 다가와 오래도록 가슴에 남아 잊힐 듯 잊히지 않는 일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 '인연'은 삶에서 크든, 작든 간에 가슴에 오래 남아 내 삶의 한 부분으로 자리하기도 한다. 내가 처음 그녀를 보았던 날 너무도 초췌한 모습으로 있었다, 그녀는. 그 어떤 희망도 이 세상에는 없는 것처럼 모두를 놓아버린 여인의 모습으로 우리는 처음 그렇게 인연이 닿았다. 그녀와 나 우리는 그렇게 만났다, 운명처럼.

시간이 훌쩍 흘렀다. 세월의 무게와 길이와 함께 그녀와의 역사가 내 기억 속에 하나의 생의 모양으로 색깔로 남았다. 동갑내기의 한 여인을 아는 지인의 가정에서 만나게 되었다. 삶에 있어 인생에 있어 '사정'이라는 것은 누구에게나 있는 일이다. 그녀의 사정을 처음 듣게 되었다. 자신의 입으로 하고 싶지 않은 얘기를 곁에 있던 다른 사람으로부터 듣게 된 일이다. 갓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아이를 안은 여인을 보면서 처음에는 동정의 마음이, 연민이 먼저 일렁거렸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 갓 태어났던 아이가 벌써 7~8살이 되었으니 세월의 흔적에는 계절마다 남은 바람자국이 남아 있다. 혼자인 여자의 몸으로 아이 셋을 키우며 살았으니 그 세월의 뒤안길에는 짙게 남은 눈물자국이 보인다. 10여 년 전 그녀가 처음 미국의 유학길에 올랐을 때는 꿈으로 가득했던 한 남자의 여자이고 희망 가득한 한 '신학도의 아내'였다. 자상하고 사랑 많은 남편에게 좋은 아내로 두 아이 엄마로 살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세상에서 누리는 작은 행복에도 늘 감사한 마음으로 남편과 그리고 남편과 함께 걷는 길 위에 기도를 쌓으며 살았다.

유학 시절 신학대학원을 마치고 목사안수를 받으며 젊고 유능한 목사라는 신자들의 환호를 받으며 한 한인 교회의 담임목사가 되었고 아내는 사모가 되었다. 두 아이를 키우다가 막내 셋째 아이를 갖게 되었다. 타국 땅에서 귀한 자녀를 주시니 감사한 마음으로 있었다. 그렇게 목사 아내의 자리에서 소리 없이 뒷전에서 남편을 돕고 기도로 생활하는 보통 목사 사모처럼 지낸 시절이었다. 그리고 아이를 낳았다. 한국에서 딸의 해산을 돕기위해 친정 어머님이 와 계신 동안 남편을 잃는, 하늘이 무너지는 일을 만났던 것이다.

남편의 그늘에서 사랑스러운 아내로 있던 한 여자가 경험했을 암담함은 그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나이 어린 세 아이와 아내를 남겨둔 채 남편은 그렇게 그들의 곁을 떠났다. 현실을 받아들이기에는 시간이 필요했다. 자신의 분신과 같은 사람을 잃은 것은 한쪽 팔과 다리를 잃어버린 일보다 더 지독한 현실이었다. 이 모든 일이 꿈일 거라고 몇 번을 생각하지만, 곁에 없는 남편의 자리와 남은 세 아이를 바라보면 꿈이 아니었다. 바로 현실이었고 현실은 냉혹했다.

그 사모와 나와는 동갑내기라 서로 가까워지는 계기가 되었다. 물론, 부족하지만 가끔 아이들을 데리고 놀러 오면 식사도 함께하곤 했다. 도움이라야 뭐 특별할 게 없었지만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려 노력했던 시간이었다. 그리고 내게도 가족의 건강으로 걱정하는 시간이 찾아왔다. 한 3년 전 갑작스럽게 큰 녀석이 풋볼을 하다가 쓰러져 한 이틀 일어나지 못하는 어려운 시기와 미국의 경제 침체의 위기로 남편의 비지니스에도 이상이 찾아오던 시기였다. 그렇게 내 생활이 여유롭지 못하니 다른 사람에게 쏟을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무심함에 서운하지는 않았을까." 이렇게 생각을 하면서 미안한 마음이 앞서고 말았다. 통화 중 세 아이도 잘 자라고 있다는 얘기와 조그맣게 시작한 '옷수선 가게'도 그럭저럭 잘 되고 있다는 얘기에 감사하고 고마웠다. 이렇듯 나 아닌 다른 사람을 생각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인가 싶다. 내가 부족함 없이 여유로울 때 남에게 베풀었던 일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지를 새삼 깨닫는 날이다. 내가 어려울 때 남을 도울 수 있음이 참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시인 신영은 월간[문학21]로 등단, 한국[전통문화/전통춤]알림이 역할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skybosto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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