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넘쳐나는 거리 표어...잠 자는 것까지 간섭?
보스톤코리아  2007-04-27, 12:15:47 


▲ 한 농가의 벽에 '자녀계획, 남편책임'이라는 슬로건이 적혀있다


누구든 중국에 입국해서 가장 먼저 보게 되는 것은 눈에 띄는 곳마다 거창하게 걸린 ‘표어’이다. 중국 어디를 가든 각종 표어들이 눈에 띈다. 그래서 “만리장성, 판다곰, 공자와 함께 표어는 중국을 대표하는 키워드”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중국 신화왕(新华网)이 이렇게 과도한 중국의 표어 문화를 비판하고 나서 눈길을 끌고 있다. 매체는 기사를 통해 각종 괴이한 슬로건을 예로 들면서 문제점을 지적하고 표어들로 인해 발생한 웃지 못할 사건들을 소개했다. 또한 중국에 표어가 범람하는 이유를 분석하고 구시대적인 표어를 철거할 것을 주장했다.

◆ “신중하게 운전하면 어쩌고 저쩌고” …… “꽝!”

지난 11일 중국인 장췐민(张全民) 씨는 국도를 달리다 도로 상공에 걸린 표어 하나가 눈에 띄었다. 푸른색 바탕에 흰색 글씨가 잔뜩 씌어진 설치물에는 “신중하게 운전하면 천 번이 적고 부주의 운전은…” 이라고 적혀 있었다.

뒤에 적힌 문구가 잘 보이지 않아 고개를 숙여 위를 쳐다보던 장 씨는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한 사건을 경험했다. 표어를 읽느라 운전에 대한 긴장을 잠시 늦춘 사이 오토바이 한 대가 갑자기 앞으로 튀어 들어왔던 것.

장씨는 급하게 핸들을 꺾었고 차량은 도로 난간을 부딪치며 언덕으로 추락 5m 가량 밀려 내려갔다. 다행히 큰 상처를 입지는 않았지만 하마터면 대형사고로 연결될 수도 있었던 일이다.

현재 통원 치료를 받고 있는 장씨는 당시의 일만 생각하면 화가 난다. 그는 “그런 표어는 도대체 사람들이 보라고 걸어놓은 것인지 보지 말라고 걸어놓은 것인지 알 수 없다”며 “안전을 당부하는 도로의 표어가 오히려 안전운전의 위협요인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확히 집계되지 않고 있지만 중국에서는 이러한 사건 사고가 빈번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17일 지린(吉林)성 창춘(长春)시는 앞으로 도로 위에 홍색의 대형 현수막을 걸지 말라는 행정지시를 내린바 있다.

◆ 잠자는 것까지 간섭하는 중국 정부?

중국에는 표어가 매우 많다. 벽에 칠하고, 나무에 걸며, 심지어 광고판보다 더 좋은 자리에 크게 걸리고 있다. 그러나 일부 내용은 시대에 맞지 않거나 지나치게 과격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으며 재정낭비의 요인이자 도시 이미지를 흐린다는 비판마저 받고 있다.

베이징대학 중국어학과 쿵칭둥(孔庆东) 교수는 중국을 여행하면서 발견한 기이한 표어들을 모아 최근 ‘표어(슬로건) 만세’라는 책을 펴냈다. 이 책에 소개된 표어들은 현재 중국 각 인터넷 사이트에서 빠르게 확산되는 중이다.

한 농촌마을에는 “오늘 당신은 ‘수이(税)’를 했는가?(세금을 냈는가)”라는 표어가 도로 주변 벽면에 적혀 있다. 이 마을에 사는 자오링숭(赵令松, 67세) 노인은 아직도 그 뜻이 무엇인지 모른다.

세금을 뜻하는 ‘税’를 읽을 줄 몰라 청년들에게 물어보니 ‘수이’라고 읽어줘 장 노인은 “오늘 당신은 ‘수이(睡)’를 했는가?”, 즉 “오늘 당신은 잠을 잤는가?”라는 뜻으로 알고 있다. 중국어로 '税(세금)'는 '睡(잠)'와 발음이 같다. 장 노인은 왜 정부가 인민들이 잠자는 것까지 간섭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다.

현실에 맞지 않는 표어도 많다. 허베이(河北)성을 횡단하는 열차를 타고가다 보면 주위에 “부유해 지려면 아이를 적게 낳고 나무를 많이 심어야 한다”, “부유해 지려면 아이를 적게 낳고 돼지를 많이 키워야 한다”는 표어를 종종 목격하게 된다. 주민들은 “나무 심고 돼지 키우던 시절이 어느 시절 이야기냐”며 시큰둥한 반응을 보인다.

쿵칭둥 교수는 인터뷰에서 “이와 같이 황당하고 의미가 통하지 않는 표어 내용을 외국인이 알게 된다면 나라의 망신거리”라며 “‘표어 만세’를 쓴 목적도 지방정부가 앞으로는 이런 저질스런 표어를 자제하라는 뜻이었다”고 소개했다.

◆ “광케이블에는 구리가 없다”

다음은 황당한 표어 열전(列傳).

구이저우(贵州)성에는 “산에 불을 놓으면 죽을 때까지 감옥에 앉는다”는 표어가 있다. 스빙(施秉)현에서 가장 먼저 등장한 것으로 알려진 이 표어는 중국 여러 성으로 퍼져나갔다.

내용 그대로 풀이하면 ‘산불을 일으키면 무기징역에 처한다’는 뜻인데 전문가들은 현실 법규와 맞지 않는 과격한 표어라고 지적하고 있다. 중국 형법 114조, 115조에 따르면 “산불을 유발한 자는 행위가 초래한 결과가 심각한 정도에 따라 최저 3년 징역, 최고 사형에 처한다”고 되어있다. ‘무조건 무기징역’이 아니라는 말이다.

허베이(河北)성에는 “무장수단으로 세금을 반항하는 것은 불법행위”라는 말이 벽에 쓰여 있다. 이를 본 주민들은 “그렇다면 평화적인 방법으로 세금에 반항하면 합법적인 것이냐”고 웃는다.

허베이성에는 또한 “광셴(光纤, 광케이블)에는 구리가 없으니 훔쳐도 쓸모 없다”는 표어가 곳곳에 걸려있다. 구리를 노린 광케이블 절단 도둑이 많아 생겨난 표어. 이것을 본 주민들은 “쓸모 있는 다른 케이블은 훔쳐도 된다는 말이냐”고 비웃는다.

베이징(北京)으로 들어가는 철로 주변에는 이런 표어도 있다. “철로 위에 누우면 죽지 않아도 법률적인 책임을 지지 않는다.” 위협을 하는 것인지, 법률을 소개하는 것인지 알 수 없다.

한편 산둥(山东)성 지닝(济宁)시에서 원상(汶上)현으로 가는 도로 주변에는 “단체로 민원고발을 하는 행위는 불법이다. 상급 정부기구를 방문하는 행위는 수치스럽다”는 지방정부의 노골적인(?) 위협 표어도 있다. 불만 있으면 상급 기구로 가지 말고 지방에서 해결할 것이며, 단체행동을 하지 말라는 경고이다.

◆ 상급기관에 잘 보이려 ‘선전공세’ 벌여

신화왕은 이렇게 표어가 범람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로 지방정부가 정치적인 실적을 가시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수단으로 표어가 남용되고 홍보예산을 과다 책정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단적인 예로 허베이성 싱타이(邢台)시에는 “여자 아이를 배려하는 것은 민족의 미래를 배려하는 것이다!”라는 대형 선전판이 세워져있는데 소식통에 따르면 이 간판은 2만6천元의 제작비가 들었다.

싱타이시 교외의 한 농촌마을에는 입구에서부터 도심 1km 안쪽까지 10m마다 전등 광고가 설치되어 있는데 “남자나 여자아이 모두 국가의 작은 기둥이다”, “적게 낳고 우수하게 낳으면 국가와 민족에 이롭다” 등 모두 가족계획 광고이다. 시민들은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아직까지 가족계획 광고를 이렇게 현란하게 하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반응이다. 지방 공무원에 따르면 이 전등 광고는 하나당 100元, 길거리에 설치된 전등을 모두 합하면 1만元이다.

상타이시 정부의 방침에 따르면 마을마다 이러한 선전 거리를 설치해야 하는데 재정이 풍족한 마을은 광고박스를 설치하고 빈촌은 직접 벽에 써야 한다. 싱타이시 정부 관계자는 “이러한 표어를 통해 마을 주민들이 당의 정책을 알게 되므로 그 가치가 무한하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싱타이시의 한 주민은 “광고박스 등은 지난해 9월에 갑자기 출현한 것”이라며 “당시 상급 정부 관계자가 싱타이시에 내려와 가족계획과 관련한 돌발적인 점검을 한 이후 우후죽순 생겨난 것”이라고 말했다. 상급 정부에 잘 보이기 위한 수단이라는 설명이다.

신화왕은 이런 식으로 상급의 검열이 있으면 하급 정부의 지도자들이 자신의 정치적 실적을 과시하기 위해 ‘선전공세’를 퍼붓는다고 지적했다. 선전을 화려하게 하지 않으면 정치 성적표가 깎이고 승진에도 지장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무리한 선전 방법도 종종 동원된다. 후베이(湖北)성 윈시(郧西) 현에 위치한 진롼산(金銮山)에는 “봉쇄, 금지, 정리, 한강미화(封禁治理、美化汉江)”라는 8글자의 한자가 설치되어 있다. 전체 길이가 2km로 3개의 산에 걸쳐있으며, 한 글자 당 크기는 667평방미터에 이른다. 모두 시멘트와 돌로 만들어졌는데, 2,500명이 3달 동안 공사에 동원되었다.

야오탄허(腰滩河) 하천 부근에도 마찬가지로 12개 대형 글자 “수토 문장을 잘하고 후베이성 산과 하천을 녹화하자(做好水土文章,绿化湖北山川)”라는 표어가 있는데 전체 길이가 5km에 달한다.

윈시현 임업국 관계자에 따르면 이 고장에 설치된 표어 가운데 300평방미터 이상 크기의 대형 한자 표어가 총 100개에 이른다. 그는 “엄청난 지출은 물론이고 산을 파헤쳐 삼림을 훼손하고 수토유실이 심각한 결과를 초래했다”고 말했다.

◆ “중앙정부 관리들의 인식이 먼저 바뀌어야”

신화왕은 중국의 이러한 ‘표어 숭배’를 자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매체는 취재를 하면서 중국 중앙정부의 관계자들을 만날 때마다 모든 관리들이 “사업을 할 때마다 선전 표어가 앞서야 한다”고 말했다며, 중앙정부 관리들의 이러한 인식이 우선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중국 중앙정부의 한 관계자는 “표어는 일종의 역사적 기념물”이라며 “명절과 휴일, 혹은 중대한 정책이 발표될 때 정부 관련기구들은 모두 하급 정부에 표어를 제출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신화왕은 전했다. 이렇게 중앙정부의 인식이 바로 잡혀있지 않으니 지방정부 관리들이 과도한 표어 사업을 할 수 밖에 없는 것.

신화왕은 최근 중국공산당 허베이성위원회 리잔수(栗战书) 비서의 건의에 따라 ‘불량 표어 숙청 운동’이 진행된 예를 들면서 “민본 이념(民本思想)과 위배되며 강박과 협박의 뜻이 들어있는 표어를 철거하자”고 주장했다.

2004년 윈난성(云南省)에서도 불량 표어 제거 운동을 전개하여 한 달 동안 3만 개의 표어를 없앤 바 있다. 당시 없어진 표어 가운데는 “한 사람이 가족계획을 초과하여 아이를 출생하면 전 마을이 연대책임을 진다”는 섬뜩한 문구도 있었다. [온바오 한성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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