望鄕(망향)의 傳說(전설)적 意味(의미)
보스톤코리아  2008-02-24, 08:54:04 
홍순영(한미역사문제 연구위원)


어머니의 따뜻한 품 속까지는 아니더라도 고향 어귀에 다다랐을 때 느끼는 가슴 저릿한 떨림은 고향을 찾는 사람 누구나의 설레임일 것이다. 고향! 사람에게는 누구랄 것 없이 고향은 있게 마련이다. 다만 고향을 그리는 마음이 사람마다 조금씩 다를 뿐이다. 남달리 고향을 못 잊어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태어난 곳이 고향이라고 담담하게 잊으려고 하는 사람도 있다.
어쨌든 한국인의 고향을 향한 애착심은 세계 어느 나라 어느 민족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애향 지향적인 민족이 우리 한인들인 것 같다. 한국인의 애향심은 조상숭배 사상과 이웃이란 공동체를 형성하며 서로 품앗을 나누며 고락을 함께 하며 살았던 혈연, 지연이 원인이였지 않았나 싶으며, 민족 수난사에서도 그 원인을 찾아볼 수 있을 것 같다. 민족 수난사에서 불리워진 실향민이나 유민, 이민이란 말은 12세기 고려조 무신 정권에서부터 조선조와 일제 강점기까지로 설명될 수 있을 것 같다.
고려조와 조선조 500년 역사에는 지방관헌이나 사대부들만이 토지를 소유할 수 있었으며, 농민이나 천민들에게는 제한적인 토지만을 소유토록 하고 군역과 부역에 시달리며 목숨을 연명해야 하는 천민 신세가 되다보니 이들에게는 고향 자체가 괴로움의 터전이 되고 말았다. 착취에 시달린 농민과 천민들은 도적이나 화적 떼가 되어 지방 관리와 사대부에 대항하는 반항 집단이 되면서 도처에서 민중봉기를 일으킨 세력이 되었다.
민중봉기의 대표적인 사건은 조선조 순조 때 일어난 '홍경래의 난'일 것이다. 평안도, 황해도에서 시작된 홍경래의 민중봉기는 양반정치 제도에 대한 봉기가 확산되어 조종을 위협한 반란이였다고 하겠다. 그밖에 고종 31년에 발생된 동학 혁명은 전라도의 작은 고을 고부에서 양반세력과 고부 군수의 수탈에 대항하는 농민 봉기였지만 부패한 세도 정치와 양반 지배 계층에 대한 농민과 천민들의 반항운동으로 보는 것이 확실한 설명이다. 홍경래의 난이나 동학의 민중봉기는 조정과 양반 계급에 대한 농민과 천민들의 저항 운동이었지만 을사보호조약에 의한 일본에 대한 국민 봉기는 그 차원이 전혀 다르다는 것이 특징이다.
대륙 침략을 노려오던 일본은 '포스모스' 강화조약을 통해 러시아와 청나라 그 밖에 미국, 영국의 세력을 무력화 시키고 조선과는 강제로 을사보호조약을 체결하고 정치, 군사, 경제, 외교권을 탈취하면서 조선에 대한 지배권을 확대해 나갔다.
을사조약 체결로 조선 국민은 양반과 천민이 혼연일체가 되어 의병과 독립단을 조직하고 매국노를 습격하고 일본 통감부에 대항했던 투쟁은 임진왜란 때 처음으로 양반과 천민이 합세하여 왜군과 싸운 이후 처음이었던 호국정신이었다.
1910년 일본이 우리나라를 합병하고 총독부의 무단정치가 본격화 되면서 일본은 한국인의 토지 탈취를 목적으로 토지조사국을 설치하고 조선인의 토지를 신고토록 하고 신고에 불응한 토지를 몰수하여 일본인에게 헐값으로 넘겨주는 특혜를 주면서 조선인의 토지를 강제로 수탈했었다. 토지를 빼앗긴 조선인은 가족의 호구지책을 위해 고향과 조국을 떠나 북간도나 연해주로 이주, 농토를 개간하고 망국의 한을 달래며 살아야만 했다. 나라 잃은 백성으로 일본이 일으킨 전쟁에 시달리며 살아온 우리 민족에게 하나님은 해방이란 감격을 안겨 주었지만 통일 정부를 수립할 만한 역량을 갖추지 못한 국민과 민족 지도자들은 좌우 대립의 싸움질로 자주 통일 정부를 세우지 못했다.
그런 중에 소련은 그들이 점령했던 북한지역에 김일성 공산 괴뢰 정권을 수립시켜 놓고 남한에 대한 침략전쟁을 일으켜 200만명의 사상자를 발생케한 민족 상산의 비극을 초래케 했다. 국토분단과 6.25 전란으로 1,000만 북한 동포들은 지금도 헤어진 부모형제와 고향산화를 그리워하며 망향의 설움을 달래가며 살아가고 있다. 일제의 지배와 봉건사회에서 양반이나 사대부 지방 관리의 수탈에 시달리며 고향을 등졌던 힘 없는 백성에게는 그래도 돌아갈 수 있는 고향은 있었다.
그런데 지금의 내 조국 현실은 어떠한가? 해방 6.25를 겪으면서 사흘이면 돌아오리라고 부모형제의 손을 놓고 떠난 피난길이 반백의 피난살이가 될 줄은 그 누군들 알았을까? 9살 어린 소녀였던 아내는 고향 개성 땅을 떠나면서 겪었던 단장(斷腸)의 기억들을 들려 줄 때 마다 남편인 나는 생전 가보지도 못한 처가 마을 풍경이 수채화에 그려진 그림처럼 내 눈앞에 그려진다.
그래서인지 우리 민족에게는 고향을 그리워하는 애절한 노래 가락이 유난히도 많이 불리워지고 있다. 사람마다 제 각기 애뜻한 사연을 간직한 가요 가운데는 이역만리 이민의 삶에서 부모 형제 친구를 그리는 노래도 많다. 그렇지만 고향을 그리워하며 부른 가요 중에는 설운도가 부른 '실향민의 한', 백난아의 '찔레꽃', 한정무의 '꿈에 본 내 고향' 그 밖에도 헤아릴 수 없는 고향을 그리는 노래가 실향민의 마음을 달래주고 있다. 실향민으로, 실향민의 후손으로 살아가며 이역만리 미국 땅에서 북녘땅 고향산하와 부모형제를 그리며 살아가는 이북 5도민들의 한 맺힌 설움을 달래려는 글들은 신문이나 잡지 속에 애절하게 쓰여져 있다.
이런 글들 가운데에서도 '장도영' 장군께서 보내 준 그의 한 맺힌 굴절의 삶을 역사의 심판 속에 묻어두려고 쓴 자서전 '망향'을 읽으면서 우리민족에게는 망향의 의미가 어떻게 전해지고 있는지를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의견목록    [의견수 : 0]
등록된 의견이 없습니다.
이메일
비밀번호
“커피 한 잔 한인회 돈으로 안마시고” 2008.03.09
“보시면 알겠지만 한인회 재정이 이렇습니다. 커피한잔 한인회 돈으로 안마시고…” 안병학 한인회장은 총회에서 민유선 노인회장의 질문에 이렇게 답변했다. 이에..
설날의 진정한 의미는? 2008.03.01
“설” 또는 “설날”을 가리키는 한자어는 무척 많다. 정초(正初), 세수(歲首), 세시(歲時), 세초 (歲初), 원일(元日), 연두(年頭), 연수(年首),..
望鄕(망향)의 傳說(전설)적 意味(의미) 2008.02.24
홍순영(한미역사문제 연구위원) 어머니의 따뜻한 품 속까지는 아니더라도 고향 어귀에 다다랐을 때 느끼는 가슴 저릿한 떨림은 고향을 찾는 사람 누구나의 설..
역사와 문화를 둘러보는 일본 여행기 마지막회 2008.02.24
▲MA주 주청사를 본따서 만든 구도청 청사. 지금은 문서보관소로 사용된다 ▲클락 교수가 떠나는 장면 그림 김은한 (본지 칼럼니스트) 삿포로(札幌)..
崇禮門 回想 2008.02.18
김은한  (본지 칼럼니스트) 조선왕조가 도읍을 한양으로 정하고 왕궁(경복궁)을 지을 때 어느 쪽으로 향하는 것이 제대로 하는 것이냐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