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공과(賓貢科)
보스톤 전망대
보스톤코리아  2021-09-27, 11:50:39 
양주 최치원 기념관
양주 최치원 기념관
해외에서 공부를 하려고 떠난 한국인들의 유학역사를 살펴보면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때는 불교 승려들이 불법을 구하려고 떠났고 대부분 나이가 들어서 길을 나섰다. 그런데 어린 나이에 공부를 하러 떠난 사람이 있었다. 나중에 신라시대의 문인 고운 최치원 선생이다. 그의 나이 12세에 집을 나와 중국으로 건너 갔는데 배를 타고 떠날 즈음에 이미 돌아가신 부친이 훈계하기를 "앞으로 10년안에 진사에 급제하지 못하면 나의 아들이라고 말하지 말라. 나도 아들을 두었다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 가서 부지런히 공부에 힘을 기울여라"라고 하였다고.
당시 신라와 발해에서는 과거제도가 일절 없었다. 그래서 출세를 하려면 당나라에 유학해서 "빈공과(賓貢科)"라는 시험에 합격해야만 했었다. 빈공이라는 뜻은 인재를 천자에게 천거해서 바친다는 뜻으로 이를 공사(貢士)하고 부른다. 그래서 많은 신라 유학생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황해를 건너 영달의 길을 찾아 떠난 것이다. 우리가 말하는 신라방의 주요 고객은 유학생과 거기에 딸려온 인력들이었다. 빈공에 급제해도 중국 내국인처럼 좋은 대우를 기대할 수는 없지만 신라 본국에 돌아가서도 더 많은 혜택을 받을 수 있었다. 합격자의 약 80%가 신라인으로 그 뒤를 발해, 페르시아, 일본, 오끼나와, 동남아 국가들이 이었다. 
삼국사기 선덕여왕 9년(640년)에 당나라에서는 유학자들을 많이 초빙하여 국자감에서 그들로 하여금 학문을 강론케 하니 신라를 비롯한 고구려, 백제, 고창, 토번의 자제들도 함께 보내어 입학하게 하였으며 당시 학생이 3,260인에 달하였다고 한다.
그 이후로 삼국통일을 완수한 후에는 국가조직 통치계층의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682년 신문왕 2년에 국학을 설치했고, 788년 원성왕 4년에는 독서 3품과를 부설했는데 5두품이상의 자제에게만 입학 자격이 주어졌으므로 6두품이하의 지식계층들은 자신들의 신분상승을 위해 당나라로 유학을 떠나게 되었다.
당나라에서의 유학기간은 10년정도인데 기간이 지나서도 시험을 통과하지 못하면 뒤를 이어 다른 학생이 파견되게 된다. 한번은 서기 840년 문성왕 때에 만기가 된 유학생 105명이 동시에 귀국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
이런 극심한 경쟁 속에서 당나라가 망하기 전인 906년까지는 신라인 58명이 급제하였고 당나라가 망한 후에는 20년동안 22명이 급제해서 모두 80명의 신라인이 급제하였다. 발해 학생들은 두번째 많은 10명이 합격하게 되었다.
합격자 가운데 최치원과 김가기(金可紀)는 문장으로 출중했고, 박인범은 시로, 김악은 예로, 최승우와 최언위는 문사로 이름을 떨치게 되었다. 모두 신라인 급제자들이었다.
당시에 당나라에서는 아주 큰 사건이 벌어지고 있었다. 당나라가 황소(875~884)가 일으킨 농민 반란으로 수도 장안이 황소군에게 함락당한 것이다. 당나라 황제 희종이 서문에서 황급히 빠져나가고 동문으로는 환호하는 황소군이 무혈 입성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고 한다.
병란 중에 유학생과 과거 급제자들은 대부분 신라로 귀국하였는데 그들은 당나라에서 경험한 신분제의 개방과 누구나 입신양명할 수 있는 당나라의 과거제도를 찬양하면서 폐쇄적인 골품제도를 고수하고 있는 신라 왕실에 대한 비판세력으로 등장하게 된다. 
당나라에서 과거에 급제한 최승우가 귀국해서는 견훤을 도와 격서를 쓰고 또 다른 급제자 최원위가 왕건을 돕게 된 것은 누구든 능력있는 사람은 중용된다는 것을 확인시켜주는 것이다. 신라는 성골 진골에게만 높은 관직을 주는 골품제도를 진작에 버려야 했었다.
당나라가 망하고 나서 송나라, 원나라에서도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관리 채용 자격 시험이 있었다. 다만 이름이 "빈공과"에서 "제과"라는 이름으로 바뀌었지만 시험은 예전처럼 계속되고 있었다. 
고려 4대왕 광종은 서기 958년 5월,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과거시험을 통해 벼슬길에 오르는 길을 마련하였다. 일제 강점기를 빼고는 한번도 과거가 중단된 적이 없었고 1894년 갑오경장 때 비로서 과거가 폐지되었다.
광종은 과거제도를 받아들이려고 중국 후주에서 과거시험을 주관하는 책임자인 쌍기를 신라로 데려왔으며 그의 건의를 받아들여 과거시험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과거시험은 시(詩), 부(賦), 책(策), 송(頌) 네 과목의 시험을 보았고 4년후에는 "시무책"이라는 제목을 가지고 학생들에게 국가를 부강하게 만들수 있는 시책을 설명하도록 하였다.
왕은 쌍기를 한림학사로 임명하고 쌍기가 고려 신민이 되도록 하였다. "고려사 절요"에 의하면 당대의 석학 이제현은 "과거를 설치하여 선비를 뽑는 일에 대해 왕(광종)이 배움의 뜻을 가지고 풍속을 변화시키려고 했던 뜻이 있었고 쌍기 역시 그 뜻을 받들어 아름다움을 이루었다"고 하였다.

신라 발해의 자존심 싸움
남북국 시대 때 신라와 발해로 건너간 재당 유학생들은 빈공과에 응시해서 합격한 사람들이 많았다. 10년이 되어서야 가까스로 합격하는 빈공과를 최치원은 6년만에 장원급제(784년) 하였다. 장원한 사람이 최치원이라는 이름이 호명되자 당 휘종은 그가 신라인이라는 것은 알았지만, 이 신라인 진사가 이제 겨우 18세의 어린 나이라는 것은 몰랐다.
신라는 모두 80명이 빈공과에 합격했는데 신라 다음으로는 발해가 모두 10명이 합격하였다. 그런데 1, 2등 신라, 발해 출신들간에 알력이 대단하였고 그 중심에 최치원이 있었다.
발해 출신 오소도(烏炤度)가 872년도 장원을 차지하였고 신라출신 이동(李同)이 장원을 내주게 되었다. 최치원은 신라사람이 장원을 빼앗긴 것은 국제적 망신이라고 하며 발해 사람에게 수석을 내주는 게 옳은 일이냐고 당나라에 따지기까지 하였다. 그는 어찌 술지게미(발해, 나쁜 술)를 박주(신라에서 접대할 때 쓰는 좋은 술)와 함께 마시며 취할 수 있겠는가 하며 분개하였다. 
그 다음 877년 빈공과 시험에서는 박인범, 김악 두명의 신라인이 합격했고 발해 유학생은 한명도 뽑히지 못했다. 최치원은 시험관 고대부에게 편지를 보내 "대부의 엄격한 시험관리로 신라인들이 합격했고 추한 오랑캐(발해)를 용납하지 않아 과거에 흠집을 내지 못하게 했습니다"라고 하였다. 만약에 최치원이 공식석상에서 발해사람을 비하했다면 합격을 취소할 만큼 파격적인 언동이었다.
마침 세월이 흘러 빈공과에서 장원을 했던 오소도가 발해의 재상이 되었는데 906년에 오소도의 아들 오광찬이 빈공과에 합격하였다. 그런데 장원은 신라인 최원위가 차지하였다. 마침 오소도 재상은 당나라에 사신으로 왔다가 이 사실을 알고 자신의 아들을 신라의 최원위의 윗자리에 둘 것을 요청하였다. 당나라 조정은 최원위의 재주와 학식이 오광찬보다 우월하다고 이를 용납하지 않았다. 발해의 재상으로서는 부끄럽기 짝이 없는 처신이었다. 발해도 그냥 보고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당나라에 파견된 대봉예 왕자가 "신라보다 국세가 강한 발해가 상석을 차지해야 한다"는 요청을 했다. 물론 당나라는 이 요청을 거절하였다. 최치원은 국명의 선후를 어찌 국세의 강약으로 따질 수 있겠는가? 나라의 순서를 성쇠의 근거로 바꿀 수 없다라고 주장하였다.(고운집)
최치원은 발해를 건국한 집단들이 고구려를 계승했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었음에도 말갈의 무리라는 것을 계속 강조하고 이들이 거란, 돌궐 같은 오랑캐라는 것을 계속 부각시켜 온 것이다. 또한 최치원은 고대 중국인들이 싸리 나무로 만든 화살쏘기에 능했던 숙신족을 상기시켜 발해가 오랑캐 숙신과 다를게 없다고 주장해 왔고 이미 멸망한 고구려까지 싸잡아 욕을 해댔다. 다짐하지만 발해는 고구려를 계승한 나라로 고구려와 같은 세계 제1의 반곡궁을 사용하는 나라였다. 고구려의 활과 화살은 삼국시대 때 오나라의 손권이 특별히 부탁해서 구할 정도로 쉽게 얻을 수 있는 싸리나무 활이 아니었다.


김은한 
보스톤코리아 컬럼니스트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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