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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 마운틴의 주역들
보스톤코리아  2009-09-21, 15:23:08   
Crawford Path (크로포드 등산로) 를 3시간 오르니, 이번 산행 목적지인 Mt. Pierce( 해발 4,310 feet, 1,314 m) 정상에 올랐다. NH의 혹독한 기후로 나무가 자라지 못해 봉우리가 대머리이다. 동행한 보스톤산악회 회원들이 점심을 정상 한 바위에 풀어 놓으니 마치 산 전체가 식탁 같은 착각을 하게 한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다. 장엄하고 아름다운 주위 경관을 한눈으로 내려보는 후련함은 산에 올라야 갖는 특권이다. 저 아래서 축척된 일상의 스트레스를 지고 산 정상에 올라 한 가닥 바람에 날려 보내 수 있어서 더욱 그렇다. 가파른 호흡을 하며, 땀을 마다하고 높은 산을 이래서 오르는가 보다.

산악회의 김상호 리더가 제 14 대 대통령의 이름을 딴 Mt. Pierce에서 북동쪽으로 계속되는 Crawford Path를 타면, 차례로 Mt. 아이젠하워 (34대), Mt. 몬로(5대) 봉우리를 거쳐 , 주봉인 Mt. 워싱턴 (초대)의 정상에 오른다고 한다.

Mt. 워싱턴의 높이는 6,288 feet (1,918 m)로 남한의 가장 높은 한라산 (1950m)에 비견된다. 그 북쪽으로 레간 (41대, Mt. Clay에서 개명됨), 제퍼슨 (3대), 아담스 (John Adams, 2대), 매디슨 (4대) 등 역대 대통령이름을 가진 대머리 봉우리들이 이어져 있다.

이들 산악지역을Presidential Range (대통령 지역) 라고 부르며 , 이는 NH와 메인주의 일부에 걸쳐진 White Mountains National Forest ( 화이트 마운틴 국유림) 에 속해 있다. 보스톤에서 120 마일 북쪽에 위치한다.

Crawford Path 이외에 Crawford Notch(협곡), Crawford Notch Rd. ( US루트 302), Mt. Crawford, 그리고 Crawford House 표지판이 대통령지역 곳 곳에 널려 있다.

Crawford는 누구일까 4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 가보았다.
16세기 초 백인들이 미대륙으로 오기 전 White Mountains 지역에는 5,000년 동안 Pequawket( NH Conway 지역)와 Pemigewasset(NH Franklin 지역)라고 불리우는아베나키(뜻:동쪽의 사람) 인디안, 그리고 Pennacook(NH Concord 지역) 이 있었다.

이들은 White Mountains을 Agiocochook ( 뜻: 위대한 신령의 처소, 또는 Waumbekket Methna, 뜻: 백색 산) 이라고 불렀다. 백인Davey Field가 1642년 6월 Mt. 워싱턴을 오르려고, 산 기슭( Saco 강 상류지점)에서 200여명의 아베나키 인디안 부락을 발견하였다.

이 인디안들은 Field와 산에 오르면 죽게 된다고 믿어, 어느 지점 이상은 오르기를 거부하였다. 결국, 타 지에서 온 인디안 2명과 함께 정상에 올랐다. 인디안Mt. 워싱턴은 인디안은 신성시하여, Field 가 최초로 오른 사람으로 간주 된다.

인디안들은 토지의 소산물은 토지를 자신들과 공유하는 신령이 인간에게 주는 선물이라고 여겨, 토지를 사유화하지 않았다. 인디안들은 백인들과의 접촉으로 돌이킬 수 없는불행한 말로를 맞게 된다. 미 대륙에는 콜레라, 천연두 등 백인들의 여러 전염병이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 따라서 인디안들에게는 선천적으로 면역성이 결여 되어 있다.

가장 일찍이 백인들과 접하게 되는 이 아베나키 인디안은 전염병으로 1650년 경에는이미 90% 의 인구를 잃게 된다. 순식간에 일어난 세대의 단절로 이들의 역사와 생활관습은 커녕, 이들이 Mt. 워싱톤을 정확히 어떻게 불렀는지도 알 수 없다. 설상가상으로 인디안들은 자신들의 생활 터전으로 침범하여 오는 백인들과 피치 못할 상호 살륙전을 치루게 된다.

물을 불 태우고, 낙엽을 다시 살려 내는 등 괴력을 가졌다는Pennacook 인디안의 Passaconaway (뜻: 곰의 아들) 추장은10여 부족을 연합하고 주도하는 강력한 추장이었다. 그는 백인의 우월성을 일찍 인정하고, 최초로 백인에게 땅(Andover, 1643년)을 파는 등 매우 호의적이 었다.

120 살이 되어 추장을 사임하면서 “나는 백번이나 더 넘게 혹독한 겨울을 이겨낸 참나무다. 이제 나이가 많아 바람에 이 나무 기둥이 부러질 것이다. 위대한 신령은 백인과의 평화를 명한다. 나의 마지막 소원도 평화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백인들은 인디안들과의 평화를 결코 추구하지 않았다. Passaconaway 추장의 말로는(1669 사망) 자세히 알려 지지도 않는다. Passaconaway의 아들인 Wonnalancet 은 기독교로 개종 (기도하는 인디안이라고 칭함)하기 까지 하였다. 1662년 뉴잉글랜 전역에서 인디안들이 백인들에 무력항쟁(King Philips War)을 감행할 당시에도 자신의 인디안들이 백인을 공격하는 것을 금하였다.

그도 종래 추장을 내 놓고 카나다로 이주하였다(1697 년 사망). Wonnalancet의 조카인 Kancamagus (US 112도로의 이름)도 용감하고 정략적이었으나 백인과의 공존이 어렵자 백인 촌을 습격한 후 카나다로 도피하였다. 당시 인디안 머리 당 100파운드라는거액의 포상금이 걸려 있었다.

1725년 Lovewell의 대대적인 인디안 토벌과 더불어 대부분의 인디안들이 이 지역을 떠나 카나다로 이주하였다. Pequawket추장 Chocorua는 조상의 땅을 지키기로 결심하고 떠나지않았으나 비참한 최후를 맞게된다. (다음 회 계속)

역사문제연구소 윤희경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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