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도(花郞徒)와 성(性) 그리고 태권도(跆拳道)
화랑세기花郞世紀, 20세 풍월주風月主 예원공禮元公(14)
보스톤코리아  2021-06-21, 11:48:02 
예원이 살던 당시 신라 사회는 골품을 유지하기 위하여 근친혼을 하였다. 하지만 예원은 그 혼인제도를 부끄럽게 여기고 있었다. 특히 김춘추를 수행하여 당나라에 갔을 당시, 당나라 고위관리들로 부터 신라의 혼도婚道에 대하여 질문을 받았을 때는 다만 신의 뜻에 따른다고만 대답하였다. 귀국하여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과 그 혼인제도를 고치려고 했지만 성과가 없었다. 뿐만아니라 자신의 아들 오기吳起가 내외종 누이 운명雲明을 아내로 맞이하는 것도 막지 못했다. 그 후로 그는 혼인제도 개선의 뜻을 접었고, 오기와 운명이 낳은 손자 김대문을 지극히 사랑하였다. 

예원의 누이 보룡은 김선품에게 시집을 갔다. 김선품은 예원을 이어 21세 풍월주에 오르게 되었다. 선품의 부모는 김구륜과 보화공주이다. 구륜의 부모는 진흥왕과 사도왕후이고 보화공주의 부모는 진평왕과 미실이다. 김선품은 보룡을 아내로 맞아 아들 김순원과 딸 자눌, 운명, 야명을 낳았다. 제33대 성덕왕이 김순원의 사위이고, 성덕왕의 차남 제34대 효성왕이 그의 손서이다(효성왕과 그의 동생 경덕왕은 외손자이기도 하다). 즉 김순원의 딸 소덕왕후가 성덕왕의 계비이고, 아들 김진종의 딸 혜명왕후가 효성왕의 왕비이다. 장녀 자눌은 제30대 문무왕 김법민의 왕비인 자의慈儀왕후이다. 문무왕과 자의는 아들 소명태자를 두었는데 일찍 사망하였고 둘째 아들이 제 31대 신문왕이다. 차녀 운명은 김오기와 혼인하여 화랑세기의 저자 김대문을 낳았다. 막내딸 야명은 문무왕의 후궁이 되었다. 
김예원이 당시 부끄러워 고치려 했던 신라의 혼인풍습과 화랑세기의 저자 김대문의 출생 순간이 화랑세기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예원공은 우리나라의 혼인의 도를 부끄럽게 여겨 신神의 뜻에 따른다고 대답하고 돌아와 의논하여 고치려 했으나 관습이 오래되어 고치기 어려웠다. 항상 걱정했다. 자손들에게 다시는 나쁜 풍습을 따르지 말라고 훈계했다. 공의 아들인 오기공吳起公이 사촌 누이 운명雲明을 아내로 맞이했다. 공이 노하여 보지 않았다. 흠순공이 웃으며 말하기를 “선품의 딸이니 네가 마땅히 자식으로 여겨야 하는데 도리어 노여워 하니 무슨 일인가? 산 자는 불안하고 죽은 자는 원망할 것이다. 네가 그 것을 살펴야 한다” 했다. 공은 부득이 허락했다. 운명은 곧 대문大問의 어머니이다. 대문을 낳자 공은 기뻐하여 말하기를 “하늘의 뜻이구나. 아니면 선품이 이 손자를 점지하려고 너희들을 사랑에 빠지도록 했느냐?” 했다. 마침내 다시는 혼도婚道에 대하여 말하지 않았다.]

김예원과 우야공주 사이에는 아들 오기 외에도 딸이 셋 더 있었는데, 장녀 온희溫喜는 25세 풍월주가 된 김춘장金春長에게 시집갔다. 김춘장은 17세 풍월주를 지낸 김염장의 셋째 아들이다. 차녀 성희星喜는 김원수金元帥와 혼인하였다. 원수의 부모는 김흠순과 보단이다. 흠순은 김유신의 동생으로 부모가 김서현과 만명이다. 원수의 어머니 보단의 부모는 김보리와 후단이다. 보리공은 12세 풍월주를 역임한 김대문의 증조부이다. 후단은 본래 보리의 정처인 만룡부인의 침신이었다가 보리의 후처가 되었다. 그리고 딸 보단과 이단을 낳았으며 그들 모두 김흠순의 아내가 되었다. 이러한 세계世系와 혼인 관계로 얽혀 있는 김원수는 후일 ‘흠돌의 난’ 을 진압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김오기가 호성장군이 되어 난을 진압하였다. 순지, 개원, 당원, 용원 등도 함께 진압하였다). 

김흠돌, 걸출한 신라의 장군이었다. 그의 자세한 가계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부모는 김달복과 김정희이다(정희는 김서현의 딸로 김유신의 누이 동생이다). 흠돌의 형제인 김흠운은 요석공주의 남편으로 태종무열왕 김춘추의 사위이다. 그런데 655년 백제와의 전투에서 전사했다. 김흠돌은 김유신, 김춘추, 김인문 등의 휘하에서 용맹을 떨치며 668년 평양성 함락 때도 크나큰 전공을 세웠다. 그리고 그의 딸이 문무왕의 아들 정명(후일 신문왕)의 빈이 되었다(정확한 날짜의 기록은 없다). 681년 정명이 신문왕으로 즉위하자 8월에 흠돌은 흥원興元과 진공眞功 등과 함께 반란을 일으켰다. 곧 진압군에 의해 체포되어 사형 당했다. 그런데 그의 반란 동기와 죄목에 대한 기록이 없다. 상기한 주동자 외에도 상대등/병부령 김군관도 함께 처형되었다(왕의 장인이 역모를 했는데도 고발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처형되었다. 자살했다는 설도 있다. 김흠돌과 김군관 사이의 관계/연계도 알려져 있지 않다). 흠돌이 처형되자 그의 딸도 폐비가 되었고, 신문왕은 흠돌의 형제인 김흠운의 딸을 새 왕비로 맞이 하였다. 그가 신목왕후이며 효소왕과 성덕왕의 친모이다.     

군관공은 23세 풍월주를 역임하였고(640~643년), 진공眞功은 26세 풍월주를 역임하였으며(652~656년), 김흠돌은 27세 풍월주를 역임하였다(656~662년). 이렇듯 화랑의 수장들이 주동이 되어 많은 화랑도를 거느리고 역모를 도모하였으니 자의태후는 화랑을 폐지하라고 명하였다. 왕경의 모든 화랑들은 병부에 소속되었지만 지방의 낭정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이에 중신들이 오래된 풍속을 갑자기 바꾸면 혼란이 생긴다고 하자 자의태후가 다시 득도하여 국선國仙이 되는 것을 허락하였다. 화랑은 부활하였지만(없어지지 않았지만) 많이 바뀐 모습으로 ‘풍월주’ 의 자리를 ‘국선’ 이 대신하였다. 

참고문헌: 삼국사기, 삼국유사, 화랑세기 – 신라인 그들의 이야기(김대문 저, 이종욱 역주해, 소나무), 화랑세기 – 또 하나의 신라(김태식, 김영사), 한국사데이터베이스(db.history.go.kr)


박선우 (박선우태권도장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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