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얄궂고 神은 짓궂다
보스톤코리아  2009-11-09, 16:22:43 
"언니, 나야!" 맑고 튀는 고음의 목소리….
"그래, 오랜만이다!"
"잘 지내고 있지?" 하고 나는 동네에서 가끔 만나면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 동생에게서 몇 달 전 전화를 받았다. 서로 안부를 물으며 그동안의 얘기를 주고받는 사이 시간이 훌쩍 지났다. 그리고 이내 우리는 정해놓지 않은 약속을 하며 그렇게 서로의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늘 그렇듯이 삶의 핑계를 대며 또 그렇게 훌쩍 시간이 흘러 몇 달이 지나고 말았다.

이 동생은 남편이 미국 사람(백인)이다. 성격이 워낙 활달한 편이라 곁에 있으면 즐겁고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다른 사람에게도 늘 긍정적인 사고를 갖고 사는 친구다. 아이가 남매가 있는데 아이들 엄마 노릇도 톡톡히 하고 남편에게도 사랑받는 똑순이 같은 여자다. 일도 둘째 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열심히 자신의 일에 충실하며 살고 있다. 가끔 뒤끝이 없는 성격이라 사람 앞에서 속에 있는 말을 뱉어 놓는 버릇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마저도 마음이 순수해서일 게다.

지난 9월 중순에서 10월 초까지의 3주 정도의 바쁜 한국방문 일정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다. 아이들 셋이 모두 집에 있을 때는 여행하는 시간이 편안했는데 두 아이가 대학에 입학하고 막내 녀석만 집에 두고 다녀오려니 여간 마음이 놓이질 않았다. 여느 여행 때보다 남편에게나 아이들에게 국제전화를 많이 했던 이유도 다름 아닌 막내 녀석을 혼자 집에 두고 갔기 때문이었다. 막내 녀석도 운전을 하니 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텐데 아무래도 막내둥이라 마음이 놓이질 않았던 모양이다.

집에 도착하니 남편과 아들 녀석이 화들짝 반긴다. 가끔 부부도 떨어져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순간이다. 한국방문 중 도착하여 2주 정도는 정신없이 지나고 3주째 되는 때에는 어찌나 보고 싶은지 모른다. 아무래도 이 사람도 그랬을 것이라고…. 집에 도착하니 다음 날부터 동네 친구들이 하나 둘 전화를 해온다. 잘 다녀왔느냐고 안부를 물으며. 한 친구와 통화 중 동네의 아는 동생이 위암에 걸려 항암치료를 받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 바로 몇 달 전 전화를 걸어 화들짝 거리던 그 동생의 얘기였다.

이런 일을 만날 때마다 내 마음속에서 화가 치미는 것은 왜일까. 상대방에게 최선을 다하지 못했다는 자책이 먼저 들어서인지도 모른다. 늘 어리석은 모습에 속이 상하고 가슴이 아프다. 조금 더 건강하고 좋을 때 살갑게 대해주지 못하고, 남이 무엇인가 일이 잘 풀리고 뜻대로 잘 되어가면 왜들 다 배 아파하고 고개 돌리려 하는 것일까. 이렇듯 다른 사람이 몸이 아프다는 말이나 어려운 일을 겪는다는 얘기에는 왜들 다 마음이 여려지고 따뜻해지는 것일까. 이 모습이 다른 사람의 모습이 아니고 바로 내 모습이라는 생각에 속이 더 상한다.

가정 형편이 넉넉하지 않아 요즘 생활이 더욱 어렵다는 얘기를 들으며 마음이 더욱 아프기만 했다. 다른 분들의 도움을 받고 있다기에 주변에서 가깝게 지내던 우리 친구들도 몇 동참하기로 했다. 가깝게 지내는 동네의 동생으로부터 "언니, 언니가 편지는 써주면 좋겠는데…. " 하고 물어온다. "그래, 그렇게 하지 뭐!" 그렇게 대답을 해놓고 꽃 편지지에 글을 적기 시작했다. 처음엔 무슨 말을 써야 할지 몰라 한참을 앉았다가 편안한 마음으로 편지를 써내려 갔다. 내가 그녀에게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명랑한 그녀를 기억하는 일뿐이라고….

사람은 참으로 얄궂다는 생각을 했다. 남이 잘되면 배 아파하고 남이 안 되면 안쓰러운 마음이 드는 '사람의 마음'이란 참으로 얄궂지 않은가 말이다. 神은 참으로 짓궂다는 생각을 했다. 인생이라는 삶의 여정에서 사람을 이리저리 흔들어 보고 요리조리 재어보는 神은 참으로 짓궂지 않은가 말이다. 그래서 人生은 얄궂고 짓궂은 神의 장난처럼 느껴질 때가 가끔 있다. 남에게 보이지 않는 내 마음은 하루에도 수십 번씩 다른 사람을 죽이고 살리고 할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참으로 얄궂지 않은가, 사람의 마음이.

시인 신영은 월간[문학21]로 등단, 한국[전통문화/전통춤]알림이 역할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skybosto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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