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톤의 숨겨진 역사(The Hidden Boston History)
보스톤코리아  2007-02-11, 00:15:12 
김은한 (본지 칼럼니스트)

보스톤 93번 고속도로를 지나다보면 동쪽의 찰스타운 쪽에 보스톤의 상징이라고 하는 벙커힐(Bunker Hill)전승탑이 보인다. 누구든 벙커힐 전투에서 독립군이 승리한 것으로 알고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독립전쟁 당시 있었던 벙커힐 전투는 영국군이 수많은 사상자를 냈지만 3번의 공격끝에 독립군을 물리치고 승리한 전투였다. 그러나 승전의 대가로 너무나 막대한 손실을 입는 바람에 독립군들에게 항전의식을 고취시킨 Moral Victory(정신적 승리)가 되어서 전승탑이라고 하는 것이다.
작년 히스토리 채널에서 방영된 "The Hidden Boston History"는 이와같이 잘 알려져있지 않거나 잘못 알려진 보스톤의 역사를 재조명했다. 여기에는 보스톤 칼리지(BC)의 Thomas O'Connor교수를 비롯 여러 전문가들이 참여했고 보스톤 글로브의 전 칼럼니스트 마이클 바니클이 이를 소개했다. 지금부터 보스톤에 대한 독자들의 역사인식이 과연 옳은 것인지 시험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청교도, 플리머스이야기>
메이플라워 호가 미국에 도착한 1620년경의 영국은 어떠했는가. 헨리 8세때부터 신교도 국가가 되었던 영국교회는 엘리자베스 여왕 때는 구교도적인 요소가 많이 포함되자 이것을 비판하는 신교도들이 늘어나게 되었다.
그들은 청교도(puritan)로 지칭되는 사람들로 정직하고 도덕적이며 하나님의 소명을 수행하려는 이상주의자들이었다. 당시의 물질과 실용주의를 피해 이상향을 찾았고 결국 메이플라워 호를 타고 플리머쓰(Plymouth)근처에 도착한 것이다. 원래는 허드슨강 하구가 목적지였는데 400마일 북쪽에 도착한 것이다. 그 때 벌써 체사피크   연안의 제임스 타운을 중심으로 영국인들이 이주해서 담배경작과 무역을 하고 있었다.
메이플라워 호를 타고 온 127명중 절반만이 청교도들이었고 나머지는 종교와 무관한 사람들이었다. 청교도들은 자신들을 '성자(Saint)'라고 불렀고 청교도가 아닌 사람들은 청교도들을 '분리주의자(Separatist)'라고 불렀다.
지금은 우리가 그들을 필그림이라고 부르고 있지만 그 당시에는 생소한 호칭이었고 후세에 역사가들이 부쳐준 이름이다.
첫해 겨울을 나면서 거의 절반이 죽었지만 한 인디언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더 많이 사망했을 것이다. 이 인디언의 이름은 "스콴토"이며 영어를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었다. 그는 스페인 사람들에게 노예로 잡혀갔다가 영국으로 도망한 끝에 미국으로 다시 돌아온 사람이었다.
도착 1년 후인 1621년에 필그림들이 땡스기빙(Thanksgiving)을 했다고 알려졌지만 그런 적이 없었다는 것이 역사가들의 이야기다. 처음의 땡스기빙은 버지니아주의 제임스타운에서 가졌는데 이는 오랫동안 기다리던 보급선이 도착한 것에 감사해서 드린 땡스기빙이었다고 한다. 당시의 영국의 풍습에 따라 추수가 끝나면 일상적으로 행하던 Harvest Home celebration이라는 자축행사가 있었다. 하지만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땡스기빙은 간헐적으로 이어오다 200년 후인 1822년에 국경일로 정해진 것이다.

<보스톤과 비컨힐>
처음에 청교도들이 정착한 곳은 지금의 찰스타운(Charlestown)이었는데 식수를 구하기가 쉽지 않고 늘어나는 인구를 수용하기 위해 원래는 바다였던 백베이(Back bay)를 매립했다. 이를 매립하기 위해 인디언들이 Shamut이라고 불렀고 지금은 비컨 힐로 불리는 맞은 편 3개 언덕을 헐어서 바다를 메웠다. 당시에는 제일 높은 언덕에 비컨(Beacon)이라고 부르는 봉화대를 만들어 외적의 침입이나 불상사에 대비를 했었는데 후일에 폭풍으로 망가져서 독립전쟁후에는 그 자리에 승전탑을 세우게 된 것이다.
지금도 면적이 얼마 되지 않은 보스톤이지만 4년제 대학만 26개가 그속에 있는 것은 청교도들이 성경을 가르치려는 교육열에 힘입은 바가 큰 것이다.
그래서 미국최초로 성경을 가르치는 Boston Latin School을 세웠고, 1936년에는 바이블만을 가르치는 하버드 대학을 존 하버드(John Harvard )목사가 세웠다. 그러나 그가 30세의 나이에 요절하자 대학의 경비는 그의 유산으로 남겨진 영국에 있던 술집에서 번돈으로 많이 충당하게 되었다. 그래서 당시에는 More they drink in England, more learning in America로 풍자되곤 하였다.

<티파티 사건과 독립전쟁>
영국정부가 식민지의 생필품과 신문 등을 비롯해서 차에 중세를 부과하자 식민지에서는 차를 비롯한 영국상품의 구매를 보이콧하게 되었다. 그러자 그동안에 무역으로 재미를 보던 동인도 회사는 영국국회의 동의를 얻어 차를 미국에 있는 중간 상인들을 거치지 않고 직접 소비자들에게 싼 값으로 팔게되었다.
중간상인들로 재미를 보고있던 존 행콕(John Hancock), 오티스 제임스(Otis James) 등과 하버드 대학출신 젊은 변호사 샘 아담스(Sam Adams)가 주동이 되어 배에 있는 차를 바다에 버리는 사건을 일으키게 되었다.
주동자들에 대한 체포령이 벌어지자 그들은 콘코드(Concord)로 피신했고 영국군들이 렉싱톤(Lexington)을 거쳐 콘코드로 집결하자 이 소식을 은세공업자인 폴 리비어(Paul Revere)가 말을 달려 콘코드에 메시지를 전하게 되었다.
이것이 지금까지 알려진 사실이지만 정작 폴 리비어는 렉싱톤을 지나자 마자 영국군에게 붙잡혔고 윌리엄 다우스 주니어(William Dawes Jr.)가 끝까지 말을 달려 소식을 전한 것이다.
후일에 시인 롱펠로우가 "Paul Revere Ride"라는 시를 써서 리비어는 보스톤 제일의 애국자가 되었고 지금도 그의 동상이 보스톤 시내에 서있게 된 것이다.
윌리엄 다우스 주니어는 억울하게 되었지만 그보다도 더 억울한 사람은 이스라엘 비셀(Israel Bissel)로 그는 보스톤의 사정을 5일 주야로 말을 달려 필라델피아 연방의회에 소식을 전했지만 폴 리비어의 그늘에 그의 공적은 빛을 보지 못하게 된 것이다.

보스톤은 지난 400년간 "불의와 오류에 반대"하는 항쟁의 중심지였다. 미국 독립전쟁뿐 아니라 흑인노예 해방운동도 예외가 아니었다.최초로 흑인의 인권이 보스톤 신문에 게재되었고 용감하게 노예제도를 반대하던 MA주 섬너(Sumner) 상원의원은 사우스 캐롤라이나의 하원의원에게 맞아서 목숨을 잃을 뻔 했었다.
월든 폰드의 헨리 데이비드 쏘로우(Henry David Thareu)는 흑인 노예제도를 묵인하는 정부에 항의해서 세금을 납부하지 않고 감옥살이까지 했지만 "시민불복종(Civil disobedience)"라는 글을 발표해서 노예제도 폐지를 위한 비폭력 저항운동을 고취했고 감동한 스토우 부인이 Uncle Tom's cabin을 발표하게 됐다.
그의 "시민불복종"은 톨스토이(Nikolayevich Tolstoy), 마하트마 간디, 마틴 루터 킹의 비폭력 저항운동의 정신적인 지주(Inspirational Bible) 역할을 하게 되었다.
프리덤 트레일(Freedom Trail)을 타고 보스톤을 돌아보자 킹스 채플(king's Chapel)묘지에는 보스톤의 역사를 일구어 온 많은 사람들이 잠들어 있다.
독립선언서에 처음 서명한 존 행콕, 2대 대통령 샘 아담스, 폴 리비어의 무덤 한 끝에는 호오도온(Hawthorn) 주홍글씨(Scarlet letter)를 쓰게 한 장본인 엘리자베쓰 패인(Elizabeth Pain)이 아직도 묘비에 A자를 새긴채 잠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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