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르고의 영어잡설 69 ] 영어는 겹침을 싫어한다?
보스톤코리아  2019-07-29, 10:40:58 
많은 언어들은 같은 소리나 형태를 반복해서 새로운 단어를 만든다. 우리말도 예외는 아니다. 칙칙폭폭, 떼굴떼굴, 어영부영, 어중이떠중이 등등. 태평양 연안의 많은 언어들에서도 중첩을 애용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인도네시아어에서 orang은 '사람'인데 orang-orang은 '사람들'이란 복수형이다. sama는 '함께'인데 sama sama는 '같은'이란 뜻이 된다. 폴 고갱은 자신의 작품에 타히티어로 제목을 붙이기도 했는데 그 중에는 <Te Nave Nave Fenua>, <Parau Parau>, <Nave Nave Moe>, <Upa Upa>와 같은 제목들이 있다. 인도네시아어와 타히티어는 모두 테평양 도처에 흩어져 있는 폴리네시아어 계통에 속한다. 타히티어에서 parau는 '말, 단어'이고 이걸 중첩시킨 parau parau는 '잡담, 한담'이란 뜻이 된다.   

영어에도 중첩이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이 언어들만큼 자유롭지는 않다. 기껏해야 문법적 확장성이 없는 파편적인 단어들만을 구성할 뿐이다. 주문을 욀 때 쓰는 abracadabra, 강조어인 super-duper, 아이들이 쓰는 itsy bitsy 등이 떠오르지만 중첩이 문법적 기능을 담당하지는 않는다. 

이제 본격적으로 중첩을  싫어하는 영어의 형태론을 살펴보자. 영어 접미사 -al은 두 가지 기능이 있다. 동사에 -al을 붙이면 명사가 되고, 명사에 -al을 붙이면 형용사가 된다. 여기까지는 대학교 영문과에서 배울 수 있는 내용이다. 그런데 대학에서 가르치지 않는 또 다른 사실이 하나 있다. -al이 가끔가다가 -ar로 바뀐다는 내용이다. 필자가 알기로는 이러한 규칙은 필자가 졸저 <언어의 비밀>에서 유일하게 언급한 적이 있다. 

우선 동사를 명사로 만들기. arrive(도착하다) ~ arrival(도착), betray(배신하다) ~ betrayal(배신), deny(부인하다) ~ denial(부인), propose(제안하다) ~ proposal(제안), remove(제거하다) ~ removal(제거), survive(살아남다) ~ survival(생존), try(시도하다) ~ trial(시도) 등이 있다. 약간 어려운 단어로 acquit(무죄로 하다) ~ acquittal(무죄 방면)도 같은 유형이다. 

다음은 명사를 형용사로 만들기. act(행동) ~ actual(사실의), center(중심) ~ central(중심의), classic(고전) ~ classical(고전의), culture(문화) ~ cultural(문화의), digit(숫자) ~ digital(숫자의), emotion(감정) ~ emotional(감정의), globe(구) ~ global(지구의), music(음악) ~ musical(음악의), nature(자연) ~ natural(자연의), universe(우주) ~ universal(우주의) 등이 있다. 

여기까지는 대부분의 영어형태론 책에 나오는 내용이다. 다음 단어들을 보자. cell(세포) ~ cellular(세포의, 이동전화의), circle(원) ~ circular(원의), family(가족) ~ familiar(친숙한), miracle(기적) ~ miracular(기적의), muscle(근육) ~ muscular(근육의), pole(막대) ~ polar(막대의), sol-(태양) ~ solar(태양의), triangle(삼각형) ~ triangular(삼각형의) 등의 단어들을 잘 보면 끝에 /l/을 포함한 단어들의 경우 접미사 -al이 -ar로 바뀌는 것을 볼 수 있다. 

게다가 /gl/이나 /kl/처럼 소위 구개음이 /l/ 앞에 있을 경우에는 구개음과 /l/ 사이에 모음 /u/를 보충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다소 전문적으로 들릴 수도 있지만, /구개음 /g, k/는 입의 안쪽에서 발음되고 설측음 /l/은 앞쪽에서 나기 때문에 그 사이에 매개모음이 첨가되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스페인어나 프랑스어에서도 특히 두드러진다. 남미에 Uruguay, Paraguay와 같은 나라이름의 중간에 /u/가 있는 이유는 구개음 /g/가 구개음이라는 표시를 하기 위함이다. miracle의 또 다른 형용사형인 miraculous를 보아도 중간에 매개모음 /u/가 삽입된 것을 볼 수 있다. 아무튼 구개음은 독특하고 골치 아픈 발음이다.  그 이상의 이야기는 너무 전문적일 것 같아 생략하자. 이 단어들이 영어가 아니라 폴리네시아 언어였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쓸 데 없는 상상을 해보자면 cellular가 아니라 cellulal, muscular가 아니라 musculal이 되지 않았을까? 따지지는 말자. 어차피 이런 상상은 쓸 데 없는 상상이니까. 하지만 영어가 동일한 형태소가 겹치는 것을 싫어하는 것만은 분명하다.


올댓보스톤 교육컨설턴트, orugo4u@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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