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날다
보스톤코리아  2007-12-10, 00:59:22 
▲ 2004년 5월 5일 이동우 교수와 대륙횡단중, 인디아나 주에서

2004년  5월  5일 새벽공기를 가르며 단발엔진 경비행기 한대가 뉴-햄프셔 주 내슈아 공항을 이륙했다.  이번 비행의 목적지는 로스 엔젤리스, 그러나 경비행기의 항속거리 한계 때문에 첫번 기착지는 1,100 마일 떨어진 인디아나 주 앤더슨이다.

이 비행기는 78년도 파이퍼사의 180마력 짜리 4인승 아쳐로서 구입당시 20년된 중고품 이지만 거의 10년간 나와 생사고락을 같이하는 내 취미생활의 가장 절친한 파트너이다.  일단  비행고도를 3,000 피트로 잡고 밑을 내려다 보니 출근시간에 꽉 막힌 고속도로가 보인다.  무한한 자유를 느낀다.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자연경치가 너무 아름답다. 우리가 이민 올 때 모두 대륙횡단 비행을 했지만 상업용 여객기들은 고도 3만 피트 이상을 비행하기 때문에 밑에 펼쳐지는 자연의 파노라마를 제대로 감상할 수 없다.  그러나  3천 피트 정도로 나르고 있는 내 비행기에서 내려다 보는 산하는 너무 아름답고 선명하다.  승객으로 부 조정석에 앉아있는 친척 이동우 교수도 이륙하여 고도를 잡을 때 까지는 사뭇 불안한 표정이더니 비행기가 순항 하니까 감탄사를 연발한다.  이렇게 나의 첫 대륙횡단 비행이 시작 되었고 이때 내 나이 65세 였다.    

어린 시절 피터 팬(Peter Pan) 같이 하늘을 훨훨 나는 신나는 꿈은 생각 나지만 나는 하늘을 꼭 날아 보겠다는 결심을 한적은 없었다. 그러나 꾸지도 않은 하늘을 나는 꿈이 이루어 졌으니 내가 생각 해 보아도 기가 차다.  30여년 전 내 직장 동료인 Don 녀석은 전기기사로 일하며 집에서는 엉뚱한 취미 생활을 하고 있었다. 추락한 비행기 2대로 온전한 비행기 1대를 만드는 것이다.  그는 자기 집 지하실을 개조하여 벽이 없는 큰 작업장으로 바꾸고 그 곳에서 비행기 몸통과 날개를 조립하고 있었는데 지하실은 조립에 쓰이는 각종 부속품들로 발 들여놓을 자리도 없이 가득 깔려있었다. "이놈이 죽을려고 환장을 했군 ! " 하는 것이 나의 첫 느낌이었다. "저 비행기 완성 되도 뜨지도 못 할 텐데 걱정 할 것도 없지" 하고 일단 걱정은 뒤로 미루었다. 하지만 그 지하실에 갖춘 연장, 부품 등은 지하실 분위기를 아주 흥미진진하게 하였다.  

그런데 2년쯤 지난뒤 FAA (연방항공국) 감독관이 가끔 지하실을 방문하여 내부 구조의 용접상태 등을 철저히 검사 및 인증하는 것을 보니 제법 신뢰성 있는 비행기 조립이 진행 됨을 알 수 있었다.  4년이 좀 못되어 조립한 동체, 날개 등을 부근 작은 공항으로 옮겨 마지막 조립을 마쳐 제법 비행기 다운 모습으로 완성되었다.  그 후 몇 주 일간 감독관이 지상 시험을 한 다음 인증을 해 주어 비행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참 !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그 조립한 비행기의 오장육부를 다 들여다 본 이상 아무리 그 비행기가 감독관의 인증을 받았다 해도 절대로 타지 않겠다고  마음 먹었다.

그 후 그 비행기는 계속 여기 저기 잘 날라 다녔으며 나는 그저 가끔 구경만하며 몇 달이 지났다.  그런데 어느날 내가 돌았는지 그 비행기를 타게되었다. 타기는 탔지만 내 마음은 불안과 공포심 외에는 아무 것도 없었으며, 비행기가 활주로를 달리고 있을때에는 비행기를 세우고 나를 내려 달라고 하고 싶었는데 이미 때는 늦었다.  발악을 하듯이 왱왱거리는 엔진 소리, 계기판에는 아직 계기들을 다 안붙여 뻥 뚫어진 구멍들은 겁이 더럭나게 만들었다. 어쩌다가 이 비행기를 탔는가 ?  어디에 호소할 수도 없는 포기 상태로 10여분이 지난 뒤 공포심은 점점 안정되며 흥미로운 느낌으로 전환됨을 알 수 있었다. 나는 피터 팬이다. 나는 하늘을 날고 있다.

내 나이 57세가 되어 생활에 좀 여유가 생기자 나도 비행사가 되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자가용 비행기 조종사 면허증을 따기로 하였다. 영어 쓰기와 읽기 그리고 신체 건강하면 면허증 취득시험을 볼 수 있었다. 그래서 보스톤 근교의 작은 공항을 찾아가 비행학교에 등록하였다. 학과 시험은 15개 과목(비행원리, 공항법규, 안전, 기상, 항공의학 등)인데 FAA에서 발간한 책으로 공부하였으며 시험은 공항에 있는 비행학교 컴퓨터로 아무 때나 볼 수 있었고 결과는 그 즉석에서 나왔다. 보스톤 근교 핸스컴 공항 에서 교육받은 후 5개월 만에 조종사 면허증을 받아 집에 오니 내 아내는 축하는 커녕 "이거 진짜요 ? 아니 어디서 조종사 면허증을 자동차 면허증 모양 그리 쉽게 준단 말이요 ? "  하며 의아해 하고 있었다. 조종사 면허증을 따지도 못하고 도중 하차 하리라고 생각하였던 내 아내에게 큰 혼돈을 준 셈이다.

드디어 1997년 4만5천불을 주고 아쳐 경비행기를 구입 하였다.  내슈아 공항을 모 기지로 하여 첫1년간은 날씨와 시간 만 허락하면 목적지 없이 주변에 있는 산, 바닷가 등을 빙빙 돌았다. 마치 처음 자동차 운전 면허증이 생겼을 때 시간 만 있으면 동네 방네 돌아 다녔던 것같이.
나슈아공항은 작은 공항으로 소형 비행기들이 많이 있어 연료를 넣고, 각종 정비를 받기 좋은 곳이다. 소형 비행기 조종사들의 나이는 40대에서 80대 까지 다양하며 오로지 ‘비행기’가 공통 관심사이다. 이들 중에는 유나이티드 항공사에서 프로펠러 비행기로 보스톤과 샌프란시스코를 운행하던 조종사도 있다.  초보인 내게는 중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곳으로 교과서에서 배울 수 없는 많은 것을 배울수 있었다.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 아침에 기상만 좋으면 10여명이 공항에 모여 각자 자기 비행기를 몰고 50마일 내외에 있는 그날의 목적지에 착륙하여 식사도 같이 하고 즐거운 시간을 갖다가 다시 모 기지로 돌아오곤 했다.
2000년 2월에는 후로리다 주 레이크 랜드에서 개최된 비행기 박람회에9대가 단체로 참가 했었다.  전 미국에서 모여든 3천여대의 비행기가 한곳에 집결해 있고 조종사 들이 자기 비행기 옆에 텐트를 치고 숙영하는 모습은 실로 장관 이었다.

지난 10년간 비행기를 타면서 한국인 아니 동양인 조종사는 한 사람도 만나지 못했다.  경비행기 조종 취미는 우리가 자라온 환경과 잘 안맞는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본인이 흥미만 있다면 비행기 타는 취미는 그리 힘들지 않다.  비행기 구입시 은행 대출도 쉽고 보험료도 자동차와 비슷한 기준이다. 3-4명이 공동으로 구매하여 소유할 수도 있다.

비행기를 타면서 한국 동포들로부터 받는 오해가 두가지 있다.
첫째:  한인사회 모임 이나 교회에 나갔을때 "자가용 비행기"를 소유한 사람으로 소개되면 엄청난 부를 이루고 크게 성공한 사람으로 오해한다.
둘째: 어떻게 그런 도전을 할 수 있었느냐고 묻기보다는 "떨어지면 어떻해요" 하면서 안쓰러운 시선으로 처다본다.
한인 친구나 친지들을 태우고 비행한 경험이 여러번 있었다.  대개는 비행기에 앉으면 표정이 굳어지고 그렇게 심각할 수가 없다.  비행기가 이륙할때는 공포에 질려 안색이 하얗게 변하는 친구도 여럿 있었다.  물론 한번 타보고 자꾸 더 태워달라는 사람도 많았지만……

비행기는 위험하다.  그러나 자동차도 위험하다. 미 연방 항공국(FAA) 의 항공관련 사고 분석 내용을 보면 90%가 날씨, 6%가 연료부족, 그리고 4%가 기타 사항이다.  좋은 날씨에 연료를 충분히 넣고 무리한 비행을 하지 않는다면 비행기는 아주 안전하다.  자가용 단발 비행기는 매년  FAA가 지정한 검사소에서  "오장육부" 를 철저히 검사하며 합격 인증을 한다.  그럼에도 우리 집안의 한 어른께서 나의 비행취미 생활에 크게 놀라시고 "당장 중지 할것" 을 명령 하시어 다시 타지 않겠다고 말씀 드렸지만 아직도 몰래 계속 조종간 을 잡고 있다.

이번 대륙 횡단비행의 백미는 비행 3일째 통과한 그랜드 캐년이다.  보통 그랜드 캐년 관광을 가면 어느 한쪽 절벽에 서서 반대편 절벽을 바라보면서 그 엄청난 대 자연의 경이에 놀라게 된다. 그런데 지금 내 비행기는 정확히 양쪽 계곡 중간의 콜로라도 강 위를 비행하면서 150 마일 이나 되는 이 거대한 자연의 신비를 처음부터 끝까지 자세히 홅어 내려가고 있다.  곧이어 엄청난 후버댐이 밑으로 지나간다.  꼬박 5일이 걸린 대륙왕복 횡단 비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 왔다.
참으로 광대한 땅이었다.  그리고 왕복 5,500마일의 비행동안 수많은 공항 관제탑과 항공운항 통제소(ATC)와 교신할 때 그들의 말을 알아듣고 대답하면서 무사히 비행을 마쳤다는 데 스스로의 만족감을 느낀다.  고국에서 3년간 공군 복무시절 비행기 한 번도 타보지 못했던 나에게는 일생에 잊을 수 없는 취미생활 이었다.

나는 늘 조종하는 동안 죽음에 대한 염려나 공포는 전혀 하지 않았다.  항상 철저히 정비되어 있고 2중 안전장치의 계기 및 부품에 대한 신뢰도 있지만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믿음때문이었다. 만약 비행중 절박한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면 그순간 지상에 있었더라도 똑같은 상황에 처했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그 때 하나님께서는 그 위기를 벗어날 수 있는 지혜와 용기를 주시리라고 믿는다.


메사추세츠, 그로톤에서
장창섭      
chang45@charter.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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