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무와 어머니
신영의 세상 스케치 934회
보스톤코리아  2024-05-06, 11:26:06 
바람과 바람의 샛길에서 문득 내 어머니 그리운 날이다. 5월이라 그랬을까. 어쩌며 매일 그토록 그리움으로 있었다면 단 하루를 그 그리움에 지쳐 하루인들 제대로 살았을까. 이렇듯 내 울타리의 가족들을 챙기다가 문득 노을빛 짙어 오는 저녁 슬그머니 내 곁을 찾아오는 따뜻한 느낌은 바로 내 어머니인 것을 말이다. 벌써 내 곁을 떠나신 지 20년이 다 되었다. 시간의 거리만큼이나 그리움의 길이는 더 짙어 온다. 어릴 적 떠오르는 빛바랜 기억들과 추억들 사이에서 흑백의 필름으로 내 가슴에 남아 보고픔과 그리움으로 짙게 남는다.

늦둥이 막내라 부모님과 오래 함께 못해 안타깝고 서운했지만, 눈을 감고 가만히 생각하면 그 사랑 끝없어라. 그 그리움 사무쳐라. 어머니 돌아가시던 해에 뒤뜰에 작은 소나무 한 그루 새순을 내고 있어 화장실 유리창에서 잘 보이는 곳으로 옮겨 심었었다. 20년이 다 되어가니 소나무가 초록의 솔잎 아름드리 풍성해지고 솔방울 가득해졌다. 이른 아침이면 부엌에서 블랙커피 한 잔 내리며 화장실을 제일 먼저 간다. 아침마다 창밖 소나무의 '솔잎의 노래'를 듣는 것이다. 눈이 오면 눈이 오는데로, 바람불면 바람 부는데로, 비가 오면 비가 오는데로 햇살 고운 날이면 고운 햇살의 노래를 만난다.

내 어머니 무덤가에  
 
당신께 가는 길
무작정 담긴 그리운 마음
오랜 세월에 씻긴 황톳길에
숭숭 뚫린 자갈들이 솟아있고
장맛비에 깊이 팬 남은 자국
골 깊은 그리움 더욱 시립니다
신작로 지나는 바람에도
귀 기울인 당신의 기다림을
가슴으로 만나봅니다
얼마를 기다렸을까.
저토록 하얀 그리움을 꽃으로 피웠으니
초록의 나무들 무성하고
당신을 찾아드는 길목에
하얗게 마중하던 개망초를 보았습니다
작은 꽃잎들이 모여 눈꽃을 만들고
멀리서 찾아온 막내딸을 마중하는
당신의 마음인 줄 알았습니다
환하게 웃으며 반기던 개망초
오늘도 하얀 그리움으로 피었습니다
오랜 기다림에 그리움의 꽃으로.

신 영 시집 『그대 내게 오시려거든 바람으로 오소서!』 

내 어머니를 떠올릴 때면 언제나 '소나무' 생각이 난다. 사계절 언제나 푸르른 솔잎을 키우며 든든하게 버팀목으로 서 있던 소나무 같았다. 조용하신 아버지 성품에 비해 어머니는 강직하시고 여장부 같았다. 어려서는 조용하시고 따뜻하신 아버지를 더 많이 따르고 좋아했던 막내딸이었는데 결혼하고 세 아이를 낳고 불혹의 마흔이 되어서 어머니의 그 강직한 성품이 내 가슴에 깊이 와 닿았다. 어쩌면 나의 내면 깊숙한 곳에 어머니는 살아 숨 쉬고 있었다. 문득, 삶에 대해 인생에 대해 물음이 찾아올 그 무렵 내 속에 있던 어머니가 꿈틀대기 시작했다.

그 무렵 내 속에서 어머니의 꿈틀거림은 더욱 일렁거렸고 나의 삶에 희망과 용기를 주었다. 운전하며 오갈 때도 혼자서 중얼거리듯 기도처럼 혼잣말을 했다. 엄마, 나 잘살고 있지? 그렇게 물으며 오늘까지도 그렇게 씩씩하게 살고 있다. 가끔은 단호하고 강직한 모습을 볼 때면 '내 딸아이'에게서 '내 어머니'를 만나기도 한다. 가만히 생각하면 참으로 신기하다는 생각을 혼자 하면서 피식 웃는다. 아, 저 아이 속에 '내 어머니'가 살아 숨 쉬고 있구나! 하고 말이다. 그렇게 내 어머니는 지금 내 곁에 없지만, 내 일상에서 늘 함께 살아 숨 쉬고 있다.

한겨울 눈이 밤새 내려 소나무 솔잎에 소복이 쌓인 풍경에 아침 햇살이 찾아오면 영롱한 수정이 되어 눈이 부시고 시리도록 반짝거린다. 이런 날이면 소나무를 만나려 밖으로 뛰어나간다. 내 어머니를 만나는 것처럼 행복한 시간이다. 가끔은 소나무를 만지며 이야기를 나누고 떨어진 솔방울을 주워 코에 대어본다. 그 싱그런 솔향에 그만 취해 마음이 평안해진다. 바로 오감을 터치해 힐링이 되는 것이다. 시간이 넉넉할 때는 산으로 들로 바다로 다니지만, 그렇지 못할 때도 이렇듯 집 주변의 나무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마음의 치유를 얻게 된다.

화장실 창문 밖 '소나무와 어머니'는 내 삶의 아주 작지만 큰 행복의 풍경이다. 마음이 우울할 때는 위로를 받을 수 있고, 기쁠 때는 함께 기쁨과 행복을 나눌 수 있고, 삶에서 조금의 여유를 찾을 수 있고 약간의 기다림을 배울 수 있는 내 삶의 작은 풍경이다. 훌쩍 자란 소나무를 보면서 남편은 집 벽에 닿으면 좋지 않으니 나무를 잘라야겠다고 한다. 이처럼 우리는 한 지붕 아래에서 함께 살고 한 이불 속에서 함께 자고 깨어나 살아도 하나를 보고도 여러 생각을 한다. 물론, 정답은 없다. 각자의 필요에 따라 넉넉히 누릴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시인 신영은 월간[문학21]로 등단, 한국[전통문화/전통춤]알림이 역할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skybosto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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