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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톤코리아  2010-04-19, 12:13:44   
 
 수많은 인생의 갈림길과 그에 놓인 선택을 거쳐 걷는다. 한걸음. 한걸음. 처음에는 조심스럽게 그러나 머지않아 걷고있다는 사실을 의식조차 못한채 제멋대로 걷는 낡은 구두에 몸을 의지한다. 이 길이 어디서 시작 되었는지,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궁금하지도 않은지 버릇처럼 하염없이 내딛어지는 발걸음. 그러다 문득 소리없이 흩어지는 모래성처럼 형체를 알아볼수 없게 무너져내리는 나의 모습을 발견하곤 그제서야 생각해본다. ‘내가 가는길… 내가 버린길…’

이미 턱까지 차오른 숨과 힘이 풀려 허공에서 허우적대는 팔다리를 애써 무시하며 빠른속도로 내려왔던 길을 다시 되짚어 올라간다. 겨우내 땅위의 모든것을 깨끗이 덮어버리고 소리마저 먹어버리던 눈이 날씨가 풀리자 기다렸다는듯 대지로 대기로 쏟아져 나오는 생명의 소리로 포화상태가 되었는지 봄의 기운이 귀를 감싸고 그 너머로 들려오는 동료의 몰아쉬는 숨소리. 나 아닌 다른 존재와 함께 함으로써 자칫 큰 공포감에 빠질수 있는 이 상황을 어느정도 즐길수 있다는 사실에 안도한다.
 
20여분전 지나쳤던 갈림길을 떠올린다. 정상에서 모두와 함께 기분좋은 날씨와 경관을 만끽하고 점심도시락도 맛나게 까먹고 여느때와 다름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하산하는 길이었다. 하지만 잠시 주춤하는 사이 선두조가 보이지 않을만큼 앞서 나갔고 그 둘은 갈림길에서 선택을 했다. 한참을 내려가도 앞에서 사람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그러고보니 길도 낯설다. 올라올때 보지 못했던 급경사와 바위들. 결정적으로 태양의 방향이 뭔가가 잘못됐음을 일러준다. 돌아가고파 고개를 돌린다. 생각보다 심한 경사에 어지럽게 흩어져 있는 발자국들을 보니 쉬이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조금 더 전진. 역시나 ‘이 길이 아닌게벼.’ 그들은 몇차례 의견을 주고받은 끝에 정상쪽으로 되돌아가기로 마음을 굳힌다. 그때부터 걱정이 물밀듯 의식을 침투하며 뒷북을 쳐댄다. 산을 미처 내려가기 전에 해가 져버릴까. 다른 산악회 회원들이 집결지인 주차장에 이미 도달하지는 않았을까. 주차장에서 최종 인원 점검을 하며 두사람이 빠진것을 알아채고 걱정하는 동료들의 모습이 눈앞에 떠오른다. 그 광경을 머릿속에서 지우려 발걸음을 재촉한다.

그 둘은 입을 앙다물고 한번왔던 그길을 필사적으로 되돌아간다. 조금전 내려올때보다 더 빠른 속도로 눈쌓인 오르막길을 오른다. 숨이 가빠지고 관자놀이에 맥박이 강하게 느껴진다. 어느새 입에서는 단내까지 난다. 끝이 없을것만 같던 오르막길이 완만해지고 눈에 익은 문제의 갈림길이 나온다. 허탈한 웃음. 어떻게 헷갈렸는지도 모를 정도로 명확한 푯말이 눈에 들어온다. 잠시 앉아서 숨을 고른다. 뜬금없이 드는 생각. ‘내가 살아온 길도 이렇게 되짚어 갈수 있다면, 그래서 선택을 다시 할수 있다면… 나는 나를 찾아낼수 있었을까?’
이제는 추격이다. 모두가 주차장에 도착해서 낙오된 2명을 알아채기 전에 일행과 합류해야 한다는 생각에 내려간지 한참 지나 발자국만 남아있는 산우들을 쫓아 뛰다시피 하며 미끄러져 내려간다. 다행히 길도 어렵지 않고 마음도 한결 가벼워서 농담도 주고받으며 그 시간을 나름대로 즐긴다. 하지만 아무리 빠른 속도로 내려간들 다른 길로 빠졌다 되돌아온 시간이 짧지 않았는지 그간 빠르진 않지만 꾸준히 산을 타고 내려간 동료들을 따라잡기는 쉽지 않다. 문득 그것이 우리네 인생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입가에 씁쓸한 미소를 띄운다.
따라잡기는 이미 그른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 즈음 멀찍히서 낯익은 뒷모습이 보인다. 피로도 걱정도 긴장도 여름 소나기에 반나절동안 흘렸던 땀이 씻겨나가듯 한순간에 사라지고 안도감이 북받쳐 오르는걸 느끼며 그를 향해 두사람이 내달린다.

차를 타고 집에 돌아오며 딱히 기분 나쁘지 않은 다리의 욱신거림과 평소의 두배 이상 되는 피로감을 느낀다. 비록 하산때 선두조에서 시작해서 가장 늦게 도착한 두 사람이었지만 그들의 얼굴은 환한 미소로 밝게 빛난다. 그리고 자신있게 말한다. 이번 산행은 정말 즐거웠노라고.
길을 걷다보면 해는 언덕을 넘어가고 바람은 구름을 불러오고. 길은 또 갈라지고 다시금 선택이 놓이고. 돌아가고픈 안타까운 마음에 주위를 둘러보지만 가만히 생각하보면 이 길의 시작은 내가 서있는 이곳이 아닌가. 별이 갈 길을 일러주고 이슬이 눈물을 덮어주고. 결국 관건은 아주 먼 훗날 힘이 다할때 웃고 잠들 수 있느냐는 것.

보스톤 산악회원 민윤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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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후/기 2010.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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