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의 세상 스케치 - 227회
보스톤코리아  2009-12-14, 15:57:20 
한 해를 마무리해야 하는 12월, 무엇인가 나 자신을 뒤돌아보게 하는 때이다. 그동안 잘 살아왔는지, 제대로 살기는 한 것인지 2009년 한해를 돌이켜보며 깊은 생각에 머문다. 삶이라는 것이 지나고 보면 많은 것이 부족하기에 아쉽고 후회스러움 투성이다. 하지만, 그 속에는 아쉬움과 함께 고운 기억과 아름다운 추억이 함께 배어 있기에 또한 감사한지도 모른다. 삶에서 후회하지 않을 인생이 어디 있을까마는 이제는 후회보다는 하루를 감사히 누릴 수 있는 삶이길 소망해 본다.

엊그제는 가까이 지내는 친구와 Ipswich River Wildlife Sanctuary(northeastern Massachusetts, USA.)에 다녀왔다. 그녀는 자연을 사랑하고 자연이 우리에게 전해주는 얘기를 카메라 렌즈를 통해 담아 서로 교감하고 그 깊은 이야기를 함께 나눠가는 것이다. 친구로부터 겨울의 길목에서 더 추워지기 전에 함께 산책을 하자고 메일을 보내왔다. 그렇게 친구와 약속을 주고받으며 우리는 오전에 만나 즐거운 하루의 시간을 보냈다. 뉴-잉글랜드 지방인 보스톤은 일찍 추위가 오고 눈이 빨리 내리기에 12월의 숲 속을 거닐 수 있는 것은 어쩌면 행운인지도 모른다.

우리 집에서 Ipswich River까지는 30여 분 걸리는 거리지만 처음으로 가본 곳이었다. 자연이 사람에게 베풀어 주는 사랑은 이루 말할 수 없음을 익히 알고 있었지만, 또 그 깊고 너른 겨울 숲을 걸으며 감동을 하고 돌아왔다. 여름내 푸른 숲을 이루고 오색찬란한 아름다움을 맘껏 뽐냈을 저 겨울나무들을 만나며 사람의 삶을 인생을 잠시 생각했다. 모두를 떨어내고 홀가분한 몸으로 서로를 의지하고 지탱하며 서 있는 겨울나무를 보면서 이 세상은 사람이나 자연이나 혼자서는 살 수 없음을 깨달으며 감사의 고백을 했다.

'잎스위치 리버' 입구를 들어서며 멀리 보이는 겨울 숲의 풍경은 바람 한 점 흐르지 않는 고요하고 아늑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훤칠한 키에 카메라 가방을 어깨에 걸친 친구는 아마추어 사진작가가 아닌 프로처럼 보인 날이었다. 그것은 아마도 겨울 숲의 고즈넉한 풍경과 그녀가 너무도 잘 어울렸기 때문이다. 그 아름다운 풍경을 놓칠세라 나도 마음으로 한 컷 그리고 눈으로 한 컷을 찰칵 찍고 행복에 겨운 날을 보냈다. 이처럼 자연은 그 무엇도 바라지 않고 주기만 한다. 계절마다의 샛길에서 잎을 내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으며 그렇게….

숲을 한참을 들어서니 갈림길이 여기저기 나 있었다. 길은 여러 갈래지만 언제나 선택은 하나의 길밖에 없음을 알기에 우리는 마음 닿는 곳으로 발길을 놓았다. 둘이서 얼마를 걷다 보니 가을의 흔적이 여기저기에 남은 작은 호수가 보인다. 겨울 호숫가 가장자리에는 얼기설기 남은 갈대 줄기와 가을빛에 바랜 연잎 그리고 떨어져 흐르는 낙엽이 더욱 겨울 숲 속의 풍경을 덧칠해 주었다. 아름다움이란 굳이 화려하지 않아도 이처럼 빛바래지고 퇴색된 빛깔에서 더욱 깊은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것은 하루의 큰 깨달음이다.

나무를 보면 가끔 우리네 삶과 참 많이 닮았다는 생각을 한다. 언제나처럼 이 넓은 미국 땅에서 사계절을 만나고 느끼고 누릴 수 있는 뉴-잉글랜드 지방에 사는 것에 감사한다. 계절마다 만나는 나무를 보면서 잠시 삶에 대한 깊은 묵상(명상)을 할 수 있는 것은 큰 선물이고 축복이기도 하다. 봄이면 잎을 내고 여름이면 꽃을 피우고 가을이면 열매를 맺고 겨울이면 모두를 내어주고 홀가분한 몸으로 봄을 또 준비하는 나무를 보면서 삶에 대해 인생에 대해 깊은 감동으로 마주한다. 어떻게 남은 인생을 제대로 잘 늙어갈 것인지 생각하며 말이다.

그날은 친구 덕분에 고마운 하루를 보냈다. 겨울 숲 속에서 만난 호숫가의 청둥오리와 겨울나무 가지 끝을 오가며 우리를 따라오던 작은 새들, 손을 내밀어도 도망하지 않고 다가와 손끝에 앉는 그들을 보며 사람인 나를 잠시 생각했다. 짙푸른 하늘 아래 깊은 숲 속에서 생김새가 다른 사람을 만나도 밀어내지 않고 노여워하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는 저 순수한 작은 새들을 보면서 평화를 떠올려 본다. 자연과 사람이 함께 호흡하며 공명하는 귀한 생명임을 깨달으며 서로 공생공존하는 일은 무엇일까. 아마도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는 일일 게다.

시인 신영은 월간[문학21]로 등단, 한국[전통문화/전통춤]알림이 역할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skyboston@hanmail.net

ⓒ 보스톤코리아(http://www.bostonkorea.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작성자
신영 칼럼니스트    기사 더보기
의견목록    [의견수 : 0]
등록된 의견이 없습니다.
이메일
비밀번호
그녀의 이름은 '또오순이(똑순이)' 2010.01.11
신영의 세상 스케치 - 230회
신영의 세상 스케치 - 228회 2009.12.21
행복한 루저(loser)
신영의 세상 스케치 - 227회 2009.12.14
Ipswich River - Wildlife Sanctuary
신영의 세상 스케치 - 226회 2009.12.07
한 남자가 남기고 간 기억과 상처
신영의 세상 스케치 - 225회 2009.11.30
11월의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