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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에 깃든 우리 역사 8 : 강녕전(康寧殿)
보스톤코리아  2010-05-03, 12:07:21   
고등학교 여학생들의 궁궐답사. 한복이 고궁과 잘 어울린다.
고등학교 여학생들의 궁궐답사. 한복이 고궁과 잘 어울린다.
강녕전은 ‘평안하게 쉬는 곳’ 이라는 뜻을 지닌 임금 침전의 이름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주 행복한 일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일컬어 오복(五福)을 갖추었다고 말한다. 그래서 삶의 보금자리인 새집을 지을 때도 대들보를 올리기 전에 연월일시를 쓴 다음에 “하늘의 빛에 응하여 인간세계에서 오복을 갖추어 달라” 고 기원하는 것이 전통적인 관례가 되어오고 있는 것이다.

서경(書經) 주서(周書) 홍범(洪範) 편에 오복을 정의하기를 수(壽), 복(福) 강녕(康寧), 유호덕(攸好德), 고종명(考終命) 이상 다섯 가지로 하고 있다. 수는 장수하는 것이고, 복은 복된 삶을 사는 것이고, 강녕은 우환이 없이 평안한 것이고, 유호덕은 덕을 좋아하고 즐거이 덕을 행하는 것이고, 고종명은 천명을 다하는 것이다.
용마루가 없는 강령전 지붕.
용마루가 없는 강령전 지붕.
 
편전인 사정전을 뒤돌아 가면 향오문이 나오는데 이 문을 경계로 침전 영역이 시작된다. 사정전 바로 뒤쪽에 임금의 침전인 강녕전이 있고 그 연장 선상에 왕비의 침소인 교태전(交泰殿)이 이어진다.

침전을 궁궐의 뒤쪽에 배치한 것은 예전 중국의 주나라에서 궁궐의 앞부분에 정전을 비롯한 관청을 배치하고 뒤쪽에 침전을 배치한 전조후침(前朝後寢)의 예법을 따른 것이다. 강녕전이라는 이름을 지은 정도전은 “오복 중의 하나가 강녕이며 임금이 강녕하면 그 혜택이 백성에 이른다.” “오복을 얻으려면 마음을 바르게 가지고 덕을 쌓아야 얻을 수 있다.”고 하면서 나라를 다스리는 임금은 덕을 가지고 마음을 바르게 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역대 임금 중에서 강녕과 유호덕을 실제로 실천하신 분은 역시 세종대왕이 으뜸일 것이다.
또다른 임금의 침전 연생전.
또다른 임금의 침전 연생전.
 
세종 18년에 대왕께서 강녕전에 드셨더니, “시녀가 와서 고하기를 뱀이 궁전 안에 들어왔는데 도저히 찾을 길이 없다”고 보고 하기에 사람들을 시켜 불을 밝히고 찾게 하였던 바, 그 뱀이 책상 위에 숨어 있었다. 이를 세밀히 분석하건데 “금년에는 가뭄이 심하고 여러가지 변고가 나타나는 것으로 미루어 반드시 하늘이 나를 책망하는 것일 게다. 옛 사람들이 처소를 옮겨 화를 피했거니와 나는 진양대군(晉陽大君 후일의 수양대군) 집으로 이어(移御)하려고 한다.” 면서 편안한 궁궐을 떠나 허름한 아드님 집으로 거처를 옮기고 농사짓는 백성들을 찾아 어려움을 직접 들어 주시고 손을 잡아 주셨다고 한다.
또다른 임금의 침전 경성전.
또다른 임금의 침전 경성전.
 
그뿐이 아니다. 세종년간에 이순지와 김담으로 하여금 종래의 중국을 기준으로 하여 만든 역서가 조선의 농사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에 조선을 기준으로 한 칠정산(七政算)이라는 역서(曆書)를 출간하여 농사철을 제때에 맞추는데 큰 도움을 농부들에게 주고 있다. 그때 산출한 1년이 365日 5시 48分 45초로 현대의 1년보다 겨우 1초가 짧을 뿐이었다.

세종 11년에는 정초(鄭招) 등에게 명하여 각도 농부들의 경험을 토대로 조선 실정에 알맞은 농사직설(農事直設) 이라는 농사 방법책을 저술하고 있다. 그래서 세종년간에는 농작물의 수확률이 크게 향상되고 백성들도 더 윤택한 생활을 하게 되었다.

신라시대의 지증왕 때 처음으로 농사 짓는 데 소를 사용해서 농작물의 생산량이 급증하게 되었고, 이것이 3국 통일을 이루는데 크나큰 기여를 했다고 하는데, 세종대왕 때 다시 한번 농가의 수확량이 증가하게 된 것이다.
강녕전은 임금의 침전이지만 때에 따라서는 필요한 신하들을 불러들여 나랏일을 상의했던 곳이다. 왕의 근친이나 종친들을 위한 잔치는 대부분 강녕전에서 치르는 것이 예사였다.
또다른 임금의 침전 응지당.
또다른 임금의 침전 응지당.
 
강녕전은 중간에 대청 마루가 있고 그 양옆으로는 온돌방인 동온돌, 서온돌이 있다. 동온돌, 서온돌은 우물 정자(井) 모양처럼 9개의 방으로 나뉘는데 왕이 주무시는 방은 가장 가운데 방이고 이를 둘러싼 나머지 방들에는 왕을 수발하고,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한 상궁들이 항시 대비하고 있다. 임금이 비빈들과 잠자리를 함께 할 때도 바로 옆방에서 상궁들이 항상 대기하고 있었다고 하니 임금의 프라이버시는 물 건너간 격이다.

왕의 침실에는 사극에서 보는 것처럼 많은 가구가 있는 것이 아니고 일절 없었다. 그 이유는 외부에서 침입한 사람이 가구에 몸을 숨길 수 있기 때문이었다. 임금이 수라를 드실 때는 나이 지긋한 기미상궁이 미리 음식의 맛을 보아 독이 안들었는 것을 확인하고 양 옆에는 2명의 수라 상궁이 음식을 덜어서 옮기고 생선의 가시를 발라내는 등 여러 가지로 임금의 식사를 돕고 있다. 임금의 수라상은 3개나 되기 때문에 수라상궁의 도움이 필요했던 것이다. 임금이 상을 물리면 상궁들이 함께 모여 남은 음식을 먹는데 이렇게 하는 이유는 귀한 음식을 버리지 않으려는 임금의 배려라고 한다.

음식을 먹으면 화장실에 꼭 가야만 하는데 강녕전에는 화장실 비슷한 시설도 없다. 그러면 임금은 어느 곳에 실례를 하는가? 원래 경복궁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3천 명이나 되었다. 이들이 버리는 쓰레기와 배설물을 처리하는 전연사(典涓司)라는 부서가 있었다. 48명의 인부가 28군데의 화장실을 전담해 관리했다고 한다. 임금과 왕비는 일반인들이 사용하는 화장실은 절대로 사용하지 않는다. 소변은 요강에 보아서 처리하고 대변은 매우(梅雨)틀이라고 하는 이동식 변기를 사용했는데 ㄷ 자 모양으로 생겨서 걸터 앉아 일을 보게 되어 있다. 매우틀만 전담하는 복이나인(僕伊)이 있어서 임금의 경우에는 근정전, 사정전, 강녕전에 매우틀을 대비하고 있다가 일이 있을 때는 즉석에서 휘장을 치고 매우틀에 실례를 하곤 하였다. 왕이 일을 마치면 상궁이 명주로 뒤를 닦아주고 배설물을 내의원으로 보내서 의원들이 왕의 건강을 살피게 하는 것으로 상황 끝이 된다.

강녕전에는 지붕의 꼭대기에 의례 있어야 할 용마루가 없다. 그 이유인 즉슨 왕은 용으로 상징 되는데 용마루라는 또 하나의 용을 만들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강녕전 주위에는 4개의 침전이 더 있다. 동쪽에는 동소침으로 부르는 연생전과 연길담, 서쪽에는 서소침으로 부르는 경성전과 응지당이다. 임금이 그날 그날 길한 방향을 따져서 5개의 침전을 번갈아 가며 사용했다고 한다.

강녕궁을 비롯한 경복궁의 전각과 대문의 처마 밑에는 그물이 둘러쳐져 있다. 이 그물을 “부시” 라고 부르는데 새들로부터 건물을 보호 하기 위해서 설치한 것이다. 보통 새들의 배설물은 강한 산성이라 건물을 상하게 하고, 또 새들이 둥지를 처마 밑에 틀면 새들을 노리는 구렁이가 접근해서 살생이 벌어지게 된다. 궁궐의 규칙은 왕족 외에는 궁 안에서 죽거나 죽일 수가 없다. 동물도 예외가 아니다. 그래서 상궁이나 내시가 늙어서 죽게 되면 사망하기 전에 궁밖으로 내보내서 임종을 맞이 하도록 했다고 한다.

태종 때 북한산의 호랑이가 경복궁 담을 뛰어넘어 임금의 침전에까지 다가들자, 어영장인 김덕생(金德生)이 활로 호랑이를 쏴죽인 일이 있었다. 그러나 김덕생은 이 영웅적인 행동으로 목숨까지 잃게 된다. 비록 임금을 구하기 위한 행위일망정 임금이 계신 대전을 향해 활을 쏘았고 살생을 했기 때문이란다.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다. 만약에 임금이 호랑이에게 참변을 당했다면 김덕생은 역시 생명을 잃어야만 했을 것이다.

김은한 (보스톤코리아 컬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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