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의 세상 스케치 - 231회
보스톤코리아  2010-01-19, 12:50:23 
하루는 교회의 목요성경공부 시간에 여러 사람이 모였다. 성경공부를 시작하기 전 서로 이런저런 얘길 나누고 있었다. 여럿이 모이면 일주일 동안 있었던 얘기를 주고받느라 모두 바쁘다. 그중 한 사람이 이런 얘길 한다.
"삶은 계란이요."라고 하면서 말의 억양이 중요하다는 것을 덧붙여 웃음을 터뜨린 일이 있었다.

아마도 그날 성경공부 주제가 그에 가까웠다는 기억이다. 삶은 단 한마디로 잘라 말할 수 없는 각자가 풀어가야 할 인생 여정의 명제다. 길고도 먼 인생길의 답을 찾으려 애쓰면 힘들고 하루의 삶을 맞고 누리면 쉬운 일일 게다.
김 추기경이 2003년 11월 18일 서울대 초청 강연에서 "만득이 시리즈 아세요? 만득이가 삶은 무엇인가라는 고민에 빠졌어요. 그걸 알기 위해 생각을 하다가 정처 없이 기차를 타고 가는데 누가 지나가면서 '삶은 계란, 삶은 계란'(웃음)'이라고 하는 거죠"라고 말했다는 일화가 김 추기경의 모습을 잘 설명해준다. 지난해 2월 선종한 김 추기경은 언제 어느 곳에서나 웃음과 유머를 잃지 않고 엄숙한 장엄미사나 주교 서품식에서도 추기경은 유머감각으로 좌중의 긴장을 풀어주곤 했다고 한다. 삶을 몸과 마음으로 실천하며 살았던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삶은 계란이요.'라는 이 일화는 그저 웃어넘기기에는 아까운 참으로 가슴에 와 닿는 귀한 얘기다. 계란이 병아리가 되기 위해 부화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3주(21일) 정도라고 한다. 물론 어미 닭의 품 안에서 따뜻하고 안전하게 준비를 마쳤을 때의 얘기일 것이다. 계란이 병아리가 된다는 것은 어른이 되어서 생각해도 신기하고 신비로운 얘기다. 어미 닭은 계란을 꼭 안아 가슴에 품어줄 뿐이지 제 스스로 나올 때가지 기다리는 것이다. 빨리 만나고 싶다고 해서 어미 닭의 부리로 부화 중인 계란을 쪼아대거나 깨뜨리는 일은 없다.

가끔 삶에서 이렇듯 말 못하는 동물이나 미물들에게서 배울 때가 많다. 자연의 섭리(神의 섭리)를 거스르지 않고 순리를 따라 기다릴 줄 아는 지혜를 그들에게서 배우기도 한다. 때로는 사람만이 기다릴 줄 모르고 보채고 안달하고 계절보다 앞서 달려가는가 싶다. 자식을 키우며 느끼는 일이지만 역시 마찬가지란 생각이다. 부모의 마음은 자식이 여느 자식들보다 먼저 달리길 원하고 더 멀리 더 높이 뛰기를 원한다. 자식이 무엇을 원하는지조차 묻지도 않고 무작정 부모가 원해서 정해놓은 목적지까지 달려가라고 자식의 등을 떠밀기도 한다.

조급한 부모의 마음으로 자식의 공부도 대신 해주고 싶어 안달이다. 긴 인생 여정을 놓고 생각해보면 진정 대학 4년의 시간은 참으로 '찰나'와 '순간'처럼 짧은 시간일지도 모른다. 또한, 인생의 진로를 놓고 그 짧은 시간 속에서 자신의 장점(달란트)들을 어찌 제대로 다 찾을 수 있겠는가. 설혹 찾았다 하더라도 살면서 자신이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것을 찾을 기회가 주어지면 그쪽으로 흘러간다는 것이다. 인생의 선배로서 부모들이 겪었던 시간을 되돌아보면 자식에게 조금은 더 기다려줄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 역시 쉽지 않은 일이다.

계란은 어쩌면 진정 우리의 인생과 너무도 닮은꼴이라는 생각을 한다. 부활은 생명을 말하기에 더욱 귀하고 아름다운 것이다. 사람도 어머니 뱃속에서 달수를 다 채우지 못하고 일찍 나오면 인큐베이터(incubator) 안에서 바깥세상과 마주하기 위해 기다리지 않던가. 이처럼 부화하기 전 부리에 쪼여 일찍 세상 밖으로 나온 병아리는 생명과의 사투를 벌여야 한다. 그뿐일까, 애벌레가 나비가 되는 과정도 마찬가지다. 땅에서 구르던 굼벵이가 나비가 되기 위해서 겪어야 하는 고통이 바로 제 몸에서 하얗게 뽑아 뒤집어 쓴 것이 고치가 아니던가.

그래, 가만히 생각해도 '삶은 계란이다.' 어미 닭의 품 안에서 부화를 꿈꾸는 병아리는 오랜 기다림과 인내를 배우는 것이다. 계란이 병아리로 부화하기 전 속에서 여린 부리로 단단한 계란 껍질을 깬다는 것은 아픔과 고통이다. 생명은 이처럼 산고를 겪지 않고, 통과하지 못하고는 얻을 수 없는 부활의 참의미인 까닭이다. 고통 없이 얻어지는 것이 이 세상에 어디 있고 또 무엇이 있겠는가. '삶은 계란이요' 생각없이 들으면 흘려버릴 수 있을법한 작은 일화가 삶을 다시 한 번 깊이 들여다볼 수 있는 큰 의미로 다가온 날이다. 삶은 계란이요! 01/13/2010.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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