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의 세상 스케치 - 225회
보스톤코리아  2009-11-30, 14:53:02 
초록이 푸르고 여름 나무들이 무성한 잎을 낼 때는 가을을 잊었습니다. 그저 물기 담은 촉촉한 하늘과 제멋에 겨운 바람이 그리고 오가며 흥얼이는 내가 있었을 뿐입니다. 초록 이파리들이 하나 둘 단풍 물들이고 들녘의 억새들이 바람 타고 휘파람 불어올 때쯤에야 가을이 오고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가을 나뭇가지 끝에 대롱 이는 마지막 이파리들을 보면서 어리석은 마음에 이제야 가을을 느끼는 것입니다.

지난 여름을 기억하며 언제나 넉넉하고 풍성한 따뜻한 여름날이길 마음으로 은근히 기대하며 살았는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내 행복에 겨워 다른 사람들의 아픔을, 고통을 아랑곳하지 않고 걸어왔는지도 모릅니다. 가끔 손 내밀어 잡아주던 그 손끝에는 이기적인 욕심이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나의 체면과 나의 교만이 보이지 않는 마음 가운데 남아 있었는지도….

당신의 그 사랑

기쁨을 위해 슬픔을 알게 하시고
행복의 달콤한 맛 대신
불행의 쓴맛을 일깨워주신 이
당신의 그 사랑을 기억합니다

고통 중에 환희와 감사를
삶 가운데 꿈틀거리는 살아있음의 고백
호흡하는 생명마다 움터 오르는
당신의 그 사랑에 감사합니다

세상에 대한 노여움일랑
가슴에 들어찬 울분일랑
하루의 삶을 통해 씻기고 닦인 마음
당신의 그 사랑을 고백합니다

사람과 삶에 대해 도망자가 되지 말고
삶 속에서 살아 꿈틀거리는 숨결
내일의 꿈과 희망의 빛이 되어
당신의 그 사랑이 소망이 됩니다

올가을은 유난히 뼛속까지 파고드는 바람을 만났습니다. 내 뼛속 깊은 곳까지 찔려오는 아픔과 고통의 느낌을 그대로 몸으로 마음으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남을 돕는다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나의 희생과 고통과 아픔이 살갗을 찌르고 가슴을 후벼놓는 일인지 이제야 알았습니다. 아니, '돕는다'는 그 말도 가당치 않은 일임을…. 내게 무엇이 있었을까. 다만, 내 곁에 있는 모든 것은 선물일 뿐인데 늘 내 것이라 여기며 살았습니다.

오랫동안 잠자고 잃어버렸던 죽어 있던 감각들을 하나하나 일으켜 세워주신 손길에 감사한 날입니다. 나의 기쁨은 언제나 내 몫인 줄 알고 살았습니다. 이렇게 감사하면 삶이 그저 행복한 것이라고…. 내가 웃고 있을 때 또 누군가는 슬픔에 고통에 눈물 흘리고 있었음을 몰랐습니다. 이제야, 조금은 알 것 같은 슬픔 속의 기쁨을 고통 속에 함께 하는 환희를 느끼는 것입니다.

그 모든 것들은 기쁨과 슬픔, 고통과 환희, 행복과 불행은 언제나 우리 삶 가운데 함께 하고 있음을 몸과 마음으로 깨닫는 날입니다. 부족한 작은 사람에게 베풀어주시는 사랑의 손길, 흘릴 수 있는 눈물을 오늘도 허락하시니 그 은혜에 감사한 날입니다. 나 아닌 다른 사람의 가슴을 나눌 수 있게 허락하신 시간이 너무도 감사하다고…. 내게 닥친 모든 일들이 잠깐은 힘겹고 고통이지만 먼 훗날 내게 필요한 일이었음을 고백하는 날, 아마도 세상과 함께 웃을 수 있는 기쁨과 행복의 날이겠지요.

계절마다의 샛길에서 꽃이 피고 지듯이 우리 인생도 삶의 길목에서 나고 지는가 싶습니다. 소리없이 찾아든 바람은 나뭇가지를 흔들고 흐르는 바람에 나뭇잎은 하나 둘 제 무게만큼만 흔들리다 떨어지는 낙엽을 보면서 깊은 사색에 잠겨보는 시간입니다. 가을에는 누구나 자연과 하나가 되어 삶을 노래하는 시인이 되기도 하고 인생의 깊이를 들여다 볼 수 있는 철학자가 되기도 하는…. 오늘도 호흡할 수 있는 날을 허락하시고 따뜻한 햇살과 마주할 수 있는 귀한 날을 주시니 감사한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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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 칼럼니스트    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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