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이름은 '또오순이(똑순이)'
보스톤코리아  2010-01-11, 15:03:19 
그녀를 처음 만났던 기억이 새로운 느낌으로 눈 덮인 겨울 오후의 소묘로 다가온다. 이 여인은 한국에서 오래전에 이혼을 하고 두 아들을 친정어머니께 맡겨놓고 '아메리칸 드림'으로 뉴욕에서 8여 년을 살고 있었다. 타국에서 불확실한 신분과 언어의 장벽 그리고 혼자의 몸으로 하루를 산다는 것은 그리 만만치 않은 삶이다. 자신의 힘겨운 생활보다도 한국에 있는 자식을 위해 맡은 일에 열심히 노력하고 절약하며 살았던 한 여인의 삶이 그 세월이 참으로 눈물겨운 삶이었음은 짐작으로도 알 수 있었다.

뉴욕에서 8여 년을 혼자 살다가 보스턴에 사는 사촌 언니로부터 재혼에 대한 제의를 받게 되었던 것이다. 혼자 사는 것도 물론 버거웠지만, 살면서 신분에 대한 문제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던 차에 재혼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보스턴에 살고 있던 이혼남(우리 부부와 가깝게 지내던 아저씨)과 교제를 시작하게 되었고 몇 개월 후 재혼을 결정하게 되었던 것이다. 재혼이라는 것이 서로에게 자식이 딸려 있고 함께 한 가정을 이룬다는 것이 간단하지 않았지만, 두 사람은 재혼을 결정하였고 재혼 후에도 부부는 행복하게 살고 있다.

삶 속에서 느끼는 일이지만, 때로는 너무도 행복해서 불안해지는 경험을 가끔 해보지 않았던가. 두 부부가 1년 반을 넘게 살면서 어찌나 행복하게 사는지 젊은 부부들도 부러워할 정도이다. 오십 중반에 있는 아저씨와 오십 초반에 있는 언니는 곁에서 보는 이들에게 더욱 행복을 선물한다. 초혼은 설혹 실패했는지 모르지만, 삶을 진실하게 깨닫고 겸허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나이 오십의 길목에서 만나 재혼을 선택한 이 두 사람이 오래도록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이다. 하지만, 두 사람의 겨운 행복에 잠깐의 이별이 운명처럼 다가온 것이다.

한국에 있는 두 아들과 친정어머님이 그립기도 하고 큰아들이 결혼을 앞두고 있기에 한국을 한 번 다녀오기로 했던 것이다. 물론, 신분 문제 해결이 첫 번째 이유이기도 하고 한 번은 넘어야 할 산이기에 지금 잠깐의 이별을 선택한 것이다. 곁에서 다른 사람들이 농담 삼아 툭툭 던지는 말에 언니가 상처받지 않았으면 하고 내심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한국에 가면 미국에 다시 들어오지 못할지도 모른는데..." 하고 가까이 지내는 짓궂은 남편들이 농담을 던지는 것이었다. 그중에 속한 우리 집 남자는 아내에게 혼쭐이 나기도 했다.

살림이면 살림 일이면 일 그 무엇 하나 소홀히 여기지 않는 '또오순이(똑순이) 여사'에게 우리는 늘 감동을 한다. 음식도 어찌나 맛나게 하는지 그녀의 김치 담그는 솜씨는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정도이다. 남편과 함께 일하기 위해 잠시 자신의 일을 손 놓고 있지만, 단 한 번도 그 일에 대해 불평이나 찡그리는 얼굴을 본 적이 없다. 지혜롭고 씩씩한 그녀는 너무도 사랑스러운 여자다. 언제나 맑고 밝은 그녀는 다른 이들에게 행복을 선물하는 상큼한 꽃과 같은 존재다. 몇 개월 동안의 이별이지만 잘 지내고 반가운 모습으로 다시 만나길 기도한다.

오래도록 엄마와 떨어져 살아온 두 녀석과 어린 자식을 품에서 떼어놓고 도망치듯 머나먼 타국으로 떠나왔었을 그 엄마(언니)의 가슴이 오늘따라 오래도록 내 마음에 남는다. 또한, 고사리 손 같은 어린 외손자 둘의 손을 잡고 등하굣길을 걸었을 외할머니 그리고 멀고도 먼 이국땅을 향해 떠나가는 홀로된 딸의 뒷모습을 보았을 친정어머니의 모습은 가히 가슴이 아리고 시리다. 이별 후 십여 년의 세월 속에 모두의 가슴은 얼마나 짙고 검은 숯덩이가 쌓였을까. 두 외손자를 보면서 멀리 있는 딸을 생각하며 눈물 흘렸을 어머니가 눈에 선해져 온다.

어제는 언니에게서 손수 뜨게 바늘로 한올 한올 짜서 만든 '브라운 칼라의 숄'을 선물로 받고 그 정성과 사랑에 감동하고 말았다. 그 뜨게 바늘의 한땀 한땀의 정성처럼 나도 그 언니와 가족을 위해 기도를 시작하기를 소망했다. 오늘 아침 브라운 숄을 어깨에 걸쳐보며 오래도록 거울 앞에 서 있었다. 어깨를 감싸오는 포근하고 따뜻한 느낌이 바로 다정한 언니의 사랑 같아 눈물이 핑 돌았다. 그녀의 평탄하지 않았던 반평생 삶을 조금씩 알아가며 씩씩한 그녀에게서 깊은 뿌리의 에너지를 느낄 수 있었다. 앞으로의 그녀의 꿈과 희망을... 잘 다녀와요, 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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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 칼럼니스트    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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