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일강이 들려주는 삶과 죽음, 그리고 영생의 이야기 5
보스톤코리아  2008-07-28, 09:35:19 
글: 강길원
사진: 김정선


8. Luxor (Thebes) 이야기
12왕조 이후 아시아계의 이민족 힉소스(Hyksos)족이 침투함으로 이집트는 200년동안 쇠퇴기에 들어가게 되는데 테베의 왕자 카모스가 힉소스족에 반란을 일으킨 이후에 그의 동생 아흐모스가 힉소스족을 추방하고 제 18왕조의 첫번째 파라오가 됩니다(BC 1570-1546). 이리하여 신왕국 시대인(BC 1570-1069), 제 18, 19, 20왕조가 32 파라오에 의하여 통치되는데 이 신왕국의 수도가 룩소(Luxor 그리스이름 테베-Thebes)입니다. 이집트의 전성기였으며 그 문화유산의 양과 질이 가히 상상을 초월했다고 합니다. 전문가들에 의하면 지금까지 발견된 모든 유물의 약 3분의 1에 속하며 지금까지도 땅속에 뭍혀 있는 유물의 양과 질을 다 예측할수 없다고 하는데 땅을 파면 팔수록 새로운 것들이 계속해서 발견된다고 합니다.

우리는 카이로 공항에서 이집트 국내선을 타고 약 한 시간 반 후에 룩소에 도착하여 Nile River Cruise에 여장을 풀었으며 앞으로 펼쳐질 4일간의 기대에 한껏 부풀었습니다.

룩소와 그 근교에 펼쳐질 문화유산을 다 정리하거나 모두 방문하는 것은  Cruise를 이용한 단기 여행으로는 불가능하다고 생각됩니다.
우리가 방문한 유적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1) Karnak 신전
2) Luxor  신전
3) Valley of the Kings
4) Tombs of the Kings
5) Colossi of Memmon (맴논의 거상)    
6) Hatshepsut (핫셉슈트 여왕의 장제전)
그 외에도 Dendera에 있는 Hathor를 숭배하는 신전, Abydos에 있는 Osiris신전, Esna에 있는 Khum 신전들은 시간이 없어 방문하지 못하였습니다.
룩소는 현제 약 10만명이 사는 작은 도시지만 전성기에는 약 100만명의 인구가 살았다고 합니다. 호메르스는 일리아드에서 "테베는 집집마다 보물이 가득하고 100개의 문이 있는 도시"라고 전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No(노)와 그리스식 이름 Thebes(테베)가 다 룩소를 가르키는 말이라 합니다.

9. Karnak 신전 (카르낙 -가장 완벽한 신전)
룩소에 있는 4개의 신전중 가장 오래된 신전으로 룩소 신전과 마찬가지로 룩소의 지방신에서 신왕국시대에 우주의 창조신으로 격상된 Amon 신을 위해 봉헌된 신전입니다. 제18왕조의 아멘호테프 2세(BC1453-1419)에 시작하여 그리스-마케도니아 혈통의 Ptolomaic왕조(BC 305-51) 에 걸쳐 1,500년 동안 건축되고 증축된 신전입니다. 남쪽에 있는 무트(Mut) 신전, 북쪽에 있는 몬투신전으로 구성되며 주신전인 아몬 신전은 로마의 베드로 성당, 파리의 노틀담 성당, 이탈리아 북부의 밀라노 성당이 한꺼번에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넓다고 합니다. 그리고 카르낙 신전은 약 2,000m 떨어진 룩소 신전과 인간의 머리를 한 스핑크스 통로로 연결되었었다고 합니다.

나일강이 보이는 넓은 광장을 지나 카르낙 신전의 전면 건물을 지나면 무트 신전에 있는 양머리를 한 스핑크스들의 통로를 통하여 주 신전인 아몬 신전 내부에 들어서게 됩니다.  하늘 높이 높게 뻗어있는 기둥들이 나타나면서 심장의 박동이 정지하는 것 같은 느낌을 갖게 됩니다. 일부 남은 지붕으로 다소 어두운 다주식(多柱式) 홀은 길이 102m, 넓이 53m 의 크기라고 하는데 좌우 양쪽에 67개씩 134개의 거대한 신전 기둥들이 늘어 서 있었습니다. 기둥 하나가 높이 23m, 둘레가 15m에 달하며 거대한 기둥숲(Hypostyle Halls)이라는 이 다주식 홀은 상상을 초월하여 보는 이로 하여금 깊은 생각에 잠기게 하였습니다.

지붕밑에 돌로된 창문이 있어 햇빛이 통하게 하였다고 하는데 모든 기둥과 벽에는 이집트 상형문자와 신과 인간, 자연, 동물, 식물, 제사 등등 끝없는 이야기들이 기록되고 조각되어 있었습니다. 수천년 동안의 신과 인간의 이야기들을 읽기에는 지식이 부족하고 시간이 부족하였습니다. 수 많은 파라오들이 그들의 이야기를 신과 함께 펼치고 있으며 파라오들의 석상들이 수 없이 많이 조각되어 있었습니다.  거대한 돌기둥이나 석상, 그리고 돌들이 아스완의 채석장에서 나일강의 뗏목을 이용하여 옮겨졌다고 하는데 3500년전 원시적인 장비로 어떻게 옮길 수 있었는지 과연 상상을 초월합니다. 신을 위한 헌신인지 파라오의 통치에 의한 강제 노역이었는지, 아니면 신과 파라오를 위한 참여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신전에 기록된 신과 파라오 이야기에 기록되지 않은 수많은 이름없는 이집트인들의 아픔과 고통과 사랑과 죽음의 이야기가 들리는듯 하였습니다.

다주홀의 신전 기둥숲을 지나서 밖으로 나오니 두개의 높은 Obelisk Monument 가 보였습니다. 제 18왕조 투트모스 1세(BC 1524) 와 3세(BC 1504-1450)가 세운 두 쌍의 오벨리스크들 중 하나(높이23m, 무게143톤)가 서 있었고 또 핫셉슈트 여왕(BC 1498-1483)이 세운 2개의 오벨리스크들 중   하나가 서 있었습니다(29.56m). 이집트의 오벨리스크들중 몇 개는 영국으로, 프랑스로, 로마로, 그리고 미국으로 옮겨졌다고 합니다. 신전 한쪽에 누워있는 다른 오벨리스크도 있었습니다. 오벨리스크란 그리스어로 작은 꼬챙이란 뜻이며 아스완 지역에서 생산되는 붉은 화강암으로 한덩어리의 돌로 만들었는데 원시적인 기술과 도구로 어떻게 그렇게 섬세하고 정교한 작품을 만들었는지 감탄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아스완 채석장에 누워있는 미완성 오벨리스크 또한 경이적이었습니다.

돌산을 깍아서 만든 미완성 오벨리스크로 가운데가 금이 가 있어 완성되지 못한채 방치되어 있었는데 원래 태양신 Ra에게 헌납하는 오벨리스크는 절대로 금이 가면 안되는 것이었기 때문에 포기한 것이라 합니다. 이 오벨리스크가 완성되었더라면 41.75m 로 가장 높은 오벨리스크가 되었을거라고 하는데 이를 옮기기 위해서는 40개의 로프를 걸고 6,000명의 인부가 끌어야 된다고 합니다. 누워 있는 오벨리스크 밑부분에 어떻게 돌의 결을 따라 돌을 쪼갰는지를 보여주는 조그마한 돌 구멍들이 연속적으로 보이는데 파피루스 줄기를 꽂아 물로 불리면 그 압력으로 돌이 결에 따라 갈라진다고 하였습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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