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은 당신 안에 있습니다"
보스톤코리아  2007-06-05, 00:44:09 
한동원 (케임브리지 거주)

볼티모어에 위치한 세계 최고의 병원, 존스 홉킨스 병원 재활의학과 병동에 들어서면 휠체어를 타고 병동을 누비며 절망을 안고 살아가는 장애인들에게 삶의 의욕과 희망을 안겨주는 동양계 의사가 있다. 병원에서는 그를 닥터 리라고 부르지만 그는 승복 리라는 한국 이름으로 불리우기를 원한다. 놀랍게도 그 자신도 사지 마비 장애인이다.  



삶의 역경을 극복한 이들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접할 때면, 삶의 새로운 의욕과 함께 누군가에게 나누고 싶어지는 마음이 생긴다.   사지마비 장애자 의사인 이승복씨의 이야기가 바로 그러하다.

KBS 인간극장을 통해 방영된 <슈퍼맨 닥터리>는 존스 홉킨스 병원 재활의학과의 전문의로 일하고 있으며, 미국에서는 이미 뉴욕타임즈, 볼티모어 선, AP통신, 폭스 TV를 통해서 소개되었던 미국 전체에서 두 명 밖에 없는 사지마비 장애인 의사 중 한 사람인 한인 1.5세대의 이야기이다. 방영 후 그의 인생역경과 극복의 이야기는 많은 이들에게 감동과 희망을 주었고, 이 후 그의 자서전 <기적은 당신 안에 있습니다>는 그 해 베스트 셀러로 많은 한국인들의 가슴을 울렸다.
이승복씨 가족이 미국으로 이민 온 것은 그가 8살 때인 1973년이었다. 처음 도착해서 정착한 곳은 뉴욕 퀸즈였다. 아버지는 한 친구와 함께 표구점을 차렸으나 사업은 그리 성공적이지 못했다. 곧 그는 초등학교에 입학하게 되었고, 자신의 반에서 유일한 동양 아이로서 반 아이들에게 받는 놀림을 말없이 견뎌내야 했다. 어려운 이민 정착 기간 동안 두 분 부모님 모두 일을 하셔야 했기에 두 동생을 직접 돌봐야 하는 책임도 그의 몫이었다. 가족들의 제각기 바쁜 이민 생활 속에서 그의 마음 한 켠에는 늘 한국에서처럼 가족들이 함께 모여 시간을 보내지 못하는 것이 아쉬웠다. 아침 일찍부터 밤 늦게까지 일하시며 고달픈 이민생활로 고생하시는 부모님들을 볼 때마다 여덟 살의 어린 나이였지만 그가 원하는 것은 분명했다. "어떻게 하면 고생하시는 부모님을 편하게 해 드릴까 ... 가족 모두 한 곳에 모여 웃으면서 저녁식사를 할 수 있었으면 ... 부모님이 덜 바쁘고 피곤했으면...그러기 위해 내가 훌륭한 사람이 되어 부모님의 고생을 덜어드려야지...."

이런 바램 가운데 시작한 것이 체조였다.
그의 꿈은 올림픽에서 태극 마크를 달고 금메달을 따서 아버지 어머니를 기쁘게 해 드리며, 학교에서 놀림 받던 친구들에게 '우리나라 대한민국이 이런 나라다.'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부모님과 조국을 위해 모든 힘을 쏟아 매달릴 목표가 생긴 것이다.
YMCA에서 체조를 배우기 시작했고, 그는 마루 운동 부문 뉴욕주 챔피언이 되면서, 고등학교 3학년생으로 올림픽 예비군단의 최고 선수로 인정받게 되었다. 미시간대, UCLA, 펜실베니아 주립대, 템플대, 스탠포드대, 웨스트포인트 등 유명 체조팀을 운영하고 있는 거의 모든 대학으로부터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다. 그리고 마침내 미국에서 열리는 국제대회에 한국 대표로 출전하는 것이 결정되었다.

오랜 꿈이었던 한국 대표로의 출전의 희망 속에서 그는 무리한 연습을 해 나갔다. 그러나 이것이 돌이킬 수 없는 엄청난 사고를 부를 줄을 누가 생각이나 했겠는가?
1983년 7월 4일, 혼자서 맨 마루에서 연습을 하다가 목을 쭈욱 늘인 상태로 땅에 턱을 박고 만다. 성공과 안락이 기다리고 있던 밝은 미래가, 이민생활의 고달픔 속에서 가족들에게 한껏 웃음을 줄 수 있을 것 같았던 모든 희망이, 그 찰나의 순간에 산산조각으로 깨져버렸다.
의사들은 그에게 척수 C7-C8의 종결을 선언했다. 이것은 평생 휠체어에서 일어설 수 없으며, 평생 잘 구부러지지 않는 손가락으로 살아야 한다는, 사지마비 장애인으로의 선언이었다.
조국과 가족을 위해 시작한 체조였는데...그 순간, 가족들과의 행복한 식사시간도, 명문대 입학도, 올림픽 금메달도... 그 모든 것이 다 날아가 버렸다. 그러나, 이 모든 상황은 너무나도 분명한 자신의 잘못이었기에 남을 탓할 이유도 없었다.
그는 러스크 인스티튜트의 재활 의료 병동에서 전문의들과 간호사들의 도움으로 재활치료를 받으며 빠른 회복을 해 나갔다.  "우리의 도움만 기대하면 당신은 평생을 남의 도움을 받으며 살아가야 합니다" 라는 간호 조무사의 말은 그가 재활 훈련을 끝까지 해내게 하는 공포스런 말이었다고 한다. 100% 혼자 힘으로 살 수 없는 사지마비 장애인이었지만, 그는 가능하다면 남아 있는 근육의 마지막 힘까지 짜내서라도 스스로의 힘으로 살기를 원했다. 얼굴이 베이는 수 차례의 어려움을 겪더라도 스스로 면도하는 훈련을 했다. 손가락을 거의 쓸 수 없었지만, 글쓰기를 도와주는 펜 홀더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재활치료를 받는 과정에서 읽게 된 하워드 러스크 박사의 자서전을 통해서 그는 재활의학에 대한 꿈을 갖게 되었다. 그는 다시는 체조를 할 수 없었지만 마음만은 체조 선수 시절과 같았다. 의대 진학을 목표로 공부를 시작했고, 뉴욕대학을 장학생으로 입학하게 되었다. 뉴욕 대학에서 공부하던 중 어느 날 레리 실버라는 크리스챤 친구를 통해서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되었고 1987년 4월 27일 그는 다시 태어나게 되었다고 회상한다. 이렇게 시작하게 된 기독교 인으로서의 생활은 대학 4년 동안 공부만큼이나 중요한 것이었다. 그는 매일 동료들과 함께 기도하고 성경을 읽었고 방학 중에는 캘리포니아와 한국에서 선교 경험을 하였다.  그가 서울에 선교 훈련을 위해 방문했던, 1988년 당시 나는 대학생이었다. 불편한 몸에도 불구하고 항상 밝게 우리들과 어울리며 정상인들이 받기에도 힘겨웠던 여러 훈련들을 감당하며 배우려 했던 그의 모습이 떠오른다. 장애인에 대한 배려가 없는 공공 시설들 속에서 그가 겪어야 했던 어려움은 너무나 컸을 것이다. 그런 가운데서도 그는 예외 없이 훈련에 함께 했고, 자신의 간증을 나누며, 캠퍼스에서 복음을 전하곤 했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그에게 한 가지 생각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향해 분명하고 완벽한 계획을 갖고 계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찾고 그것에 따라서 자신의 삶을 살아 내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그는 뉴욕 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후 컬럼비아 대학의 공중 보건학 석사 과정과 다트머스 의대를 거쳐 하버드 의대 인터 과정을 수석으로 졸업하게 된다. 처음엔 장시간 동안 책상 앞에 앉아 있기도 힘들었고 손으로 글씨 쓰는 것도 어려웠기에 그는 밤잠을 줄여가는 치열한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 이 과정 속에서 함께 공부해 준 동료들의 도움이 있었고 특히 의지력이 강한 어머니의 도움이 컸다.  

그에게는 항상 밝고 긍정적인 모습으로 아들의 힘이 되었던 어머니, 그러나 몇 년 전부터 어머니 또한 중풍으로 쓰러져 휠체어에 의지해야 하는 불편한 몸이 되었다. 어머니는 의사인 그가 돌보아야 하는 가장 가까운 환자가 된 것이다. 한번 외출을 할 때면 두 휠체어를 몰며 온 몸이 땀에 젖어 힘겨워 하는 아들에게  "내가 너를 도와줘야 하는데 ... 오히려 네가 나를 돌보는구나...." 하시며 안타까워하신다. 어머니의 한숨 섞인 말 속에서 보여지듯 누가 보아도 도움을 받아야 하는 사지마비의 불편한 몸임에도 불구하고, 역경을 딛고 훈련의 과정을 거쳐, 이제는 오히려 다른 환자들을 돌보아 주는 재활의학 전문의가 된 것이다.
세계 최고의 병원인 존스 홉킨스 병원의 재활의학 전문의로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는 환자들에게 의사로서의 치료를 넘어 희망의 치유를 주는 특별한 재활의사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는 그의 자서전의 표지 글이 말해주듯이 "절망의 끝에서 희망을 퍼 올린 우리시대의 자랑스런 한국인"이며, 이 곳 미국 땅에서 우리와 같은 삶을 살아낸 건강한 1.5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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