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르고의 횡설수설 3 ] 접시꽃
보스톤코리아  2019-11-04, 10:24:09 
어둠 속에서 앞을 막아서는 키가 큰 꽃들. 내가 집을 잘못 찾았나? 고개를 들어보니 틀림없는 우리 집이다. 아니 이 꽃들은 뭐지? 설마 작년에 심은 씨앗에서 올해 꽃이 핀 것인가? 

그랬다. 작년 5월 다소 늦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나는 한국에서 가져온 접시꽃 씨앗을 잔디밭 가장자리에 심었다. 매일 물을 주고 어서 자라기를 기다렸지만 접시꽃은 생각만큼 빨리 자라지 않았다. 그러더니 떡잎 상태에서 아예 성장을 멈추어버렸다. 마치 어른이 되기 싫어서 성장을 멈춘 <양철 북>의 주인공처럼. 9월에 접어들면서 나는 모든 기대를 접었다. 여전히 떡잎 상태였고 날은 추워져서 더 이상의 성장을 기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다.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되었다. 그 사이에 나는 직장이 바뀌었다. 새 직장에 적응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바쁘게 살았다. 봄이 되자 온 천지에 아름다운 꽃들이 피기 시작했다. 처음 보는 꽃들이라 더욱 새롭고 예쁘게 보였으리라. 새로운 꽃들이 등장할 때마다 나는 스마트 폰으로 사진을 찍었다. 잎이 돋기 전 꽃부터 내보낸 크로커스에서 시작해서 화려한 체리 꽃들이 하늘을 가리더니 곧 이어 화사한 복사꽃이 피어났다. 목련이 고고한 자태를 뽐내는가 싶더니 온갖 색깔의 튤립들이 거리를 수놓았다. 철쭉, 벚꽃, 등나무, 해당화가 꽃을 피웠고, 작약이 커다란 꽃망울을 터뜨렸다. 

스마트 폰이 바빠졌다. 사진이 800장을 넘었다. 다시는 보지 않을 게 분명하지만 어차피 돈 드는 것도 아니니까 마음껏 사진을 찍었다. 퍼피의 핏빛 꽃잎들이 하늘거리는가 싶더니 온갖 백합들이 피어났다. 그리고는 꽃 중의 꽃이라는 장미가 화려한 자태를 뽐내는 6월이 되었다. 전화기에는 어느 새 1000여 장의 사진들이 쌓였다. 이름을 알 수 없는 수많은 꽃, 나무, 꽃나무들이 이름이 불리기를 기다리며 앨범 속으로 들어갔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평소와 달리 앞문을 통해 집으로 들어오려던 참이었다. 그리고 맞닥뜨린 접시꽃들. 온 몸에 소름이 돋는 것 같기도 하고, 알 수 없는 놀라움에 얼어붙은 것 같기도 한 기분. 이게 도대체 어찌 된 일일까?

작년 5월에 뿌린 접시꽃 씨앗은 분명 떡잎 상태에서 죽었는데 ... 1년을 건너뛰어 올 7월에 다시 자라 꽃이 필 수 있을까? 마침 보스턴을 방문한 생물학 교수가 생각나서 전화를 했다. 이런 일이 과학적으로 가능하냐고. 생물학이 전공분야이긴 하지만 잘 모르겠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씨앗은 정말 놀라운 일을 합니다.” 그가 덧붙인 말은 과학적이라기보다는 종교적이었다. 궁금증을 못 이겨서 나는 네이버 지식인을 찾아보았다. 접시꽃: 다년생 식물. 아하, 그렇구나. 작년에 죽은 것이 아니라 그냥 땅 속에서 기다리고 있었구나. 

그래서였는지 모르겠다. 시인 도종환이 아내에 대한 사랑을 접시꽃에 비유한 이유 말이다. 아내와의 이별을 슬퍼한 시이지만 또한 다시 돌아올 접시꽃처럼 아내는 영원히 떠난 것이 아니다. 시에는 접시꽃이란 말이 딱 한번 등장한다. “처음에는 접시꽃 같은 당신을 생각하며 무너지는 담벼락을 껴안은 듯 주체할 수 없는 신열로 떨려 왔습니다.” 그렇지만 접시꽃은 제목의 일부가 되었고 이제 누구나가 사랑하는 국민의 꽃이 되었다. 

7월의 보스턴에서 보는 접시꽃은 무척이나 감개무량하다. 죽은 줄만 알았던 생명이 1년을 건너뛰어 화려한 꽃으로 피어나다니. 자연의 섭리란 참으로 위대하다. 오늘은 몇 마리의 벌들이 꽃을 찾아왔다. 저 벌들은 또 어딘가로 사랑의 메시지를 전하리라. 벌써 내년이 기대된다. 내년에는 좀 더 일찍부터 접시꽃의 일생을 지켜보리라. 


올댓보스톤 교육컨설턴트, orugo4u@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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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견목록    [의견수 : 1]
물쌀
2019.11.29, 18:00:37
접시꽃은 첫해에는 꽃을 안피웁니다.
2년째가 되어서 첫꽃을 피웁니다.
IP : 110.xxx.24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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