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악의 도시 떠나고 싶어
보스톤코리아  2009-05-07, 01:07:21 
최근 연방 대법관에서 스스로 사임할 의사를 밝힌 데이비드 수터 대법관
최근 연방 대법관에서 스스로 사임할 의사를 밝힌 데이비드 수터 대법관
지난 주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게 “올해 여름에 사직하겠다”는 편지를 보낸 데이비드 수터(David Souter, 69) 대법관은 9명의 대법원 판사 가운데 네 번째로 젊다. 그는 “세계 최악의 도시(워싱턴DC)에서 세계 최고의 직업을 가졌다”는 말을 남기고 종신직인 연방대법관 자리에서 스스로 물러나기로 결정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1일 수터 대법관의 6월 은퇴를 공식 확인하면서 “오는 10월 첫째 월요일까지 수터 대법관의 후임을 임명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오바마 대통령은 “독립적인 성향에 훌륭한 경력과 성실함을 갖춘 사람을 후임으로 임명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수터 대법관의 건강이 특별히 나쁘지도 않고, 또 9명의 연방대법관 가운데 70세가 넘은 고령의 인사들이 5명이나 되는 상황에서 그가 전격 사퇴를 결정하게 된 배경에 여러 궁금증이 제기되고 있다.

수터 대법관이 사임한 이유는 뉴햄프셔주에 있는 2층짜리 낡은 농가에서 찾을 수 있다. 그가 11살 때부터 살았던, 헛간처럼 보이는 이 허름한 집은 수터 대법관이 워싱턴에서 생활하던 내내 마음을 두었던 곳이다.

지인들에 따르면 그는 1990년 대법관에 지명되자 홀로 렌터카를 몰고 뉴햄프셔를 떠났다. 그때 어릴 적 사진 등 추억이 깃든 물건을 상자에 빼곡히 담아 왔는데 2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짐을 풀지 않았다. “빨리 시골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약혼 경력만 있고 독신인 수터 대법관은 워싱턴 시내의 고급 관사 대신 시내 남쪽의 작은 아파트에서 혼자 살았다. 매일 12시간 이상을 일하고 점심은 주로 요구르트와 사과를 싸와서 집무실에서 해결했다.

휴가철만 되면 뉴햄프셔로 차를 몰고 가 집 인근 산에서 하이킹을 즐겼다. 그리고 시골집에 쌓아둔 수천 권의 책을 읽었다. 주민들은 밤마다 휘적휘적 홀로 움직이는 플래시 불빛을 보고 마을의 자랑인 대법관이 집에 돌아왔음을 알았다.

수터 대법관은 은행 투자에 성공해 자산이 600만∼3000만 달러로 추정되는 재산가이지만 낡은 폭스바겐 승용차를 직접 운전하며 다닌다. 여전히 만년필을 고집하며 이메일도, 셀폰도, 자동응답 전화기도 사용하지 않는다. TV조차도 없다.

외아들로 태어나 혈혈단신으로 워싱턴에 온 그는 추수감사절 같은 명절 땐 친구인 샌드라 데이 오코너 전 대법관 가족과 식사를 했다.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상냥하지만 언론 인터뷰나 파티를 극구 회피하는 수줍음 많은 성격이다. 이런 그이기에 워싱턴은 빨리 떠나고 싶은 ‘최악의 도시’였던 것.

수터 대법관은 2004년에 아파트 앞에서 밤에 산책을 하다 강도에게 습격을 당하기도 했다. 동료 대법관에게 보낸 편지에서 “휴가 때 시골집에 가면 평화스러움을 느낀다. 그 휴식은 맑은 공기와 경치에서만 오는 게 아니다. 마을 사람들에게서 온다”고 쓴 그는 언젠간 고향 마을에 대한 책을 쓰겠다고 말하곤 했다.

1990년에 조지 부시 대통령은 하버드대 학부와 로스쿨을 졸업하고 뉴햄프셔 주 검찰총장 등을 지낸 그를 대법관에 지명했다. 그러나 수터 대법관은 1992년 여성의 낙태권 인정에 찬성했고, 2000년 대선 플로리다 재검표 소송에서도 소수의견을 내 결과적으로 조지 부시 대통령 당선에 반대하는 쪽에 섰다.

민주당 정권에서 15년 만에 대법관을 지명하기 때문에 수터 대법관의 후임에 많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현재 연방 대법관 9명 가운데 7명이 공화당이 지명한 인사다.

후임 인선에 대해 로버트 깁스 대변인은 “미국인 대부분이 어느 한쪽에 치우치기 보다는 중간을 선호하는 것으로 안다”며 “법의 지배를 잘 알고, 경력에서 훌륭한 일관성을 보이며, 우리의 일상 생활에 미칠 판결의 영향을 잘 이해하는 사람이 고려될 것”이라고 밝혔다.

정성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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