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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에 깃든 우리 역사 : 경복궁 (京福宮)
보스톤코리아  2010-02-22, 12:16:52   
북한산을 등지고 있는 광화문 모습.
북한산을 등지고 있는 광화문 모습.
한강 (漢江) 하류 한성(漢城)은 일찍이 3국시대 시절부터 쟁탈의 요지였다. 이곳을 장악하면 한반도를 석권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백제도 나라의 중심 지역인 부여나 공주를 마다하고 북쪽 변경인 한성에 수도를 정한 이유도 이곳이 지정학적으로 아주 중요한 위치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양은 고려때에도 왕기 (王氣)가 서린 곳이라는 소문이 많았던 곳이다. 그래서 개경에 수도를 정하고도 한양에는 따로이 궁을 지어 남경 (南京)으로 불렀었다. 고려말에 한양 땅은 이씨가 도읍할 곳이라는 소문이 무성해지자 고려 조정은 이씨 (李)를 상징하는 오얏나무를 한양 땅에 심은 뒤 한참 자라면 베어버려 이씨의 기운이 크지 못하게 하였다. 또는 일년에 한번씩 왕이 한양으로 행차해서 왕의 옷을 땅 속에 묻게 하였는데, 이것으로 땅 속에 숨어 있는 이씨의 씨앗을 제압하려는 의도였다고 한다.

그러나 대세의 흐름을 바꿀 수는 없었다. 1392년에 이씨의 조선 왕조가 태어나게 된 것이다. 태조 이성계는 고려왕실과 권문세족들의 근거지인 개경을 떠나 옛부터 명당으로 알려진 한양으로 도읍지를 옮기려고 무학대사에게 명하여 한양땅에 궁궐터를 찾아보게 하였다.

무학대사는 지금의 답십리, 왕십리 지역에서 지형을 살피던 중 때마침 소를 몰고 가던 한 노인의 “십리를 더가서 찾으라”는 가르침에 따라 10리를 더가서 조선왕조의 법궁인 경복궁터를 잡았다고 한다.

그 뒤부터는 이곳을 무학대사가 10리를 더 갔다고 해서 왕십리 (往十里)라고 부르게 되었고, 무학대사가 도읍지를 정하려고 이곳을 밟았다고 하여 답십리(踏十里) 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어찌 되었든 우여곡절 끝에 경복궁의 터는 잡았는데 궁궐의 향(向)을 어느쪽으로 세울거냐는 문제로 의견이 갈렸다.

도읍지를 정하는데 주도적 역할을 맡아왔던 무학대사는 풍수지리에 따르면 화산(火山)이라고 하는 관악산의 화기가 직접 경복궁에 마주치면 화재의 위험이 크니 궁궐을 동향(東向)으로 지어야 안전하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개국 1등공신인 정도전은 중국의 모든 궁궐들이 남향이고 동향이 없다고 하면서 북악을 등지고 우백호에 인왕산, 좌청룡에 낙산을 거느린 궁궐을 주장했다.

태조는 정도전의 의견을 따라 지금의 경복궁을 건축한 것이다. 그대신 관악산에서 발생하는 화기를 막기 위한 풍수장치를 곳곳에 설치하게 되는데 그중의 하나가 숭례문이었다. 한양 사대문의 현판이 모두 가로로 쓰여 있는데 유독 숭례문 (崇禮門)의 현판은 불이 타오르는 형상을 만들려고 세로로 쓰여 있다. 숭례문의 숭(崇)자도 불이 타오르는 모습이고 또 禮라는 글자도 음양 오행에서는 “불” 을 뜻한다고 한다.

숭례문의 모든것이 불을 나타내고 있다. 숭례문의 불로 관악산의 불을 막는다는 풍수 이론에 따른 것이다. 그것뿐이 아니다. 숭례문 곁에 남지(南地)라는 못을 파서 화기를 누구려뜨리고 있다. 또 숭례문에서 경복궁으로 가는 길은 직선 도로로 만들지 않고 지금의 신세계 백화점, 종각을 지나 우회전해서 광화문길로 경복궁에 이르게 하고있다. 관악산의 불이 경복궁을 직접 찾아올수 없게 하려고 직선 도로를 만들지 않고 우회도로를 의도적으로 만든 것이다.

그것뿐이 아니다 육조(六朝)거리 북쪽 끝에 있는 사헌부 앞에는 불을 먹는다는 해태상을 만들어서 관악산에서 들이닥칠 불을 삼켜 버리려고 만반의 준비를 시켜놓고 있다.

비록 풍수(風水) 장치지만 당시에 화재에 대해 노심초사하게 된 이유가 있다. 당시에는 조선은 물론이고 중국과 일본 모두 궁궐의 화재만큼 두려운 것이 없었다. 국력을 기울여 오랜 세월 끝에 세운 궁궐이지만 모두가 목재로 만들었기 때문에 작은 불씨에도 건물이 삽시간에 타버렸다고 한다. 이에 숭례문에서부터 경복궁을 보호하기 위한 풍수방화(防火)장치를 나름대로 마련한 것이다. 그래서 경복궁을 보고 싶으면 숭례문에서부터 보기 시작해야 하는데 숭례문이 불타버린 지금에는 적어도 교보문고 앞에서부터 꼭 있어야 할 장소에 자리잡은 경복궁을 머리속에 그리면서 광화문 쪽으로 걸어가는 것이 순서가 될 것이다.

북악산에서부터 경복궁의 주요건물인 교태전, 강녕전, 사정전, 근정전, 흥례문을 지나 정문인 광화문에 이르기까지 이 건물들이 일직선 상에 놓여 있기 때문에 일직선의 연장선 상에서 주위의 풍광과 함께 경복궁을 바라 보아야 한다.

세인들은 경복궁을 가리켜, 풍수지리에 꼭 합당하게 건축한 최고의 걸작품이라고들 말한다. 풍수는 중국 고대로부터 시작한 땅에 대한 인식 체계를 가리키는 말이다.

말 자체의 뜻은 바람을 저장하고 물을 얻는다는 장풍득수(藏風得水)의 준말이다. 사람이 땅에 정착하여 집을 짓고 마을을 이루면서 땅을 갈아 물을 보태어 곡식을 심고 먹다가 죽어서 다시 땅에 묻히는 것이 인생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땅을 존중하고 땅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이다.

우리 생활에 적합하고 좋은 땅을 찾으려는 욕구가 농경이 주산업이었던 예전에는 지금보다도 훨씬 강렬했던 것은 아주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 시대의 사상과 이념에 맞는 좋은 땅을 찾으려는 욕구가 풍수라는 개념으로 발전 되어 온 것이다.

경복궁이 풍수지리에 딱 맞게 건축 되었다는 칭찬을 영국사람의 입을 통해서도 듣게 된다. 구한말 서울에 온 영국의 여류 탐험가 이사벨라 비숏은 “자연에 피가 흐른다면 서울의 도성(都城)에다 그 피를 수혈하고 있는 경복궁이다.” 라고 말했다. 주위의 자연과 좋은 조화를 이루는 경복궁을 일컬은 말이다.

사이토오(寺內正毅) 총독때 일본인 일제 강점기인 민예 연구가로 야나기 요시무네 (柳宗悅)라는 사람이 있었다. 후일에 보성 중학교 교주였던 전형필 씨와 개성 박물관장이었던 고유섭 씨와 함께 조선의 문화재를 보존하려고 많은 애를 쓴 고마운 사람이다.

광화문을 옮기고 흥례문을 철거하여 총독부 건물을 그 자리에 건축하자 경복궁을 애도하며 “엄청난 규모인데도 여분이라고는 조금도 남김 없이 짜여진 미(美)하며, 자연을 뒤돌아 보며 초석을 정하는데 그곳 아니면 한치도 어긋나면 안되는 정확한 곳을 잡아 지은 경복궁, 이렇게 아름다운 미(美)가 지금 비명을 지르고 있다. 석조의 괴물을 들어앉힌 바람에 그 우람한 정전(正殿)을 정면에서 볼 수 있는 어떤 위치도 상실해 버렸다.”고 애석해 하고 있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86년 외국인에게는 최초로 야나기 요시무네 씨에게 문화훈장을 수여했다. 일제가 우리 국권을 강탈해 간 뒤에 조선의 상징물이었던 5개의 궁궐은 소멸의 대상이었다. 경복궁 터에 조선총독부 건물을 짓고 궁궐을 헐어 그 재료를 가지고 이등박문의 사당을 지은 것은 바로 그런 의도에서 비롯한 것이다. 근정전, 경회루, 향원정, 아미산을 제외하고는 모조리 파괴해 버렸다. 원래 경복궁의 건물들을 모두 합치면 7,482칸이나 되는 엄청나게 큰 궁궐이었다. 지금10여 개의 궁궐을 복원했지만 모두 700칸에도 못미친다. 고작 원래의 10%만 남아 있거나 복원된 것이다.

김은한 (보스톤코리아 컬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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