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담객설閑談客說: 창덕궁
보스톤코리아  2019-12-02, 11:14:08 
오래전 이맘때였다. 한국을 방문중이었다. 마침 아내와 아이도 한국에 머물고 있었다. 잘되었다 싶어, 식솔들을 이끌고 서울고궁 나들이에 나섰다. 다시 가보고 싶었고 아이에게 보여주자고 했다. 걷고, 둘러보고, 냄새를 맡고 싶은 심산이었던 거다. 

늦은 가을, 흐린 날 창덕궁은 을씨년스러웠다. 하지만 또다른 풍광이었고, 담장밖과는 완연히 다른 정적의 세상이었다. 소음은 물론, 자동차소리도 없었던 거다. 보슬비 뿌리는 소리까지 귀에 잡혔고, 발자욱 소리마저 조용했다. 낙선재는 창덕궁안에 있다. 

낙선재 앞 너른 마당에 도달했다. 그런데 정경은 눈에도 낯설지 않았다. 아아, 기억속에 깊히 각인되었지 싶었는데, 자동차 차고를 만났던 거다. 눈길을 잡은 건 고급스러운 앤틱 자동차 였다. 내가 여섯일곱살 코흘리개 촌아이일 적에 경이롭게 쳐다 봤던 자동차였던 거다. (고종과 순종임금이 탔다는 승용차였다. 이미 다른 곳으로 옮겨졌다고 했다.) 내 아이야 심드렁하게 스쳐 보는듯 했다. 

낙선재 안에는 현판이 여럿 있다고 했다. 내가 창덕궁을 둘러볼 적에는 눈에 띄이지 않았다. 당연히 현판글씨들을 놓쳤다. 놓친 다음에 더 갈증이 나는데, 많은 현판중 하나다. 유재留齋. 이제야 책을 통해 들여다 봤다. 추사의 작품이며 제자에게 보내준 글씨였단다. 힘찬 글씨체가 일품임에 틀림없다. 보고 읽을 수있는 안목이야 있을리 만무하다. 하지만 해제의 뜻은 아득히 깊다. (내스스로 뜻을 새기기로 했다. 만용이며 오역일 수도 있겠다.)

재능은 남겨 하늘로 돌려보내고 留不盡之巧, 以還造化
녹봉도 남겨 나라(조정)에 돌려보내며 留不盡之祿, 以還朝廷
재산 역시 남겨 사회(백성)로 돌려보내고  留不盡之財, 以還百姓
(받은) 복도 남겨 자손에게 내려 보낼 지니. 留不盡之福, 以還子孫
(阮堂題, 완당 김정희가 쓰다)

창경궁은 창덕궁과 담하나로 붙어있다. 창경궁이 동물원인 창경원일적이다. 나역시 어릴적에 창경원을 구경했던 적이 있다. 그 많은 다른 짐승은 모르겠다만 코끼리 만큼은 기억한다. 코끼리는 썩좋은 사진배경이었기 때문이다. 그 코끼리는 아직도 건재한가? 아마 너무 늙어 이미 죽었을 게다. 환갑진갑을 모두 넘겼을 테니 말이다. 참 그 코끼리를 들여온건 삼성이라 했다. 적지 않은 금액을 들였을텐데, 없는 국가재정에 손 벌릴 곳은 기업 밖에 없었던 모양이다. 당시에도 삼성은 재산을 사회에 환원했다 해야할까.

연애할적에 나는 아내와 덕수궁에 이따금 갔다. 사진도 찍었는데, 지금처럼 늦은 가을이었다. 

상아에 청옥을 입힌 듯하구나 (아가 5:14)


김화옥 
보스톤코리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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