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담객설閑談客說: 가야 온다
보스톤코리아  2024-01-15, 10:54:39 
나태주 시인이다. 그의 시가 아닌 산문이다. 지난 초가을에 읽었는데 글 중 첫 구절이다. 

우리네 인생은 의외로 비극적이다. … 왜냐면 태어나면서부터 이미 죽음의 날을 예약했기 때문이다. … 모든 생명체는 탄생과 사망의 날이 예약되어 있으므로 비극적이다. … (그러나) 인간이나 모든 생명체는 사는 동안 충분히 즐겁고 아름답고 희망적일 수 있다. 그렇게 되도록 애써야 한다. (나태주, 가을의 향기중에서)

첫 구절이 서늘하다. 인간을 포함해 모든 생명은 태여나면서 이미 죽음을 예약해 놓았단다.  하긴 태여나면 살다가 죽는 건 당연한 이치이다. 크게 놀랄 일도 아닌데, 가는 것이 있다면 오는 것도 있을 테니 말이다. 저녁무렵이면 해는 기울고 내일이면 다시 떠오른다. 

그 즈음이다. 이영길 목사(보스톤한인교회)의 주일설교 중이었다. 열과 성을 다해 믿고 섬기라는 말씀이었다. 설교중 한구절이 귀를 잡았다. 초 (candle)는 타야 빛을 발한다. (설교말씀을  앞뒤 잘라내고 한 문장으로 만드는 건 망발임에 틀림없다. 죄송하다는 말씀 덧붙인다.) 

촛불도 그러할테고, 장작 역시 타야 열도 내고 빛도 낸다. 열과 빛을 내기 위해선 나무도 스스로 몸을 태워야 하는 거다. 잘 마른 낙엽더미 역시 잘 탄다. 

지난 늦가을 이었다. 마당 낙엽을 치울 적이다. 쌓인 낙엽더미에서 푸른 잎을 몇장 발견했다. 미쳐 마르지 않은 푸른색이었던 거다. 도대체 무슨 사연이 있는 걸까.  변색기變色期를 놓쳤던가. 남들은 수명을 다해 누렇게 변해 떨어졌는데,  그 푸른잎은 왜 시기를 놓쳐 요절했나 말이다. 

하릴 없이 나무 위를 올려다 봤다. 아니 저런 저런. 아직도 멀쩡히 푸른잎들이 몇장 눈에 띄였다. 하긴 몇일 후 닥친 폭풍우에 이젠 온 잎을 다 떨궈냈다.  벌거벗은 나목裸木이 되었던 거다.

꽃이 피면 져야 한다. 봄에 싹이 돋았다면, 여름이면 푸른 잎이 될 것이고, 가을이면 낙엽되어 떨어져야 한다. 낙엽은 떨어져야 다시 올 내년 봄을 기약 할 수있는 거다. 

피면 져야 하고, 가야 다시 올수 있다. 덕분에 나무 나이테는 한줄 더 늘어 난다. 이원규 시인이 떠올랐다. 그의 시 한줄이다.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천왕봉 일출을 보러 오시라
다시 오시려거든 
부디 빈몸으로 오시라. 

내가 다시 와서… 너희도 있게 하리라 (요한 14장1:3)


김화옥 
보스톤코리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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