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유민 고선지(高仙芝) 장군 (3)
보스톤 전망대
보스톤코리아  2020-12-17, 16:28:08 
석국정벌 과 탈아스 전쟁
석국정벌 과 탈아스 전쟁

제지법의 확산
제지법의 확산
 
탈라스 전투 현장
탈라스 전투 현장
 
석국 정벌
서기 750년에 타쉬켄트(Tashkent)의 석국왕 차비시는 당나라와 압바스 제국 사이에 끼어 누가 더 강한 쪽인가를 저울질하고 있었다. 이런 석국에 대해 고선지는 두번이나 군사를 이끌고 석국을 비롯한 주위 국가들에 원정을 단행했는데, 석국의 차비스 왕이 여전히 우유부단하게 행동하자 강경하게 대응하게 된다.

석국 국왕이 스스로 성문을 열고 고선지 군을 맞이 했음에도, 당나라 군은 궁궐을 불지르고 주민들을 살상하였으며 석국왕을 포로로 취급해 장안으로 호송하였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장안으로 호송된 석국왕을 당나라 문신들이 살해하는 불상사가 발생한 것이다.

국제 관계에서 투항한 적국의 왕은 살려주는 것이 지금까지의 관례였다. 가까운 예로 고선지는 소발류 왕을 잡을 때 절대로 죽이지 말 것을 병사들에게 당부했었다고 한다. 백제의 의자왕과 고구려의 보장왕도 죽음을 당하지 않았다. 보장왕의 경우는 잡힌 다음 다시 도망쳤지만 죽음을 당하지는 않았다.

인질은 잡고 있는 것 자체만으로도 도움이 된다. 그러나 인질을 죽이면 모든 것을 몽땅 잃어 버린다는 사실을 당현종은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당나라는 석국왕을 참살한 결과로 큰 후폭풍을 맞게 된다.

탈라스 전투
당나라에게 부왕이 참살되자 석국왕자는 복수를 다짐하면서 압바스 이슬람 왕국에 도움을 요청하였다. 마침 중앙 아시아로의 진출을 모색하고 있던 호라산 총독 이븐 무슬림(Ivn Muslim)은 지아드 이븐 살리흐(Ziyad Ivn Salih) 장군을 파견해 당나라와 싸울 결맹을 약속했고 토번과 석국이 동참하게 된다.

고선지 군은 천산산맥 북쪽에서 유목생활을 하던 투르크족 카를룩(Karluk) 및 발한나 족과 동맹을 맺어 도움을 받기로 하였다. 당시 양측의 병력은 당나라가 당군과 발한나 족 병사를 합쳐 3만명에 카를룩이 5만 정도의 병력이었고 아랍은 10만을 넘었을 것으로 추산되었다. 

양측은 카자크스탄 남부의 탈라스에서 마주쳤는데 5일동안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그런데 갑자기 당나라 군과 연합한 카를룩 군이 당나라 군을 공격했다. 전투 중에 우군으로부터 공격을 당했으니 고선지 군이 패배를 당하게 되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고선지 군은 수천명만 남아서 도주하는데 달아나는 길에 발한나 군과 가축이 길을 메우고 있어서 빠져 나가기가 힘들었다.

이슬람 기록에 따르면 카를룩은 이미 탈라스 전투에 앞서 압바스와 이미 동맹을 맺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사업과 단수실이 힘을 합쳐 흩어진 병사를 모으고 거두어 안서도호부에 도착했으나 남은 병사들은 수천에 지나지 않았다. 탈라스 전투는 자치통감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고 이사업, 단수실의 전투일지에 기록되어 있으나 구당서에는 탈라스 전투에 대한 일절의 기록이 없고, 신당서에는 고선지가 대식국과 싸워 대패했다는 딱 한줄로 기록되었을 뿐이다.

이 전투의 승리자였던 호라산 총독 이븐 무슬림은 전투가 끝나고 나서 암살되었다. 이슬람 왕국 압바스 칼리프의 동생 만슈르는 탈라스 전투 후에 중앙 아시아를 시찰하면서 총독 이븐 무슬림의 권위에 강한 위기감을 느꼈고 그의 형에게 그를 빨리 죽이지 않으면 왕조가 어지럽게 된다고 조언했다고 하니 이븐 무슬림이 승전 후에 토사구팽 당한 것이 틀림 없을 것이다.

아프레시압 궁전 벽화,조우관을 쓰고 있는 고구려 사신도
아프레시압 궁전 벽화,조우관을 쓰고 있는 고구려 사신도
 
탈라스 전투 후에 나타난 변화
1) 제지술의 발전
사마르칸트에는 무려 300여개의 종이 공장이 생겨난다. 지금까지는 파피루스나 양피지로 글을 기록했는데 이제는 종이를 사용하게 된 것이다. 코란 한권을 만들려면 양 300마리를 죽여서 만들었고 비용이 대단했었다. 이제는 손쉽게 만들게 되었다. 책을 손쉽게 만드니 이로 인해 신학, 철학, 과학의 발전이 두드러지게 되었다.

중국 4대 발명품의 하나인 종이가 세계로 전파된 현장이 바로 사마르칸트였는데 고선지 휘하 장병 2만명이 포로로 잡혀가면서 제제술도 덩달아 넘어간 것이다.
고선지는 서역을 평정시키면서 서역 평정의 일등공신이 되었지만 탈라스 전투 패배만큼 인류에 공헌한 전투는 없었다.

Silk Road라는 이름의 창시자인 독일의 지리학자 리히트 호펜(Ferdinand Von Riehthofen, 1833-1905)이 이 길의 이름을 "비단길"이 아니고 "종이길"로 불렀어도 잘못된 말은 아니었을 것이다.

2) 나침판
나침판이 언제 만들어 졌는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후한 때 지남차를 만들었다는 설이 있다. 이슬람에서는 종교의례에서 성지 메카를 향해 하루에 5번 절을 할 때 방향을 잡는데 활용했고, 정화가 항해를 할 때 낮에는 해를 보고, 야간에는 별을 보고, 흐린 날에는 지남침으로 항해를 했다고 한다.

3) 전투에서 화약을 사용하다
서기 784년 당나라 장수 유흡이 고구려 유민 이정기 장군의 아들 이납의 부하였던 고언소가 사수하고 있던 송주를 공격할 때 화약을 사용한 화공법을 사용했다고 한다. 이정기는 산동성을 중심으로 제나라 왕국을 세워 4대에 걸쳐 AD 765년부터 AD 819년까지 55년동안 15주에 이르는 영토를 차지했다고 한다.

4) 인쇄술
중국은 종이와 묵의 발명에 기초해서 인쇄술에도 선두주자였다. 진짜 선두주자는 중국도 아니고 독일도 아니었다. 세계 최초 목판 인쇄본은 신라 경덕왕 10년(781년)에 불국사 석가탑을 세우고 탑속에 소장한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고, 세계 최초 금속활자 본은 "직지" 1377년으로 78년 뒤인 1456년에 구텐버그가 금속활자로 성경을 인쇄했다.


김은한 
보스톤코리아 컬럼니스트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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