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르고의 영어잡설 49 ] Library에는 나무껍질이 있을까?
보스톤코리아  2019-02-11, 11:51:04 
지금도 있는지 모르겠지만 필자는 대학원 시절 홍대 근처의 리브로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국내에서 보기 드문 화보나 미술책도 많았고 공간도 쾌적할 정도로 넓어서 시간을 보내기에 안성맞춤이었다. 그때도 이름이 참 멋지다고 생각했다. Libro는 책이란 뜻이니까 서점이름으로는 딱이다. 물론 ‘책방’이란 우리말 이름도 좋긴 하지만 Libro란 서양말이 더 세련된 느낌을 준다고 생각했다. Libro란 똑같은 이름의 서점이 도쿄에도 있는 걸 보면 서양말 좋아하기는 일본사람들도 마찬가진가 보다.

도서관이라 번역하는 library도 ‘책’을 뜻하는 libra-에서 왔다. 사실, 14세기 무렵 이 단어가 도서관이란 뜻으로 쓰이기 이전에는 고대불어 librairie가 ‘책방’이란 의미로 쓰였다. 그리고 이 단어의 원조인 라틴어 librarium은 도서관이 아니라 ‘책장’을 의미했을 뿐이다. libra-는 ‘책’이고, -rium은 ‘장소’를 의미하는 접미사이다. 전에도 다룬 적이 있지만 aquarium(수족관), auditorium(강당), planetarium(천문관측소), scriptorium(고서보관소) 등에서 볼 수 있다. 

라틴어 liber는 ‘나무의 안쪽 껍질’을 의미했고, 궁극적으로는 ‘벗기다’란 의미를 가지는 인도유럽어 어근 leub-에서 온 것이다. 일부 동유럽언어들에서는 이러한 의미가 아직도 남아있다. 라트비아어의 loubas(벗기다), 리투아니아어의 luobas와 러시아어의 lub(참나무의 안쪽 껍질) 등이 있다. 그리고 이 어근은 당연히 영어 leaf와 동일어근에서 온 것이다. 

어느 사회에서나 책이란 모름지기 나뭇잎이나 나무껍질로 만들기가 쉬웠을 것이다. 이집트인들은 파피루스란 풀잎을 사용했고, 중국인들은 대나무를 사용했다. 책(冊)이란 한자어는 글씨를 새긴 대나무를 엮어놓은 모습이다. 영국인들도 나무를 사용했음은 물론이다.

고대영어 boc는 현대영어에서 beech가 되었는데 ‘너도밤나무’란 뜻이다. 바로 여기서 book이란 단어가 생겨났다. 책을 너도밤나무 껍질로 만들었던 것이다. 재미있게도 독일어에서는 ‘책’을 의미할 때는 Buch, ‘너도밤나무’를 의미할 때는 Buche라는 식으로 구별하는 방법을 개발했다. 아무튼 이 게르만족들은 너도밤나무의 껍질이나 그 판자에 룬문자를 새겨 넣었다.

libro가 책이라면 libretto는 ‘작은 책자’이다. 리브레토가 오페라의 악보로 쓰인 것은 물론 18세기 들어서부터이다. 
어원적으로 libro-가 나뭇닢과 관련이 있고, librarie가 도서관이란 의미보다는 책장이란 의미로 출발했기 때문인지, 도서관이란 의미는 scriptorium이란 단어가 차지하고 있었다.

라틴어 어근 scrib-가 ‘쓰다’란 의미니까 scriptorium은 ‘쓰는 곳’이란 뜻이다. 일찍이 힛타이트어를 쓰는 사람들이 개발한 설형문자로 점토판에 글씨를 새겨 넣던 사람들이 한 군데 모여서 글씨를 새겨 넣던 곳이 scriptorium이다. 그러니까 scriptorium은 집단 필사작업실이기도 하고, 그런 점토판들을 모아놓은 곳이니까 도서관이기도 하다. 

영어에 libra-를 포함한 파생어보다 scrib-라는 어근을 가진 파생어가 훨씬 더 많은 이유는 자명하다. libra-는 ‘나뭇잎’에서 출발하고 scrib-는 ‘쓰다’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얼핏 생각나는 것만 해도, ascribe(~의 탓으로 돌리다), circumscribe(제한하다), conscript(징발하다), describe(서술하다), festschrift(헌사), inscribe(새기다), manuscript(원고), postscript(후기), prescribe(규정하다), prescription(처방), proscribe(후술하다), scribble(휘갈겨 쓰다), scribe(필사생), scriptorium(도서관, 문서보관소), scripture(성경, 문서), subscribe(구독하다), superscript(어깨문자), transcribe(전사하다) 등이 있다. 

‘쓰다’란 단어를 볼 때마다 필자는 한 인물이 떠오른다. 회교도를 창시한 마호메트 말이다. 어느 날 그는 동굴에 들어가서 기도를 하며 묵상하던 중에 갑자기 ‘쓰라!’ 하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한다. 그가 놀라서 글씨를 쓸 줄 모른다고 하자 여전히 ‘쓰라!’ 하는 하나님의음성이 들렸고 그는 여차저차 해서 자신이 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하도록 했는데 그것이 회교 경전인 꾸란(Qur’an)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올댓보스톤 교육컨설턴트, orugo4u@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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