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은 간다
보스톤코리아  2013-06-15, 01:39:19 

지난 남북한의 겨울은 몹시 추웠다. 남북관계의 마지막 보루로 생각했던 개성공단도 잠정 폐쇄되면서 극한 상황으로 치달았다. 전쟁이란 최악의 시나리오를 머리에 그릴 정도였다. 시련 후 계절은 어느새 우리 곁에 와 있었다. 봄 꽃망울 같은 북한의 전격적 남북대화 제의에 한반도의 봄이 시작되는가 설렘이 들 정도였다.


봄은 유난히 변덕이 심하고 짧다. 겨우내 볼 수 없었던 꽃의 개화에 대한 감탄도 잠시, 꽃이 지는 탄식이 이어지는 봄이다. 어제는 눈이 왔다가 내일은 초여름 날씨가 이어지는 변덕에 혀를 내두른다. 이 과정을 거치며 봄에 피는 꽃은 꿋꿋하게 가을의 열매를 약속한다. 그러기에 봄 꽃이 피어 지는 것과 꽃망울 째 떨어져 내리는 것은 그 해 가을을 좌우한다. 꽃이 지면 탄식으로 끝나지만 꽃망울이 떨어져 내리면 통곡하는 이유다.


남북대화가 봄 날씨처럼 피었다 급격히 얼어붙었다. 이유는 격(格)때문이다. 5인 대표단의 구성을 놓고 수석대표를 누구로 할 것인가가 관건이었다. 남측은 류길재 통일부 장관을 당초 대표로 내정했고 북측은 강지영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 국장을 대표로 내정했다. 남측은 북측의 대표가 남측 행정기관의 국장급에 불과하다며 장관급을 내세우라 압박했다.


대부분 봄의 변덕처럼 사소한 다툼이니 회담은 꽃필 것이라 전망했다. 그러나 뚜껑을 열고 보니 무산이었다. 회담 무산을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 북한측은 서울행 포기 이유를  13일 폭로했다. 9-10일 실무접촉 때 합의서 초안에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의 이름을 적시했다며 회담 대표를 찍어 요구하는 것은 결례라고 주장했다.


박근혜 정부는 북한과 더 이상 ‘굴종’외교는 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북한의 일방적인 요구에 끌려 다니지 않겠다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외교가 굴종이었다는 의미다. 과거 남북 장관급 회담에서도 남한은 통일부 장관이 북한 조평통 서기국 국장 또는 제 1 부국장이 참가해온 것이 관례였다. 정부는 격부터 맞추는 것이 새로운 관계를 정립할 수 있다는 시각이다.


북한의 일방적인 행동은 고스란히 국제사회에서의 고립으로 남았다. 핵개발, 미사일 발사등 소위 ‘벼랑끝 외교전술’로 미국 등 강대국들까지 휘두르는 듯 했지만 그 결과 우방인 중국까지 반쯤 등을 돌리는 시늉을 하도록 만들었다. 일방적인 외교는 겨울의 폭설처럼 위세 등등해도 그 끝은 봄날의 눈 녹은 흔적처럼 초라하다. 잔설의 흔적이 주민의 굶주림이었다. 그나마 남한과의 대화로 남은 것은 개성공단이었을 뿐이다.


박근혜 정부의 신뢰 프로세스 정책은 북한과 남한이 대등하다는 입장에서 출발하고 있다는 점에서 높이 살만하다. 또한 북한의 일방적인 외교에 발맞춰주지 않겠다는 정확한 입장을 재정리했다는 점도 의미 있다. 그러나 과연 실제적인 내용에서 남과 북을 대등한 관계로 설정해야 하는가 하는 질문에서는 물음표다. 여러모로 맞지 않다. 경제력이 세계의 강약을 좌지우지하는 지금, 힘의 저울추는 어른과 걸음마하는 아이 수준으로 기울어 있다. 두 지도자의 나이와 연륜만 따지면 어머니와 아들 사이다. 벼랑끝 외교는 어른이 동의를 끌어내기 위한 어린 아이의 몸부림 같은 것으로 볼 수 있다.


본지에 칼럼 인을 연재하는 원로 언론인 신영각 선생은 “늘 어린 아이에게 배운다”고 했다. 살면서 피부로 절감하는 말이다. 부모로서 어린 아이에게 인내하는 법과 공감하는 방법을 배운다는 뜻으로 받아 들였다. 아이들의 투정을 인내하고 요구의 본질을 알아 들이려는 노력은 부모를 더 큰 인격으로 성장시킨다.


아이들이 화를 내는 것은 부모의 비합리성에 대한 반항이며 의사소통의 한 방법이다. 한 전문가에 따르면 화를 내는 아이들을 야단치는 것은 반항적으로 만들거나 부모와의 소통을 차단한다. 공감이 필요한 것이다. 첫째, 왜 화를 내는지 그 원인을 이해하고 합리적으로 설명한다. 둘째, 화가 가라앉도록 시간을 준다. 화를 내는 부모에게 실망한 아이의 신뢰를 되돌리는데 걸리는 시간은 아주 길다. 셋째, 기분 좋은 것을 상기시켜 주위를 환기시킨다. 이 같은 공감법은 비단 어린이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관계에 적용되는 것이다. 부모가 또 한번 아이에게 배우는 거다.


보스톤 브루인스와 시카고 블랙호크스와의 NHL 파이널이 한창이다. 아이스하키의 전설 웨인 그레츠키는 “볼이 있는 곳에 있는 선수는 좋은 선수다. 그러나 위대한 선수는 볼이 갈 곳에 미리 가있는 선수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북한과 대등한 격을 맞추는 곳에서 남북대화를 시작하겠다는 박근혜 정부의 자세는 볼이 있는 곳에 있는 선수와 같다. 하지만 북한의 일방적 대화방법을 인내하고 공감하는 남북대화야말로 볼이 갈 곳을 알고 움직이는 방법이다. 경협을 통한 북한의 경제발전은 먼저 북한주민의 굶주림을 해소하고 북핵문제를 푸는 실마리가 될 것이다.


봄꽃이 필 시간도 주지 않고 떨어뜨려 버린다면 한반도의 가을을 기대할 수 없다. 남북한의 주도적인 대화는 동북아 정세에서 필수적이다. 자국의 이익을 위해 대결과 대화를 거듭하고 있는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지렛대를 우리가 잡을 수 있는 기회다. 어설픈 맹세에 봄날은 간다. 폭풍우가 불고 폭설이 내려도 해가 지면 날이 밝듯이 봄은 다시 올 것이다. 하지만 올해 봄과 이듬해 봄은 확실히 다르다. 어른들에게서 귀 너머로 듣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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