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들이 우리라고 말할 때
보스톤코리아  2010-09-27, 15:19:29 
편/집/국/에/서 :

분노는 대상이 있다. ‘내 탓이 아닌 네 탓이오’ 했을 때 분노는 끓어 오른다. 자기 잘못을 인정하는 것은 어렵지만 남의 탓을 하기는 쉽기에 단체의 분노는 불길처럼 잡기가 극히 어렵다.

11월 중간 선거를 앞둔 미국은 분노하고 있다. 올해 들어 가장 두드러진 현상이라면 바로 ‘티파티’운동이다. 미 전역을 휩쓸며 기존의 공화당 정치인까지 예비선거에서 낙마시키는 괴력을 발휘하고 있다. 티파티의 가장 핵심을 꿰뚫는 단어가 있다면 바로 ‘분노’일 것이다.

40대 이상의 중산층 백인이 주를 이루는 티파티 그룹이 갖는 분노의 대상은 오바마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와 기존 정치인 등 엘리트층이다. 뿐만 아니다. 빈곤층, 소수민족, 이민자 등에게도 분노의 화살이 날카롭게 조준하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최근 들어 부자들도 강력한 분노를 표출하며 티파티 그룹과 동지의식을 형성하고 있다.

포브스 매거진은 1917년 스코틀랜드 계 이민자인 버티 찰스 포브스에 의해 창간됐다. 세계의 최고 부자를 매년 선정하는 경제지로 권위를 자랑하는 이 바이 위클리 잡지는 최근 어처구니 없는 커버 스토리를 실었다.

이 커버스토리에 따르면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 역사상 가장 반 기업적인 대통령. 이 글의 저자 디네시 디수자는 그 이유를 오바마 대통령이 반 식민지주의자이자 사회주의자였던 아버지의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미국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결론지었다. 보수논객 디수자는 9.11이 미국내 좌파들 때문에 발생했다고 주장하는 ‘배짱’을 지닌 사람이다.

권위있는 경제지 포브스가 보수논객의 감정적 주장을 커버스토리로 실었다는 점은 부자들의 분노 수치를 잘 대변해 준다. 미국 내 부자 1%의 세금을 과거 클린턴 시절로 되돌려 올리겠다는 것에 대한 거센 반발이다. 억만장자 펀드 매니저 스티븐 슈와즈맨은 펀드매니저들에게 주어지는 세금 특혜를 제거하는 오바마의 법안을 두고 나찌가 폴란드를 침공하는 것이라고 비유키도 했다. 슈와즈맨은 티파티에 자금을 대는 대표적인 억만장자다.

경제불황으로 고통을 받는 것은 빈곤층, 노동자 계층, 이민자 등 소시민들이란 게 상식적인 생각이다. 분노는 이들에게서 나와야 하는데 엉뚱한 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는 게 문제다. 경제적인 압박도 원인이지만 미국내에서 자신의 자리를 잃어가며 과거의 지배력을 잃어가는 백인들의 상대적 박탈감이 원인이라는게 뉴스위크의 분석이다.

멀리 가지 않더라도 매사추세츠 주에도 분노를 표시하는 사람이 있다. 공화당 주지사 후보 찰리 베이커는 후보 토론회에서 아주 드벌 패트릭 민주당 후보이자 현임 주지사를 몰아부치는 공격적인 토론으로 유명하다. 보스톤 주류 언론은 그의 공격적인 토론 태도를 고무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과거 이 정도에 후보가 냉정을 잃었다며 가혹한 평가를 내리던 것과 사뭇 다른 분위기다.

21일 화요일 토론회에서 진행자인 CNN의 존 킹은 찰리 베이커 후보에게 “토론회를 준비하면서 모든 자료를 검토해본 결과 드벌 패트릭에게 한 번도 칭찬한 적이 없었다. 그에게 칭찬해 줄 것이 하나도 없었는가”라고 물었다. 베이커는 “분노한 MA주민들을 대변하기 때문에 결코 칭찬해줄 것이 없다”라고 잘랐다.

필자의 이웃 짐은 전형적인 백인 서민이다. 4인 가족인 그의 연 가계소득은 6만여불. 그는 늘 이것저것 갚고 나면 남는 돈이 없다고 푸념한다. 대학 재학중인 자녀도 없는 상황에서 믿어지지 않지만 그게 현실이라고 밝혔다. 탄탄한 직장을 가지고 있는 그이지만 이러한 현실에 분노하고 있다.

주지사 선거에 대해서 이야기 하면서 “드벌 패트릭은 세금을 올리고 경제상황을 나쁘게 했으며 아주 형편 없다. 아무래도 다음 주지사는 힘들 것 같다”고 말했다. 4년전에 드벌 패트릭에게 투표했다는 짐은 “다른 후보(정확한 이름을 몰랐다)는 대신 세금도 감면하고 경제상황도 낫게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정확하게 패트릭 행정부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알지 못했다. 다만 주위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뿐이며 그들의 분노를 같이 느낄 뿐이다. 비록 오바마에 대한 포브스지의 주장이 엉뚱한 것이라 해도 이 같은 소시민들에게는 오로지 분노만 전달이 된다. 글렌 백의 “오바마는 마음 깊숙한 곳에서부터 백인을 증오하고 있다”는 주장도 백인 소시민들에게는 여과 없이 전달된다.

짐에게 매사추세츠 주가 경제위기 속에서 무난히 재정위기를 넘긴 것을 알고 있는지 물었다. 자세한 것은 모르지만 큰 문제는 없었다고 했다. MA주가 고용증대 측면에서 미국 내 1위인 것도 그는 모를 것이다.

찰리 베이커의 노기 띤 접근, 티파티의 분노, 부자들의 분노 이것의 이면을 자세히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그들은 항상 ‘우리’라고 표현한다. 짐도 자신이 ‘우리’라는 무리에 속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공통적으로 주장하는 세금 감면(부자들의 세금 감면 포함)은 실업수당지급 축소, 소셜 시큐리티 축소 등 누군가의 희생을 요구하고 있다.

결국 그 희생의 대상은 티파티의 참가자, 서민, 빈곤층 등 ‘우리’라는 생각으로 참여한 사람들의 몫이다.

장명술 l 보스톤코리아 편집장 editor@boston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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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견목록    [의견수 : 1]
자유로
2010.09.28, 04:37:29
보스턴 코리아에서 이처럼 좋은 칼럼을 만날수 있어 기쁨니다. 주변에서 벌어지는 여러가지 상황들을 너무 어렵거나 지루하지 않게, 따뜻한 시선으로, 정확한 관점을 갖고 통찰해 주셔서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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