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도(花郞徒)와 성(性) 그리고 태권도(跆拳道)
화랑세기花郞世紀, 18세 풍월주風月主 춘추공春秋公(11)
보스톤코리아  2020-12-14, 10:41:13 
625년 정월 대보름날, 김유신은 김춘추와 함께 자신의 집앞에서 축국을 하였다. 동생 보희와 맺어주려고 계획적으로 춘추의 옷고름을 밟아 찢었다. 그리고 집으로 데려가 보희를 불러 꿰매게 하였지만 보희는 달거리를 하고 있었기에 동생 문희가 대신 나와서 했다. 그리고 그들은 운우지정을 나누었고 문희는 임신을 하였다. 그러나 이미 정궁부인 보라가 있었던 춘추는 문희를 아내로 들이지 못하고 망설이고 있었기에, 유신은 최후의 결단으로 선덕공주가 자신의 집앞을 거쳐 남산으로 유희를 가는 기회를 틈타 마당에 장작을 쌓아놓고 문희를 태워 죽이겠다며 불을 지폈다.321) 화랑세기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유신은 이에 장작을 마당에 쌓아놓고 막 누이를 태워 죽이려 하며 임신한 아이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물었다. 연기가 하늘로 올라갔다. 그 때 춘추공은 선덕공주를 따라 남산에서 놀고 있었다. 공주가 연기에 대하여 물으니, 좌우에서 고했다. 공이 듣고 얼굴색이 변했다. 공주가 “네가 한 일인데 어찌 가서 구하지 않느냐?” 했다. 공은 이에 …하여 구했다. 포사鮑祠에서 길례를 행했다.   
얼마 안 있어 보라궁주가 아이를 낳다가 죽었다. 문희가 뒤를 이어 정궁正宮이 되었다. 이에 이르러 화군花君이 되어 아들을 낳았다. 보희는 꿈을 바꾼 것을 후회하여 다를 사람에게 시집을 가지 않았다. 공은 이에 첩으로 삼았는데 아들 지원知元과 개지문皆知文을 낳았다. 이 이야기는 ‘문명황후사기文明皇后私記’ 에 나온다. 풍월주로 4년간 있었는데 부제 흠순공에게 물려주었다. 그는 곧 유신공의 포제胞弟이다. 왕의 대업은 사책에 있어 여기서는 기록하지 않는다]

김춘추는 626년에 풍월주 취임하여 4여년간 화랑도를 이끌다가 629년에 김유신의 동생 김흠순에게 물려주고 상선이 되었다. 그 후로는 끊임없이 쳐들어 오는 백제와 고구려의 침공에 맞서 수 많은 전쟁에서 (비록 승전고는 한번도 울리지는 못했지만) 전투력을 키우고 있었다. 647년 정월 초에 비담이 난을 일으켰다. 김유신, 김염장 등과 함께 그 난을 평정하였다. 하지만 이 와중에 병석에 있던 선덕여왕은 죽었다(1월8일). 그리고 춘추는 알천과 함께 왕위 계승의 서열에 있었으나 국반갈문왕의 딸인 승만공주에게 양보하고, 알천은 상대등을 맡았고 그는 사랑하는 딸과 손주들을 앗아간 백제에 원한을 갚는 것을 잊지 않았기에 당나라에 청병을 하기 위하여 외교를 담당하면서 그의 능력을 발휘하기 시작하였다. 
끊임없는 백제의 침공에 신라는 변방의 수 많은 성을 잃었다(무왕이 600년에 즉위한 이래 의자왕 19년인 659년 까지 백제는 신라를 무려 21차례나 침공하였으며 81개의 성을 잃었다. 김춘추가 왕으로 즉위한 후에도 백제의 침공은 멈추질 않았고 계속 20여개의 성을 더 빼앗기면서 국토는 점점 쪼그라들었다). 대야성이 함락되면서 딸 고타소와 성주였던 사위 김품석과 손주들을 잃은 원한에 백제를 멸망시키겠다는 결심을 굳게 하였지만 막강한 백제의 군사에 대항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래서 김춘추는 고구려, 왜, 당을 방문하면서 군사지원을 요청하였다. 먼저 연개소문이 실권을 잡고 있던 고구려를 방문하였지만 실패하였다. 당시 고구려는 백제와 연합하고 있었고 당나라와는 적대관계에 있었다. 그리고 왜로 갔을 때도 실패하였다. 결국 김춘추는 648년(진덕여왕2년) 12월에 아들 법민과 함께 당태종을 만나 청병을 하기 위하여 당唐으로 갔다. 그리고 태종은 백제를 치라며 지원병 파병을 허락하였다.322) 김춘추는 당태종으로 부터 특진特進의 벼슬을 받았으며 많은 선물과 함께 무엇보다 태종이 직접 장안성 동문 밖까지 나와 전송하는 융숭한 대접을 받으며 귀국하였다. 신라는 649년부터 관복을 당풍으로 바꾸었고, 다음해에는 진덕여왕이 직접 ‘오언태평송五言太平頌’ 을 지어 비단에 수 놓아 보냈으며, 신라의 연호인 태화太和를 폐지하고 당의 연호인 영휘永徽를 사용하였다. 그리고 651년 정월 초하루 부터는 당의 제도인 하정례賀正禮, 즉 세배를 시작하였다.    

321) 김유신의 집은 교동에 있었고 반월성이 있는 인왕동 서쪽에 위치해 있으며, 김유신의 집은 현재의 교촌교와 문천교 중간에 위치해 있었다. 그리고 이 두 교량은 인왕동이나 교동에서 남산으로 가려면 건너야 하는 다리이다. 아마 당시에도 같은/근접한 지점에 다리가 있었으리라고 본다.

322) 그때의 장면이 삼국사기(권5, 신라본기5, 진덕왕2년) 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태종이) 어느날 (춘추를) 불러 사사로이 만나 금과 비단을 매우 후하게 주며 물었다. “경卿은 무슨 생각을 마음에 가지고 있는가?” 춘추가 꿇어앉아 아뢰었다. “신의 나라는 바다 모퉁이에 지우쳐 있으면서도 천자天子의 조정을 섬긴 지 이미 여러해 되었습니다. 그런데 백제는 강하고 교활하여 여러 차례 침략을 마음대로 하였습니다. 더욱이 지난 해에는 군사를 크게 일으켜 깊숙히 쳐들어와 수십개 성을 쳐서 함락시켜 조회할 길을 막았습니다以塞朝宗之路. 만약 폐하께서 당나라 군사를 빌려주어 흉악한 것을 잘라 없애지 않는다면, 저희 나라 백성은 모두 사로잡히는 바가 될 것이고 산 넘고 바다 건너 행하는 조공마저 다시는 바랄 수 없을 것입니다.” 태종이 매우 옳다고 여겨 군사의 출동을 허락하였다> 

참고문헌: 삼국사기, 삼국유사, 화랑세기 – 신라인 그들의 이야기(김대문 저, 이종욱 역주해, 소나무), 화랑세기 – 또 하나의 신라(김태식, 김영사), 한국사데이터베이스(db.history.go.kr)


박선우 (박선우태권도장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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