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산업, 9·11이후 미 자본주의 새 활로


9·11 테러 이후 미국에 새로운 산업이 생겨났다. 이 산업은 바로 미 국민을 각종 위협으로부터 안전하게 지키는 '국토안전 산업' 혹은 '재난산업'이다. 이 산업은 5년 만에 할리우드보다 더 커진 놀라운 성장세를 보였다. 이 산업의 수요자는 테러 이후 생겨난 국토안보부를 비롯하여 국방부, CIA 등의 국가기관이다. 이들 수요자의 필요와 재난산업을 받쳐주기 위한 비용은 테러와 재난의 공포에 시달리는 미 국민이 부담한다.
캐나다의 저널리스트이자 정치 운동가인 나오미 클라인 (Naomi Klein)은 지난 9월 출판한 "충격의 교리: 재난 자본주의의 부상 (The Shock Doctrine: The Rise of Disaster Capitalism)"을 통해 9·11 이후 떠오른 미국의 재난 산업을 날카롭게 분석했다. 클라인은 '재난 자본주의'가 테러와 카트리나 이후 미국 자본주의가 찾아낸 새로운 활로라고 주장했다. 즉, 미국 자본주의의 든든한 버팀목이었던 '군산학 복합체'가 연이은 테러와 자연재해로 인해 '재난 자본주의 복합체'로 빠른 시간 내에 진화하고 있다는 것.
클라인은 재난 자본주의의 예로 워싱턴 DC 교외에 갑자기 늘어난 보안업체를 제시했다. 이곳에 급속도로 들어서는 신생 보안업체의 모습은 1990년대 실리콘밸리를 중심으로 첨단 산업체와 투자펀드가 집중됐던 현상을 연상시킨다. 이들 재난산업체는 테러방지와 테러리스트 포획 기술을 개발하여 국토안보부나 국방부에 판매하고 있다.
재난산업은 로비회사와의 결탁을 통해 급속도로 발전할 수 있었다. 총기, 무기, 제약, 식품 등의 산업이 워싱턴에 로비를 통해 발전할 수 있었던 것처럼, 재난산업 역시 로비회사를 통해 워싱턴에 입김을 불어 넣으며 그 규모를 넓혀 나갔다. 클라인은 9·11 이전에 재난산업 관련 로비회사가 2개 있었다면, 2006년 중반에는 이러한 로비회사가 543개로 늘었다고 지적한다.
이러한 재난자본주의의 문제는 재난산업을 떠받치기 위한 엄청난 비용을 시민이 감당해야 한다는 데 있을 뿐만 아니라, 개인의 정보가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재난산업체를 통해 정부기관에 넘어간다는데 있다. 예를 들어, 생체 인식, 비디오 감시, 인터넷 추적 등의 기술은 이미 9·11 이전에 민간 기업이 새로운 마이크로 마케팅을 하고자 개발해 냈다. 그러나 프라이버시가 침해당한다는 일반인의 불안과 불만 때문에 당시에는 이러한 기술이 제대로 쓰이지 못했다.
그러나 9·11 테러는 국가안보라는 명목 아래 이러한 기술을 정부기관이 공공연하게 쓸 수 있게 해 주었다. 즉, 신용카드로부터 수집된 정보가 기업체 마케팅 정보로만 판매되는 것이 아니라 FBI에 보안 정보로 팔릴 수도 있게 된 것. 민간기업에 의해 정보가 마구 수집되고 판매되면서 재난 자본주의 시장에는 부정확한 정보가 넘쳐나게 되었고, 선량한 시민이 테러 용의자로 추적받는 일까지 생겨나고 있다.
클라인이 만들어 낸 '재난 자본주의'라는 개념은 테러와 재난의 두려움에서 자유롭지 못한 현대사회의 여러 모습을 해석해 내는 중요한 틀을 제공한다. 미국의 재난산업을 상업화에 성공한 TV 시리즈 '24'와, 각 종 테러관련 영화는 재난산업 자체가 이미 미국의 일상에 깊숙하게 들어와 있음을 반증해 준다. 또한, 클라인의 블로그에는 각국의 신문과 네티즌이 자국에서 발견되는 '재난 자본주의'의 예를 증언해 주고 있다.
테러와 재난에 대한 인간의 근원적 공포가 사라질 수 없는 한, 재난산업은 자본주의가 이익을 창출하고자 새롭게 찾아낸 시장으로서 현대사회에 지속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김진혁  kjh@bostonkore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