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게 사람들
보스톤코리아  2007-12-22, 23:20:15 
김영애  (브루클라인 거주)


난 책 읽기를 참 좋아한다.
몇 년 전만해도 이 곳에서 한국보다 비싸도 책을 사 읽었는데 지금은 달러가치 하락으로 한국보다 많이 비싸다는 느낌이 들어 생각해 낸 것이 보스톤 도서관을 이용하자는 것이였다. 한 번 가면 10권 넘게 빌려와 읽곤 하는데 매 번 갈 때마다 느끼는 생각은 일본 코너에는 참 많은 일본 책이 진열되어 있구나 라는 점이다.
한국 코너는 일본 코너에 반도 못 되게 진열되어 있고 오래된 책이 더 많다. 그래도 난 한국책 코너가 있다는 것에 감사하면서 갈 때 마다 책 정리를 해놓고 온다. 거꾸로 놓인 책은 바로 놓고 시리즈로 나온 책은 순서대로 정리하고, 아이들 책은 아이들 책이 있는 곳에 두는 등 다 정리되었다고 느끼는 순간 내 기분은 참 좋아진다. 진작에 사서공부나 하여 책이 많은 도서관에 묻혀 살 것을 하는 생각이 든다.
나이를 먹어가니 술술 읽히는 책 보다 한 구절을 읽더라도 다시 읽고 생각할 수 있는 책이 좋다. 나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살았다고 하지만, 무엇인가 부족한 느낌이 들고, 어떻게 사는 게 더 옳은 삶인지 몰라 사는데 도움이 되는 책에 손이 더 간다. 맹자왈, 공자왈...
우리 가게는 흑인, 스페니쉬 계통을 상대로 옷 장사를 한다. 일하는 사람도 역시 흑인, 스페니쉬이다. 요즈음과 같이 경제가 나빠 장사가 안 되는데 일하는 사람이 우리 가게 옷에 손을 댄다면...눈 뜨고 코 베어 간다고 내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슬쩍하고, 어느 날 손님이 와서 일하는 사람이 옷을 훔치는 것을 보았다고 말했을 때 일이 끝나고 집에 들어서면 온 몸이 천근만근 같다.
이 곳에서 횟수로 2년 정도 일했지만 손님이 오면 옷차림, 행동거지 등으로 어떤 부류의 사람인지 파악된다. 대충 어떤 치수를 입는지도 맞춘다. 우리 가게에 8년 넘게 일하는 흑인은 언제나 깨끗한 정장을 하고 출근한다. 가끔은 일을 하러 가게에 온 것인지 의문이 들 정도로 손님들과 잡담이 많다. 길면 30분도 좋다. 여자 손님이 오면 얼마나 다정하게 구는지... 자신에게 피해를 주지 않은 사람은 모두 다 좋은 사람으로 얘기한다. 언제나 좋은 이미지를 주려고 나쁜 이야기는 하지 않고 씩씩하고 강한척하면서 자신의 앞에서 어린 학생이 위험에 닥쳐 있는데도 말 한마디 안 한다. 자신에게 나쁜 일이 일어나는 것이 싫단다. 아무리 위험한 지역인 Roxbury라도... 기가 막히고 어이가 없다.
이 사람에 대해 자세히 몰랐을 때는 이런저런 얘기도 나누고 웃곤했다. 그러나 내가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교육 얘기가 나오면 이 흑인은 자기는 술주정뱅이 아버지랑 헤어진 후 어머니 밑에서 많은 형제랑 어머니의 좋은 가르침을 받았고 자신은 높은 교육을 받았다고 말한다. 정작 남의 물건에 손대지 말라는 교육은 못 받은 것 같다. 가끔 부자인척 얘기하면서 매일 몇 분씩 점심값을 가불해 가면서 사오는 점심은 Walgreens에 가서 1불 짜리 컵라면…. 나머지 돈은 scratch ticket을 사와 큰 행운이 오길 빌면서 열심히 긁어댄다. 그러나 매번 꽝이다. 요새는 경기가 안 좋아 당첨되는 행운이 더 적다고 하지 말라고 해도 안다면서 미련을 못 버리고 매일매일 긁어댄다. 때로는 게임장에도 부부동반으로 주말에 갔다왔다 한다. 스포츠 게임에도 어느 편이 이기나 돈내기를 한다. 이 곳에 사는 많은 사람들은 열심히 일해 돈 벌 생각은 안하고 쉽게 얻으려고 많은 사람들이 scratch ticket을 사 열심히 긁어대거나 거짓으로 얘기해 정부로 부터 무슨무슨 연금을 탄단다. 왜 그렇게 사는지 이해가 안 된다. 보다 나은 삶을 살기보다는 언제나 같은 삶. 언제까지 그런 삶을 살지 걱정스럽다. 아이가 없을 때는 봐 주겠는데 아이가 태어났는데도 여전히 남의 물건에 손을 대면서 산다면 아이가 무엇을 배우고 자랄지 걱정이다.
우리 가게에서 일하던 스페니쉬 남자가 우리 가게의 물건을 훔쳐 내다판다는 정보를 듣고 내보냈다. 거의 1년을 하는 일 없이 지내다 큰 슈퍼마켓에서 일한다면서 돈 받은 내역서를 보여주고 자신도 이젠 tax를 낸다고 우리가게 와 자랑하더니 쉬는 날도 아닌데 무거운 가방을 들고 와서는 그 속에 향수가 들어있다고 한다. 슈퍼마켓에서 일하는데 웬 향수가방! 의문이 가고 옆집 가게에서 옷을 훔쳤다는 얘기를 들었을 땐 참 안타깝다. 딸이 점점 자라는데 왜 삶을 안 바꿀까?
또 다른 스페니쉬 계통의 남자는 일하는 시간에도 슬금슬금 술을 마시지 않나...어느 날 밖에서 캔 맥주를 마시는 것을 내게 들켜 얘기하니 자신이 산 게 아니고 친구가 사줘 마신다고 해 내가 직접 친구에게 사주지 말라고 얘기 하기를 여러 번이다. 가끔 일을 할 때 보면 손을 떨고 있고 옷 치수도 빨리빨리 못 찾는다. 알코올 중독자이고 문맹인 것 같아 술 좀 그만 마시고 공부를 하던지 책을 읽으라고 하면 그런 것은 싫단다. 한 번은 자신의 이름을 쓰는 것을 보았는데 이건 쓰는 게 아니라 그리고 있었다. 여자 손님이 마음에 들면 전화번호를 묻지 않나, 내가 손님에게 그러지 말라고 하면 자신은 부인 밖에 없고 장난 삼아 한다고 한다. 출근 시간 보다 늦게 오는 날 언제나 하는 소리가 버스를 놓쳐서 걸어 오느라고 늦었단다. 절대로 어제 저녁 술을 마셔 늦게 일어나 늦었다고 하지 않는다. 술 냄새가 나는데도...손님들이 들어와 술 냄새가 나 싫다고 해 더 이상 두었다간 가게 이미지가 나쁠까봐 내보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자기가 왜 해고 되었는지 잘 모르고 있다. 언젠가는 다시 우리 가게에서 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갖고 매일매일 오다 자신의 자리에 다른 사람이 왔다는 것을 안 뒤로 뜸하게 온다. 우리 가게가 아니면 받아 주는 곳이 없어 인생이 불쌍해 기회를 주기를 몇 년 째. 내보내고 나면 매번 다시 찾아와 절대로 술을 마시지 않고 정시에 출근하고 열심히 일할 것이니 기회를 달라고 해 기회를 주면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내일 모레면 50살이 되는데 아직도 엄마 집에 얹혀 살고 부인은 사촌 여동생이란다. 얼마나 대가족이면 한쪽에서 알아보고 내가 누구요 밝히기 전에는 자신의 친척인지도 모르고 지낸단다. 부인과도 처음에는 모른 상태에서 만나 지내다 관계를 알게 되었는데도 같이 산지가 10년이 넘었단다.
일하는 사람들을 잘 대우해주면 일을 더 잘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잘해주면 사람을 우습게 여기는 것 같다. 어떨 때는 오늘 하루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가게에 나가고 싶지 않으나, 아들도 다른 지역에 있는 대학으로 공부하러 가고 아무도 없는 텅 빈 집에 있기 뭐하고, 내가 있어야 가게가 잘 되지 않을까 하는 착각을 갖고 매일매일 가게로 향한다.
사람이 사람을 못 믿는 세상! 너무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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