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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에 깃든 우리 역사 4 : <금천(禁川)과 영제교(永濟橋)>
보스톤코리아  2010-03-29, 11:35:15   
금천과 영제교
금천과 영제교
 
궐 내각사로 통하는 유화문, 바로 옆에 절반만 보이는 건물이 기별청
궐 내각사로 통하는 유화문, 바로 옆에 절반만 보이는 건물이 기별청
 
영제교에서 보는 근정문
영제교에서 보는 근정문
 흥례문을 넘어서면 맞은쪽의 근정문 사이에 1천 명 정도는 족히 수용할 수 있는 너른 마당이 보인다. 이곳을 정전(正殿) 밖에 있다고 해서 외조(外朝)라고 부르는데 국가 주요행사를 이곳에서 많이 치뤘다고 한다.
어느 궁궐을 막론하고 외조에는 풍수지리 사상에 따라 서쪽에서 동쪽으로 금천(禁川)이라는 명당수를 흐르게 하고 그 위에는 금천교(禁川橋)라는 다리를 설치하고 있다. 금천교 다리 이름은 궁궐마다 다른데 경복궁의 금천교는 영제교(永濟橋)로, 창덕궁은 비단금자 금천교(錦川禁)로, 창경궁은 옥천교(玉川橋)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경복궁을 처음 지을 때 궁궐 앞을 흐르는 명당수가 없어서 태종 대왕 때 북악산의 물을 끌어들여 도랑을 파고 이 금천을 만들었다고 한다. 궁궐의 물줄기는 한강 물줄기의 반대로 흘러야 하기 때문에 경복궁의 금천도 서쪽에서 동쪽으로 흘러 경복궁을 벗어난 다음에는 경복궁 동쪽 궁궐 벽을 타고 동십자각 앞을 지나 남쪽에서 청계천에 합류하게 되어 있다.

영제교 앞 뒤 코너에는 사자를 닮은 4마리의 서수가 강바닥을 뚫어져라 감시하고 있다. 혹시 물길을 타고 궁성으로 침범할 지 모르는 잡귀를 막아내고 있는 것이다. 광화문 옆에 있는 서수는 뿔이 없는데 이놈들은 뿔이 한개씩 달려 있다. 임금이 계신 정전을 지키려고 더욱 무서운 놈들이 경계를 서고 있는가 보다.

이 금천(禁川)은 임금이 계시는 성스러운 곳과 백성들이 사는 외부 세속 사회와의 경계선이다. 그래서 금천교를 지나면 임금이 계시는 곳이니 마음 가짐을 단정하게 추스리라는 주문을 서수들이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임금이 계신 궁궐 안에서 일어난 소문은 백성들이 알지 못하게 하고 있다. 즉 궁 안에서 생긴 소식은 금천을 경계로 밖으로 나갈 수 없게 되어 있다. 그러나 백성들의 입장에서는 못듣게 되어 있는 소식일수록 더욱더 알고 싶어 진다. 이렇게 알고 싶어하는 것을 궁궐의 궁(宮) 과 금천의 금(禁)자를 섞어 궁금(宮禁)하다고 하게 된 것이다.

한양 도성 안에 살더라도 금천 밖에서는 궁궐의 소식을 모르는데, 사대문(四大門) 밖에 살고있는 문외한(門外漢: 문밖에서 사는 사람)들이 어찌 궁궐의 소식을 조금이라도 알겠는가? 그래서 몰라도 너무너무 모르는 사람을 “문외한” 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이런 문외한들도 자신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도성 안에 들어올 수 있었지만 배불숭유 정책으로 불교를 억누르는 정책을 강제하던 조선시대에는 도성 안에 절을 건립 할 수도 없었고 중들은 도성 안에 들어오는 것을 일절 금하고 있었다. 그러니 중들이 궁궐 소식을 듣는다는 것은 엄두조차 낼 수 없는 일이었다.

불교에는 두 가지 타입의 스님이 있다. 참선, 경전공부, 포교를 맡고 불교의 교리를 연구하는 이판(理判) 스님과 절의 재산 관리를 맡은 사판(事判) 스님 두 종류가 있다. 그래서 “이판 사판이다” 라는 말은 이판이 되든 사판이 되든 밑바닥 인생인 중의 신분이 달라질 리 없다는 말이다.
이처럼 국가 수뇌 기관의 소식을 백성들이 알고 싶어 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 없는 사실이다. 조선시대에도 궁궐의 정보를 모두 공개하지는 않았지만 아주 조금은 양반 계층에 한해서 제한된 정보를 제공해 주고 있었다.

외조(外朝) 서쪽에 궐내각사로 통하는 유화문이 있고 그 옆에 2칸 폭의 아주 조그만 건물이 있는데 이곳이 궁궐의 정보를 배포해 주는 기별청(奇別廳)이었다. 기별청에서는 승정원(지금의 공보처와 비서실)에서 처리한 기별(奇別)을 아침에 기별지(奇別紙)에 적어서 조보(朝報)를 만들었는데 내용은 주로 임금의 말씀이나, 조정에서 결정한 일, 사회뉴스나 관리의 학정, 패륜 등의 기사를 계도적 차원에서 올리곤 하였다.
각 관아에서는 아침마다 기별서리(奇別書吏)를 보내 조보 원본을 필사해 사대부나 양반들에게 기별군사(奇別軍士)를 보내 전달하곤 하였다.

조보를 인쇄하는 것은 금지하였는데 그 이유는 인쇄 기술이 미숙한 것이 아니다. 조보의 내용을 기밀로 인식해서 국내외에 전해지면 화근이 되거나 악용될 것을 우려해서 제한 발행하려고 필사를 고집했다고 한다.
선조 11년에 민간에서 조보를 인쇄했다가 임금이 진노하여 벌을 받고 금지 당한 일이 있었다. 조보는 일시보고 버리는 것이지 보관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기별은 대궐에서 나오는 제한된 정보이기 때문에 부족하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는 단어다. 그래서 음식을 부족하게 먹는것을 가리켜 ”간에 기별도 가지 않는다” 라고 말을 하는 것이다. 음식을 많이 먹고는 “간에 기별을 많이 보냈다.” 라는 말은 절대로 쓸수 없는 것이다.

이번에는 궁녀들의 이야기로 화제를 바꿔 보자. 조선시대에는 흰 피부에 머릿결이 고운 여자를 미인으로 삼았는데 “방앗간집 딸” 이면 이런 미인이 될 수 있다고 하였다. 방앗간에서 나오는 쌀겨를 세발 세수의 세제로 마음놓고 사용할 수 있는 여자는 방앗간 집에서나 가능했기 때문이다. 돈이 많은 사람들은 쌀을 곱게 갈아서 그것을 물에 타서 쓰기도 했는데 돈이 없이 허드렛일을 하는 여인들은 쌀뜨물로 세안을 하거나 밥솥을 열어 김을 쏘이기도 하였다고 한다. 이렇게 하면 피부의 각질을 제거하고 수분을 보충하는 세안 효과가 있다고 한다.

경복궁에 있는 수많은 궁녀들 역시 피부 미용에 공을 드리는 것은 예외가 아니었다. 당시에는 전라도 고부(古埠) 에서 생산되는 녹두(鳥豆)가루로 만든 세제가 때가 잘 빠진다고 해서 진상품으로 선택 받았는데 경복궁에 있는 많은 궁녀들이 콩가루 녹두가루로 조두질을 많이 해서 금천의 물이 우유 빛으로 변색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금천을 젖내(유천 乳川)라고 부르기도 했었다. 여인들의 미에 대한 집착은 고금동서를 막론하고 끊임없이 추구되어온 진실 중의 진실이다. 클레오 파트라가 진주가루로 세안하고 폭군네로의 처 사비나가 매일 나귀젖으로 전신 화장을 한 사실은 아름다운 피부를 가꾸기 위해 올인하는 여인의 의지라고 하겠다.

18세기 유럽에서는 머리 샴푸의 주원료가 밀가루였다. 문제는 여인들이 샴푸를 하는데 밀가루를 너무 많이 사용해서 먹을 식량이 부족하게 된 것이다. 결국 영국 정부는 샴푸하는 데 밀가루를 사용하면 벌금까지 물리는 지경이 된 적이 있다. 근세 유럽에서는 주름살을 감추려고 납가루를 얼굴에 칠했다가 납 중독으로 사망까지 했다고 하다.

우리 나라도 명성 황후가 납이 들어 있는 연분을 사용해서 얼굴색이 푸르스름하게 변했다는 기록이 있다. 사실 조선에서 진짜로 좋은 전통 샴푸는 5일에 피는 창포(彰浦)잎을 달여서 우려낸 액체 세제와 창포를 말려서 찧어낸 가루 세제라고 한다. 경복궁의 궁녀들에게 창포 세제를 미리 귀띰 해주었으면 미스 경복궁이 되는 것은 떼논 당상일텐데 아쉽기만 하다.

김은한 (보스톤코리아 컬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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