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의 세상 스케치 - 241회
보스톤코리아  2010-03-29, 14:33:44 
대학 2학년에 재학 중인 우리 집 큰아이, 딸이랑 엄마랑 둘이서 처음으로 여행을 시작했다. 언제나 딸 아이에게는 사내 녀석들보다 더욱 미안한 마음이 든다. 첫 돌을 막 지내며 연년생으로 남동생을 둘을 두었으니 엄마의 따뜻한 사랑이 늘 그리웠던 아이다. 엄마의 마음은 딸에게 늘 미안함이 더욱 크기만 하다. 그래서 언젠가부터 딸이 결혼하기 전에 둘이서 여행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어느 날 하루, 딸아이에게 엄마의 오래된 생각을 전했다. "엄마, 뭘 결혼할 때까지 기다려요?" 하고 화들짝 웃는 딸과 엄마는 그럼 슬슬 시작을 해볼까.

그날 저녁에 두 모녀는 지혜를 짜내어 아빠(남편)에게 슬쩍 얘길 꺼냈다. 아마도 이 세상의 아빠들은 딸 얘기라면 그 어떤 얘기라도 들어주고 싶어하지 않을까 싶다. 우리 집 아빠(남편)도 여느 아빠들처럼 딸의 부탁이라면 사내 녀석들의 부탁보다 빨리 답을 주는 편이다. 어쨌거나, 아내가 똑같은 얘기를 시작했더라면 조금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을까 싶다. 두 모녀의 얘기를 듣던 한 남자는 남편과 아빠의 자리에서 고민도 없이 딸의 편을 들면서 그래 그거 좋은 생각이다. 그럼 어디로 다녀오고 싶은데 하고 묻는다.

딸아이는 어려서부터 '디즈니 영화'를 빼놓지 않고 보았던 아이다. 또한, 영화를 좋아하는 편이라 아주 오래된 고전 영화도 따로 빌려다 볼 정도니 그 아이의 취향이 남다르다는 생각이다. 세 아이가 어려서 후로리다 올랜도의 디즈니 월드에는 두 번이나 다녀왔는데 딸아이가 또 그곳에 다녀오고 싶다는 것이다. 딸아이가 뱃속에 있을 때 남편과 함께 한 번 다녀온 것까지 합하면 네 번째 찾는 곳이기에 조금은 망설여졌지만, 딸아이의 그 해맑은 행복한 표정에 그만 그곳으로 다녀오기로 결정을 내렸다.

사실, 요즘 세계 경제가 불황이니 가정경제도 마찬가지로 흔들흔들 거리는 것은 모두가 겪는 일일 게다. 우리 집은 두 아이가 대학에 다니고 있는데 9월이면 막내 녀석까지 대학 입학을 앞둔 형편이니 세 아이를 대학을 보내는 일이란 여간 만만치 않은 일이다. 그래도 마다하지 않고 딸과 아내를 위해 마음과 시간과 경제적인 도움을 주는 남편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딸아이가 '디즈니 월드'에 가고 싶다는 얘기에 남편(아빠)은 여름방학에 가면 좋겠다는 얘기를 한다. 여름은 너무 무덥지 않겠느냐고 되묻는 아내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우리는 이렇게 마음에 담고 생각으로만 있었던 '딸과 엄마의 여행' 계획을 실천에 옮기게 되었다. 늘 가족과 함께 움직이던 여행에서 일 년에 한 번쯤은 엄마와 딸 그리고 여자들만의 숨겨놓은 비밀 얘기를 나누기로 했다. 엄마와 딸은 그렇게 봄 방학 일주일을 '디즈니 월드'에서 보내게 되었다. 그동안 딸아이의 마음에 담아두었던 작은 고민거리와 앞으로의 계획들을 하나하나씩 들으며 엄마는 많이 행복했다. 또한, 대학 2학년이니 이성에 대한 궁금증과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도 묻고 답하며 여자들의 비밀 얘기에 시간가는 줄 몰랐다.

오랜만에 엄마랑 딸아이랑 고마운 시간을 가졌다. 딸아이가 고등학교 때는 공부하느라 스트레스도 쌓이고 한참 사춘기를 보내는 시기라서 대화를 하려다 서로 감정이 상하는 일이 많았었다. 이번 여행이 우리에게는 귀한 시간이었으며, 서로에게 그동안 쌓였던 작은 상처들을 하나씩 씻어내는 작업에 큰 도움을 얻는 기회가 되었다. 딸아이는 엄마에게 불만이 있었던 작은 씨앗들도 조금씩 이해하려는 마음에서 지울 수 있었고, 엄마는 딸아이에게서 섭섭했던 작은 일들도 서로 얘기를 나누며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면서 씻어낼 수 있었다.

월요일(15일~20일) 새벽에 보스턴 공항(로건 에어포트)을 떠나 3시간 후쯤 후로리다 올랜도에 닿고 30여 분 후에 '디즈니 월드'에 도착하였다. 그 다음 날 아침 일찍부터 서둘러 준비하고 카페테리아에 가서 아침을 먹고 그곳에서 운행하는 '디즈니 버스'를 타고 오갔다. 하루 온종일(9~10시간)을 걷다가 기다리고 놀이 기구를 타고 또 걷다가 다시 또 기다리다가, 먹다가, 가끔 급한 볼일도 보고 그렇게 늦게서야 숙소에 돌아오곤 했다. 이번 여행은 강행군으로 몸은 많이 피곤했지만, 딸이랑 엄마랑 둘이서 함께한 여행이 행복하고 감사했던 귀한 시간이었다.

시인 신영은 월간[문학21]로 등단, 한국[전통문화/전통춤]알림이 역할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skybosto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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