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침략전쟁과 조선총독의 고려대장경 간행 (6)
보스톤코리아  2014-11-05, 11:18:33 
2014-10-17

ㅡ 미나미총독의 황민화(皇民化)  정책 ㅡ

미나미 총독의 조선통치정책은 한마디로 황국신민화정책(皇國臣民化政策)이었다고 하겠다. 그가 1차적으로 내놓은 것이 “한국어 말살정책”이다.

1937년초부터 모든 학교에 대하여 일본어를 상용하라고 명령하였다. 일본어 상용의 명령은 참으로 엄격했다. 학생이 한국말을 하게 되면 국어상용(國語常用)이라는 목패를 목에 걸어주는 것이다. 학생들은 그 목패를 개패라고 했다.

같은 반 학생들이 서로 꼬셔 가며 한국말을 하게한 다음 자기목에 걸었던 국어상용이라는 개패를 그에개 걸어주는 것이다. 목에 개패를 걸고 다녀야하니 볼꼴이 사납다. 심상소학교 6학년 때 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한 학생이 걸고 다니던 “국어상용” 이라는 목패를 변소에 던저버렸다. 누가 그랬는지 알지 못한다. 학교가 온통 난리가 난 것이다. 주재소(경찰관 파출소)에서 순사가 왔다. 학생들을 밤까지 학교에 잡아놓고 조사했다. 그러나 범인은 나타나지가 않았다. 몇몇 큰 학생이 주재소로 끌려갔다는 말이 있었다. 미나미총독은 1938년 3월에 “조선교육령”을 개정하여 모든 소학교에서 조선어 과목의 교육을 금하게 했다. 그리고 종래의 보통학교제도를 심상소학교로 개칭하고 교육을 일본어로 실시하게 했다.  일본어 상용은  학생에게만 강요하던 것이 1938년에는 모든 관공서가 다 일본어 전용으로 돌아섰다.  미나미 총독의 한국어 말살정책이었다. 그러나 생활상의 언어가 그 잘난 법규나 명령으로 쉽게 말소되는 것이 아니다.  

1942년 최현배선생 등 30여명이 한글 파동으로 체포되어 함흥감옥에 투옥되었다. 이 “조선어 학회사건”은 역사상 너무나 유명하여 자세히 소개되어 있기 때문에 여기서 다시 설명치 않기로 한다.  

미나미 총독은 언어말살 정책만 가지고서는 조선사람의 인식를 바꾸어 놓기가 이려워던 지 1937년 10월10일에는 “황국신민지서사”(皇國臣民之誓詞)라는 즉  “我等와皇國臣民 나리 忠誠못데 軍國 나 報젠”(우리는 황국신민이다 충성을  다하여 군국에 보답한다)라는 표어를 내세워  선서하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유구한 역사와 확고한 민족사상이 그 같은 법칙이나 명령만으로 쉽게 바뀌어지는 것이 아니다. 더구나 천년의 유교전통인 삼강오륜(三綱五倫)은 자기 집을 충실히 지키고 나아가 자기 나라에 충성하라는 교훈이었지 남의 나라의 왕에 충성을 바치라는 말은 아니다.  황국신민으로서 충성을 바친다고는 하지만 누가 자기 나라를 버리고 남의 나라의 왕에 충성을 바치려하는 자가 있겠는가 진실로 그렇게 하는 자가 있다면 그것은 분명 역적일 것이다.  식민지의 백성이라 “우리는 황국신민이다”라고 하였지만 그것은 말로만 외치는 공염불이나 다름없는 것이 었다.

미나미 총독은 “황국신민화 정책 “이 잘 준행되지 않자 조선사람에게 신사참배를 강요했다. 총독부 의 학무국은 1937년 초에 모든 조선학교에 일본왕 내외의 사진을 배부하여 봉안전(奉安殿)에 모셔놓게 하고 항상 배례하라고 명령했다. 신사참배를 아니하는 학생은 가차없이 퇴학처분해 버리고 신사참배를 거부하는 학교는 그 교장을 처벌하는 한편 그 학교를 폐교시켜 버렸다. 평양의 숭실전문학교, 숭의여학교, 선천의 신성중학교 등 기독계의 9개교가 신사참배를 거부하다가 1938년 3월 폐교 당하고 말았다. 일본 왕조의 신이라고 하는 아마데아스 오미가미와 메이지천황을 제신으로 모셨다는 조선신궁이 남산중턱에 세워진 것은 1925년 이다. 일본은 조선의  도청소재지마다 신사를 세웠다. 그러나 처음에는 일본인만이 참배 하였기 때문에 별로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1938년경 부터는 전 조선사람에게 신사참배를 하라고 강요하는 것이었다.  황국신민화 정책을 강행하는 수단이었다.

평양의 능라도 교회의 손양원목사는 체포되어 평양경찰서에서 일본경찰관이 심문하기를 “ 박사와 교수가 다 신사참배를 마다하지 않고 하는데 왜 당신만이 신사참배를 아니하겠다고 고집하는 것이요” 하고 다구치자 손목사는 대답하기를 “기독교는 우상숭배를 결코 용납지 않는다. 나는 목사다. 구약성경 중 제 1계명에 하나님이 나 이외의 다른 신이나 우상을 숭배치 말라 고 하신 것을 어기는 것인데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겠는가. 기독교는 지식의 종교가 아니고 체험의 종교이다. 박사나 교수는 지식인 일지는 모르나 체험이 없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하면서 완강히 거부하였다. 

(다음 호에 계속)

백린 
(보스톤코리아 컬럼니스트
역사문제 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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