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제의 아들 주몽의 탄생과 고구려의 건국
보스톤코리아  2007-12-04, 02:28:12 
백린 (역사 학자)

동명왕의 승하와 비류왕자의 반란

동명왕 19년 (서기전 19년) 4월에 원자 유리가 어머니 예씨와 더불어 북부여로부터 도망하여 왔다. 유리 모자는 주몽이 졸본부여로 망명한 후 오랫동안 부여의 대소왕에 의하여 인질로 잡혀 있었더 것이다. 주몽은 북부여에 있을 때 예씨부인과 겨혼하였던 것이며 예씨부인이 임신한 상태인 것을 알았던 것이다. 유리가 아버지 주몽이 망명길에 오른 이후에 출생하였기 때문에 부자가 서로 맞대면해도 피차 알아볼 수 없는 처지였다. 주몽은 망명길에 오르기전에 예씨부인에게 말하기를 “그대가 만약 아들을 낳게 되면 내가 가지고 있던 유물을 일곱모난 돌위 소나무 밑에 감추어 두었으니 그것을 찾아가지고 오면 내 아들인 것으로 믿겠다”라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는 것이다. 일곱모난 돌위 소나무 밑, 참으로 희안한 말이다. 그것은 아마도 부여 궁궐의 어느 전각의 기둥밑을 가리킨 것으로 보인다. 유리는 20세가 넘은 청년이다. 어머니 예씨로 부터 아버지 주몽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아버지를 찾아 고구려로 갈 것을 결심했다. 여러 날을 두고 어렵게 아버지가 숨겨놓은 유물인 칼 한토막을 궁궐의 큰 기둥 밑에서 찾아가지고 어머니 예씨와 함께 북부여에서 탈출하였다.

이 때 유리는 같이 친하게 지내4던 옥지(屋智) 구추(句鄒) 도조(都祖) 그리고 10명의 부하를 데리고 야밤에 길을 떠나 졸본에 와서 고구려의 동명왕을 찾아 뵈었다. 동명왕은 유리가 가지고 온 반토막의 칼과 자기가 가지고 있던 반토막의 칼을 맞추어 그것이 한 칼이 되었음을 확인하고 크게 기뻐하며 유리를 맞아 태자로 삼았다. 이 해가 바로 주몽이 고구려를 창건한지 19년이 되는 4월의 어느 날이었다. 동명왕 주몽에게는 북부여에서 온 원자 유리와 왕후 소서노의 소생인 비류와 온조 세왕자가 있게 되었다. 그런데 동명왕 19년에 주몽의 전부인인 예씨가 북부여로부터 도망하여 찾아온 것이다. 그리고 원자 유리는 왕후가 아닌 주몽 전처의 소생이다. 그래서 그 지위도 문제지만 또한 인품도 고려했어야 했을 것이다. 그런데 현재 왕비 소서노의 소생인 비류와 온조 두 왕자가 있으니 말이다. 그러므로 태자책봉과 함께 왕위계승 문제가 조용히 넘어갈 수 없는 상황이다.

삼국유사의 저자 일연은 「삼국사」를 인용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백제의 시조 온조의 아버지는 주몽이라고 한다. …얼마 지나지 아니하여 부여주(졸본)의 왕이 죽자 주몽이 왕위를 계승하여 두 아들을 낳았는데 큰 아들은 비류이고 둘째는 온조이다”라고 하였다. 비류와 온조가 다 주몽의 아들이라는 것이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왕위 계승에는 하등 문제가 될 것이 없다. 그런데 그 다음 구절이 앞뒤가 맞지 않는다. 즉 말하기를 두 왕자가 태자(유리)에게 인정을 받지 못할까 두려워하여 오간(烏干)과 마예 등 10여 명의 신하와 함게 떠나니 많은 백성들이 따랐다”라고 하였다. 태자가 누구인가. 주몽의 전처 예씨가 낳은 아들 유리를 말하는 것이 아닌가. 한국인명대사전은 온조가 주몽의 셋째 아들이라고 했다. 「삼국사기」는 백제본기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시조는 비류왕이고 그 부친은 우대(優坮)로 북부여왕 해부루의  서손이며 그 어머니는 소서노(召西奴)로 졸본사람 여타바의 딸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이어 말하기를 소서노가 처음 우대에게 시집가서 두 아들을 낳았는데 장자는 비류이고 차자는 온조이다. 우대가 죽자 소서노는 아이들을 데리고 졸본으로 와서 살았는데 주몽이 부여에서 용납되지 않자 전한건소(建昭) 2년(서기전 37년)2월 남쪽 졸본으로 와서 도읍을 정하고 나라를 세워 국호를 고구려라고 지었다. 주몽은 소서노를 아내로 맞아 왕비로 삼았는데 주몽이 창업의 기반을 열 때 소서노의 내조가 참으로 컸다. 주몽은 소서노를 특별히 총애 하였으며 그가 낳은 비류 등도 자기 아들과 같이 대우하였다”는 것이다.

이같이 왕자 비류와 온조가 소서노의 전남편인 우대의 아들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어느 말이 진실인지 분간하기 어렵다. 왕비 소서노는 그 이름이 보여주듯이 과부인 것이 틀림없다. 우리의 옛말에 과부를 높이는 말로 소사라는 호칭이 사용되었다. 그런데 한국의 인명대사전은 온조를 주몽의 셋째아들이라고 했다. 비류는 소서노의 전남편인 우대의 아들이 틀림 없다. 그런데 온조왕자는 누구의 아들인지 고구려사는 확실히 하지 못하고 있다.
삼국사기의 백제본기는 시조 온조대왕은 그 아버지가 주몽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주몽이 고구려 창건 당시 소서노의 도움이 컸던 것을 감안할 때 백제의 시조 온조대왕은 주몽과 소서노 사이에서 출생한 것이 틀림없다. 때문에 왕위 계승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고구려 동명왕의 후사를 유리왕자로 하느냐 아니면 온조왕자로 하느냐의 세자 책봉문제가 대두된 것이다. 그런데 동명왕 주몽은  원자인 유리를 태자로 삼았다. 유리는 동명왕의 원지이지만 온조는 동명왕 주몽과 소서노 사이에서 귀여움을 받아 온 왕자이다. 어쨌든 원자 유리가 세자로 책봉되었으니 왕후의 자리는 유리의 생모인 예씨부인에게 내주어야 할 입장이고 왕위 계승권은 태자 유리에게로 넘어가게 되었다.
그런데 웬일인가. 동명왕 주몽이 창건 19년(서기전 19년) 9월에 승하하였다. 주몽이 졸본에 와서 고구려를 창건한 것은 22세때이다. 그리고 재위 19년이었으니 향년 나이 41세로 한참 활동할 나이다. 그런데 왜 갑자기 돌아갔을까. 싸움터에서 전사한 것이 아니다. 그러면 심장마비였다는 말인가. 그것도 아니다. 그러면 암살 당했단 말인가. 고구려사는 동명왕 주몽의 사인에 대하여 분명한 말이 없다. 광개토왕의 비문에 보면 “동명왕이 홀본(졸본)의 동강(동족산 언덕)에서 황용에 업혀 승하하였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대왕의 승하를 미화하려는 말이겠다. 그런데 그 다음 구절에서 “세자 유리에게 후사를 부탁하는 고명을 남기고 돌아가셨다”고 하였다.  그러니까 동명왕이 운명하기 전에 태자 유리를 후계자로 하는 유언을 남긴 것이다. 이 사실로 볼 때 동명왕 주몽은 불의의 습격을 받아 중상을 입고 돌아가신 것이 분명하다.

사극 주몽이 이 사실을 잘 묘사한 것 같다. 당시 고구려 왕실에는 왕비 소서노를 중심으로 한 졸본세력과 동명왕 주몽에게 충성하는 부여세력이 있었다. 그런데 원자 유리가 갑자기 나타나 태자로 책봉되었으니 왕위 계승권을 놓고 반란이 일어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제왕의 권력을 놓고 형제간에 피를 뿌리는 참극은 고금에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비류 온조 두 왕자가 졸본세력을 앞세워 반란을 일으킨 것이다. 그러나 태자유리를 받드는 북부여 세력에 패배하고 만다. 그래서 비류와 온조 두 왕자는 남쪽으로 가서 새로 백제를 건국한다.
태자 유리는 비류 온조의 반란을 진압한 다음 동명왕 주몽의 고명에 따라 왕위에 오른다. 백제본기는 그 사실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비류는 아우 온조에게 말하기를 처음 대왕이 부여에서 난을 피하여 도망왔을 때 우리 어머니는 집안의 재상을 기울여 나라의 기업을 조성하는데 힘써 도왔다. 그런데 대왕이 돌아가시자 나라는 유리에게 넘어갔다. 우리들은 여기에 있는 것 보다 어머니를 모시고 남쪽으로 가서 좋은 땅을 찾아 나라를 세우고 도읍하는 것만 같지 못하다”고 하면서 드디어 비류는 아우 온조와 그 무리를 거느리고 패수(浿水)와 대수(帶水)의 두 강을 건너 미추홀(인천)에 이르러 살게 되었다.”라고 하였다.

다음호에는 <주몽>마지막편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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