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보스톤 전망대
보스톤코리아  2021-11-22, 12:25:59 
안성 칠장사 벽화에 그려진 궁예
안성 칠장사 벽화에 그려진 궁예
신라 48대 경문왕의 이름은 응렴이다. 18세에 화랑이 되었다. 그가 20세가 되었을 때 헌안대왕이 그를 불러 묻기를 화랑이 되어 사방을 돌아 다녔으니 본 것이 있었는가? 하고 물으니 신은 아름다운 행실이 있는 자 3명을 보았습니다. 남의 윗자리에 있을만한 사람이면서도 겸손하여 남의 밑에 있는 사람이 그 하나요, 부자이면서도 검소한 사람이 둘이요, 세력이 있으면서도 위력을 부리지 않는 사람이 그 셋입니다. 그 말을 듣고 헌안왕은 응렴이 어질다는 것을 알고 "나에게 두 딸이 있는데 그중의 한명을 경의 시중을 들게 하리다" 하며 청혼하였다.

왕의 첫째 공주는 인물이 초라하지만 둘째 공주는 출중한 미모를 지니고 있었다. 응렴이 거느리고 있는 낭도 중에 범교사라는 중이 있어 응렴에게 3가지 좋은 일이 있으니, 첫째 공주에게 장가 들 것을 강천하였다. 응렴이 범교사의 말을 따른지 3개월 후에 헌안왕이 급서하면서 "나에게는 사내자식이 없으니 마땅히 맏딸의 남편 응렴이 뒤를 잇도록 하라" 하고 다음날 붕어하였다.

응렴이 왕위에 오르니 그가 48대 경문왕(AD861~875 재위)이다. 이에 범교사가 왕에게 나아가 말했다. "전날 제가 얘기했던 3가지 좋은 일이 모두 드러났습니다. 맏 공주를 맞으셨기 때문에 지금 왕위에 오르시었고, 다음으로 지난날 연모하셨던 아우 공주를 이제는 쉽게 취할 수 있게 되셨습니다. 그리고 그 언니를 맞으심으로 하여 선왕과 왕비께서 무척 기뻐하시게 되었던 것이 그 셋째입니다."

왕은 전에 범교사가 깨우쳐 주었던 그 말이 고마워서 그에게 대덕의 직위를 내리고 금 1백30냥을 내렸다.
그런데 그날 이후로 경문왕의 침전에는 날마다 저녁이 되면 무수한 뱀들이 모여들곤 하였다. 궁인들이 뱀을 몰아내려고 하면 왕이 말하기를 "나는 뱀들이 없으면 편히 잘 수가 없다. 그냥 두어라." 왕이 잘 때면 매양 뱀들은 혀를 날름거리며 왕의 가슴을 뒤덥곤 했다고 한다.

경문왕 즉위 후에 밤마다 침전으로 몰려들어 궁인들을 공포에 떨게한 뱀들의 정체는 무엇인가? 아마도 이들은 있을지도 모를 정변에서 경문왕을 지키는 수호세력? 화랑시절에 경문왕은 천여명에 달하는 낭도들을 거느리고 있었다. 첨전의 무리들은 목숨을 걸고 왕을 지키는 낭도들의 무리가 아닐까?

신라 43대 희강왕은 경문왕의 친조부였다. 희강왕 3년에 상대등 김명(金明)과 시중 리홍(利弘)이 희강왕을 심히 겁박하여 왕을 자살케하고 본인 김명이 44대 민애왕이 되었다(838). 그러나 곧이어 김우징이 청해진 대사 장보고를 격동시켜 명분없이 희강왕을 죽게 한 민애왕을 사살하였다.

경문왕 년간에 3번이나 왕족이 일으킨 반란이 있었는데 경문왕이 이를 예상하고 이미 준비가 되어 있었다. 문제는 경문왕이 왕위에 오르자마자 귀가 갑자기 커져버려 마치 당나귀의 귀와 같이 되었다. 왕후도 궁인도 아무도 모르고 오직 한사람 복두를 만드는 장인(匠人)만이 그 비밀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장인은 왕의 비밀을 함부로 발설할 수 없어 평생도록 입을 다물고 살아야 했다. 그러다가 본인의 죽음이 임박했을 때 도림사 대나무 숲속 아무도 없는 곳에 들어가 대나무들을 보고 외쳤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그 뒤로 바람이 불면 도림사 대나무 숲에서는 소리가 울려 나오는 것이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왕은 대나무를 베어내고 대신 산수유를 심었다. 그 뒤로 바람이 불면 단지 이렇게 소리가 났다. "임금님 귀는 길기도 하다."

도림사는 경상북도 월성군 내동면 구황리에 있던 절로 알려져 왔다. 추정지의 하나로 지목되는 경주시 구황동 화천(花川) 냇가 주변에는 지명조차 화천이라는 꽃 화자를 써서 이른 봄에는 온통 노란 산수유가 장관을 이루는 곳이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설화는 동서양 여러 곳에서 아주 많이 알려져 온 이야기였다.
가장 먼저 알려진 것은 BC 8세기에 소아시아 프리지아(Phrigia)의 마이더스 왕에 관한 것으로 희랍의 작가 아리스토 파네스(Aristo Phanes)가 BC450~388년에 쓴 것이고, 가장 최근의 것이 경문왕 때의 설화였다. 경문왕과 마이더스왕의 이야기는 당나귀 귀가 주제가 되지만 프랑스, 루마니아, 그리스, 아일랜드, 칠레와 같은 지역에서는 말이나 수산양들의 귀가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아시아권에서는 인도, 몽골, 터키, 투르크스탄, 키르키즈 등에서도 동일한 설화가 있는데 모두가 당나귀 귀를 주제로 삼고 있다.

이야기의 주인공 경문왕은 18세에 결혼하고 왕이 되었다. 
14년간 왕위에 있다가 32세때 사망했는데, 꽤나 굴곡이 많은 일생이었다. 즉위하고 다음해에 역병(천연두)이 유행하고, 홍수와 가뭄 중에 곡식이 여물지 않아 기근으로 온 국민이 어려웠다. 세번에 걸쳐 왕족들이 반란을 일으켰고 호족들이 반란을 일으켰다. 왜구가 침공했는가 하면 지진과 또 다른 역병이 닥쳐왔다. 결국 32세의 젊은 나이에 힘든 여생을 마감하게 되었다. 2남 2녀의 자손을 두었는데 장남은 875년에 헌강왕이고 차남은 886년에 정강왕, 차녀가 997년에 진성여왕이었다. 그리고는 또 한명의 후손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나중에 태봉국의 왕이 된 궁예였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궁예는 헌안왕 또는 경문왕의 비빈 사이에서 태어난 서자로 기록되어 있다.
궁예가 891년에 세달사를 떠나 처음으로 군벌 양길과 어울려 봉기에 참여한 시기를 미루어 짐작하면 그의 출생일이 헌안왕쪽인 857년보다는 경문왕쪽인 869년 서자설이 더 설득력이 있다.

태봉국 군왕 궁예
궁예는 음력 5월 5일에 외가에서 태어났다. 태어날 때부터 흰 지붕위에 있었고 날때부터 이가 있었다. 당시 단오에 태어난 아이는 불길하게 여기던 풍습이 있어 일관이 왕에게 궁예를 죽일 것을 청했다. 왕명으로 궁예를 죽이려온 중사(中使)는 궁예를 포대기에 싸서 높은 누대에서 던졌다. 누대 아래도 떨어진 궁예를 유모가 밑에서 받아 목숨은 구했지만 이때 유모의 손가락이 눈을 찌르는 바람에 한쪽 눈을 실명했고 유모는 궁에서 멀리 도망가 궁예를 길렀다고 한다. 이런 출생의 사연 때문에 궁예는 신라를 적대시하였다고 한다. 궁예가 10여세가 되었을 무렵, 유모는 주위에 말썽만 일으키는 궁예에게 출생의 비밀을 알리며 너의 정체가 알려지면 우리 모두 살해당할 것이니 슬픈 일이라고 하였다. 이에 궁예는 제가 집을 나가서 더 이상 어머님에게 걱정을 끼치지 않겠다고 세달사에 몸을 기탁하고 이름을 선종으로 정했다.

궁예가 세상에 이름을 날린 것은 진성여왕 6년(892)에 북원(원주)의 양길 휘하에 들어 가면서부터였다. 불과 4년만에 주천(원주), 내성(영월)에 이어 명주(강릉)의 김순식에게 항복을 받아내면서 양길을 제치고 미륵불을 자처하며 행동하였다. 여러 호족들이 자진해서 투항하여 진성여왕 9년(895)에 태봉(철원)에 도읍을 정하게 되었다.

후백제에게 궁예군이 결정타를 내린 것은 903, 909, 910년 3차에 걸쳐 후백제의 중요한 해상거점이었던 금성(錦城: 지금의 나주)을 화공으로 공격해 견훤군이 앞뒤로 적을 맞게 되었다. 전라남도 강진의 무위사 경내의 선각대사 비문에 궁예의 무공이 기록되어 있다. 당시 궁에게는 사람들을 일단 의심하고 보는 나쁜 습관이 있었다. 또 그는 신하와 백성을 협박하는 도구가 있었다.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보는 관심법이었다. 네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를 알고 있으니 숨기면 죽는다는 것이었다. 관심법에 걸려 죽음을 당한 사람이 왕비 강씨였다. 관심법에 걸렸을 때 빠져나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사실여부와 관계없이 모든 것을 인정하고 항복하는 것이었는데, 이렇게 해서 살아난 사람이 궁예를 쫓아낸 고려 태조 왕건이었다.


김은한 
보스톤코리아 컬럼니스트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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