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를 오가는 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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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톤코리아  2021-07-12, 13:05:07 
일본 후쿠라항 전경. 발해를 오가는 바닷길로 아주 위험했다
일본 후쿠라항 전경. 발해를 오가는 바닷길로 아주 위험했다
서기 728년, 발해 무왕 10년에 발해 사절단 일행이 최초로 일본을 방문하였다. 성무천황이 중궁에 나아갔는데 사절 고제덕이 무왕의 교서와 방물을 바쳤다.
"무예는 고려의 옛땅을 회복하고 부여의 습속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만 길이 너무 멀어 막히고 끊어졌습니다. 어진 이와 가까이 하여 우호를 맺고 옛날의 예에 맞추어 사신을 보내고 찾는 것이 오늘에야 비롯하게 되었습니다. 담비 가죽 300장을 보내어 바칩니다. 조그마한 물건이라도 드리는 정성을 나타내고자 하는데 가죽과 비단이 진귀하지 않아 도리어 손으로 입을 막고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 속일본기 권10, 신구5년, 봄 1월 갑인.
발해 무왕은 발해가 고구려(고려)를 계승했을 뿐만 아니라 부여의 습속과 땅을 회복했다고 선언하였다.
발해 사신과 성무천황과의 만남은 그리 쉽지 않은 만남이었다. 일행은 홋카이도쪽으로 표류하다가 물에 쓸려 내려가 죽고 일부는 아이누족과 싸우다가 죽어서 겨우 1/3인 8명만 살아 남았다고 한다. 동해 바다는 추운 겨울에 북서풍을 등에 지고 건너야 하기 때문에 조난을 당할 위험이 많다. 안전하게 일본에 가는 길은 한반도 근해를 항해하다 대마도에서 대한 해협을 건너가는 길이 제일 안전하다고 하는데 신라와 발해, 일본이 사이가 나쁘면 대한 해협에 접근을 할 수 없게 된다.
성무(쇼무)천황에게 보내는 발해 무왕의 선물은 일본에 도착하는 즉시 조공품으로 간주되어 전국의 이름난 신사에 봉납되어 천황 지배체제의 우월성을 선전하기 위한 정치적 목적으로 사용된다. 천황 예방을 정월 1일로 미루어 그날에 발해 사절들을 신년 하례회에 참석시킴으로 천황나라의 우월성을 과시하려고 하였다.
발해와 일본의 바닷길이 위험이 많다는 사실은 이미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다. 서기 814년에 제 17회 견 일본사 일행으로 참석한 발해 승려 인정(仁貞)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대사, 부사, 판관 다음으로 녹사라는 직위로 사신단에 참여했는데 그가 하는 일은 외교문서를 작성하는 일이었다. 당시 승려들은 한문서적과 시문에 능통해서 관직에 등용되고는 하였다. 당시 유명한 문인이었던 왕효렴이 대사로 참여한 사신단도 정월 조하(朝賀)에 참여하였고 인정은 종 5품을 수여 받았다. 인정은 정월 7일의 연회에도 참여하여 여러 사람과 시담을 나누었는데 인정의 시가 일본왕의 칙명으로 편찬된 "문화 수려집"에 실리기도 하였다.
815년 정월 22일 견일본사는 사가천황이 발해 8대 희왕에게 전하는 국서를 받아 귀국길에 올랐다. 그리고는 그들의 일정은 비운이 계속되게 된다. 이즈모(지금의 시마네현)를 출항한 일행은 도중에 역풍을 만나 에치젠(지금의 후쿠이현)을 표류하다 사신단장 왕효렴은 6개월후에 사망한다. 사가천황은 새로 배를 준비시켰는데 출항하기에 적당한 바람이 불지 않아 그 다음해인 817년 5월까지 귀국이 늦춰지게 되었다. 그 사이에 판관 왕승기와 인정스님이 세상을 떠났다. 일본의 문화수려집에는 외국인으로는 유일하게 왕효렴과 인정의 시가 기록되어 있다.
인정 스님이 당시의 상황을 글로 표현하고 있다. "대해(동해)를 횡단하는 바닷길은 좀처럼 건너기 어려운 까닭에 한척의 배는 아직도 귀국을 못하고 있습니다. 농서 지방의 기러기들이 하늘로 쉽게 날아 대해를 넘나드는데 봄에 가서 가을에 돌아오는 것과 같을 수는 없나봅니다."
고왕 3년에 발해는 신라에 사신을 보내 발해로부터 안전을 보장 받으려고 하였다. 신라 조정은 대조영에게 진골품계인 대아찬 벼슬을 내려주며 평화적인 관계를 유지하려고 했다.
고왕 치세 말인 713년에 신라가 발해 접경지대에 성을 쌓으면서 양국 관계가 긴장 국면으로 전환되었고 성덕왕 26년에는 강릉일대의 장정 2천명을 징발하여 국경에 긴성을 쌓았다. 이어서 당나라의 흑수말갈에 대한 관여가 지나치게 되자 732년에 무왕이 등주를 공격했고 신라군도 10만의 군사로 당나라를 도와주게 되었다.
신라와 당나라가 힘을 합치게 되자 발해의 처지가 고단하게 되었다. 그래서 발해 무왕이 일본과 국교를 트게 된 것이다.
일본은 사이메이 천황, 천지 천황 때인 663년에 있었던 백촌강 전투에서 네번 싸워 네번을 참패한 기록이 있었다. 그래서 756년에 규슈의 오너성을 시작으로해서 이로성을 쌓고 모두 11개의 성을 쌓았고 759년에는 500척의 배를 만들었다. 일본은 762년에 신라를 침공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당시 당나라는 안사의 난으로 국제정세에 눈을 돌릴 겨를이 없었다. 당시 일본 정계에는 후지와라 나카마로라는 거물이 있었는데 신라 정벌을 적극 주장하고 있었다. 그러나 신라를 정벌하는 데는 걸림돌이 하나 있었으니 신라의 군사력이 일본보다 한수 위였다는 것이다.
만약 발해가 일본 편에 서면 가능한 것이었다. 758년에 일본은 발해에 사신 오노모타리를 파견해 협조를 요청하였다. 일본의 요청에 발해는 문관 왕신복을 일본에 파견해 일본과 손을 잡을 수 없는 것을 분명히 하였다. 왕신복이 일본을 다녀간 후 "속일본기"에는 신라 침공이라는 말은 더이상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764년 후지와라 나카마로는 반란을 일으키다 관군에게 처형되었다. 외세를 끌어들여 통일을 이룬 신라에 대한 앙금이 남아 있을 법도 하지만 발해 문왕은 넓은 마음으로 신라를 품었다. 참고로 발해는 일본에 공식 사절을 34번이나 파견했고 일본은 14번 파견했다. 신라로부터 발해는 2번 사절을 받아들였고 2번의 사절을 파견하였다.
크라스키노 성은 발해에서 일본으로 떠나는 배가 출항하는 항구였다. 연해주 크라스키노 성은 두만강에서 북쪽으로 60km 떨어져 있고 중국의 훈춘시에서 40km 떨어져 있다. 풍광이 수려한 포시에트 만 깊숙히 자리잡고 있는데 바로 인근에 옛 성터가 있다. 예전에는 염주라는 옛도시가 있었던 곳이다.
현재 러시아 극동 고고 민속 역사 연구소가 발굴조사를 진행 중이었는데 1992년부터는 한국 러시아 발굴단이 공동으로 발굴을 진행하고 있다.
크라스키노 성에서 수습된 목탄 AMS 연대 측정 결과 540년, 620년, 840년의 결과가 나와 이들 유적지가 발해를 넘어 고구려 시절에 이미 일본과의 교류를 했다는 추정을 하고 있다.
발굴된 유물은 손끝무늬기와, 손잡이 달린 토기, 고구려형 시루, 기와, 청동과대, 철제창, 다듬이돌, 낙타뼈다리, 청동 낙타상, 편병 등이 있다. 편병은 청해진 장보고 유적지에서 발견된 것과 유사하여 발해와 장보고 상단과 교역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고, 청동 낙타상은 서역과의 교류를 보여주는 증거로 보기도 한다. 도융홍지(道隆弘知)라는 일본 승려의 이름이 쓰여진 명문 토기는 발해와 일본 교역의 증거라는 주장이 일본에서 제기된 바 있다.
크라스키노 성에는 여러 개의 온돌 유구가 발견되고 있다. 서울의 아차산성에는 보루마다 온돌 유구가 발견되어 발해와 고구려에서는 온돌을 사용하는 것이 일상생활 관습이라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크라스키노 성의 각각의 문에는 옹성이 설치되어 있다. 동문에서 10m 떨어진 곳에는 치(稚)라고 부르는 성벽이 돌출되어 있어 옹성과 함께 적의 공격을 쉽게 방어할 수 있게 하였는데 전형적인 고구려 방식이라고 한다.


김은한 
보스톤코리아 컬럼니스트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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