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제의 아들 주몽의 탄생과 고구려의 건국
보스톤코리아  2007-11-18, 00:52:30 
백린 (역사 학자)

-고구려의 건국-

이왕 얘기가 나왔으니 태백산 문제도 정리하고 넘어가자.
세번째 문제는 주몽의 어머니 유화가 천제의 아들이라고 자칭하는 해모수에 끌려가 웅심산(熊心山) 아래 압록가의 집에서 사통했다는 그 웅심산이 어디냐는 것이다. 삼국사기는 그것을 웅신산(熊神山)이라고 정정하였다. 보다시피 문자 그대로 곰할아버지가 계신다는 뜻일것이니 웅신산이 맞을것이다. 그리고 동부여의 금와왕이 태백산 아래 우발수에서 유화를 만났다고 하는 그 태백산을 「삼국유사」는 백두산이라고 하였다. 전설에는 이름이 각기 달리 나왔지만 사실은 웅심산이나 태백산은 같은 산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만주의 동북지방에서 일어난 사실을 가지고 한반도의 주산(主山)인 백두산에 갔다 부처서 설명하고 있으니 잘못된 생각이라는 것이다.
나는 지금 경상북도 봉화에 있는 태백산을 가지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만주에 있는 태백산을 말하려는 것이다. 동부여의 금와왕의 전설뿐만 아니라 이를 테면 단군신화에서 환웅...강우태백산정신단수하와 삼위태백(桓雄...降于太伯山頂神檀樹下...三危太白...)을 묘향산(妙香山)또는 백두산이라고 한 것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더욱이 한심한 일은 근래에 와서도 철저한 고증이 없이 여전히 태백산을 백두산이라고 하니 말이다.
말인즉 대조영의 아버지 걸걸중상이 망갈추장 걸사비유와 함께 고구려 유민들을 데리고 요하를 건너 태백산 동북지역을 근거로 삼고 오루하에 의지하여 성을 쌓고 수비를 굳건히 하였다는 그 태백산을 오늘의 사학자들도 이 태백산을 백두산이라고 오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걸걸중상이 태백산 동북지역에 와서 성책을 쌓았다는 것을 백두산 동북지방에 비정한다면 그것은 함경도의 함흥 또는 청진지방 이어야 하는데 말도 안되는 얘기다. 이러니 중국 사학에 밀려 다닐 수 밖에 없지 않은가. 이 문제를 밝히는 것은 한국의 고대사를 위하여 매우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제 중국의 역사문헌에서 웅신산과 불함산 그리고 태백산을 뭐라고 설명했는지 알아보기로 하자. 위서의 물길국편에 보면 "국남유도태산위언태백휴호표비랑(國南有徒太山. 魏言太白 有虎豹 _狼不害人 人不得山上: 나라의 남쪽에 도태산 이라는 산이 있다. 위나라 사람들은 이를 태백산 이라고 한다.

산에는 범, 표범, 곰, 늑대등이 있는데 사람을 해치지 않는다. 사람들도 이산에 올라가지 못하였다고 하였다.) 그런데 수서(隋書)의 말갈(물갈)전에도 "동이중위강 국, 유도태산자 솜심경외 상유웅시표랑 개불해인, 인역불감살"(東夷中爲强國 有太山徒太山者俗甚敬畏) "동쪽 오랑케중 강한 나라이다. 도태산이라는 산이 있는데 세속에서 매우 경외한다. 산에는 곰, 큰곰, 표범, 늑대등이 서식하는데다 사람을 해치지 않는다고 한다. 사람 또한 이들 짐승을 감히 살해치 못한다고 하였다. 진서(晉書)의 숙신전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 되어 있다. "숙신씨 일명 읍루재불함산 북(肅愼氏一名_婁在不咸山北) 즉 "숙신족은 일명 읍루라고도 한다. 불함산 북쪽에 있다. 라고 하여 태백산을 불함산 이라고 호칭하였다."

또 하나의 예를 들어 보자 북사(北史)의 물길국전에 보면 "물길국재고구려북 일왈말갈....국남유도태산자와언태백 속심경외지(勿吉國在高句麗北一曰靺鞨...國南有徒太山者華言太白俗甚敬畏之)라고 하여 도태산이 태백산임을 증명해주고 있다. 도 당서(唐書)의 흑수말갈 전에도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속말부. 거최남저 태백산 역왈 도태산 여 고구려접이송말수이거 수원어산서북(粟末部居最南抵太白山亦曰徒太山與高句麗接...)이라고 하여 태백산의 위치가 속말수(송화강)아래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그런데 통전(通典)의 읍류(말갈)전에도 그 국재불함산북(國在不咸山北)이라고 하여 도태산을 불함산이라고 하였다. 앞서 본바와 같이 중국의 역사문헌에서 그 호칭과 설명이 다소 다르기는 하나 모두들 태백산을 두고 웅심산이니 도태산이니 또는 불함산 이라고 하였다는 것을 설명해 주고 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시대의 변천에 따라 태백산의 명칭이 달리 불려졌던 것이다. 다시 말하면 고조선 사람들은 그것을 태백산 이라고 하였는데 부여 사람들은 그것을 웅시산이라고 하였으며 그후 도태산이라고 하였다가 고구려 사람들은 그것을 다시 태백산이라고 하였던 것 같다. 그리하여 중국 사람들도 같이 도태산을 태백산 이라고 하였던 것이다.

부여인들이 웅신산 이라고 하였던 태백산은 지금의 흑용강 성 영안에 있는 장광재령곳 1682m의 최고봉을 두고 말하는 것이다. 앞서도 말했지만 까마득한 옛날부터 만주의 동북지방에 거주하던 고조선, 동부여, 고구려 이렇게 내려와 발해의 상징 옹천부로 발전하면서 이산을 영산으로 지키고 경외하였던 것이라고 보인다. 태백산 문제로 얘기가 좀 길어진 것 같다. 이제 말을 다시 돌려 본론으로 넘어가자.
지금까지의 사실을 정리하면 지금의 만주 길림성 장춘부근의 농안지방에 자리잡고 있던 부여의 일파인 해모수의 왕자 주몽이 남하하여 길림성 집안현의 동가강 유역에 의자하여 도읍을 세우고 고구려 제국을 건설하였다는 것을 말했다. 창업 초기에는 부여의 동남지방 일대에 크고 작은 부족국가들이 있어 서로 세력을 다투고 있던 어지러운 시기였다. 부여와 같이 강력한 통일국가를 이루려면 이들 부족국가와 싸워서 굴복시켜야 했다. 그래서 주몽은 칼과 창모를 놓고 말 안장을 풀고 쉴 틈도 없이 싸움터를 달려야 했다.

이제 북쪽의 강한 세력인 말갈을 쳐서 항복을 받고, 인근 비류국 등 군소 국가들을 정복하여 통일 국가로서의 그 체제를 확립한 것이다. 그런데 동명왕 19년 4월에 북부여 에서 유리가 어머니 예씨와 더불어 찾아왔다.

<2주 후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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