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대륙 인디언의 역사 : 9. 레드 클라우드의 빛나는 승리 (3)
보스톤코리아  2015-12-28, 14:57:25 
페터만 전투 (계속)
한창 인디언과의 회담이 진행되고 있을 무렵에 캐링턴(Henry B. Carrington) 대령이 지휘하는 약 700명의 미군이 네브래스카의 커니 요새로부터 라라미 요새에 도착하였다. 군인의 가족과 건설공사업자 등 민간인 300명과 1000마리의 가축들도 함께 왔다. 그런데 코너 장군과는 달리 인디언과의 전투에서 꼭 필요한 인디언 정탐꾼(scout)을 데려 오지 않고 길 안내자로는 짐 브리저 혼자 왔다. 인원구성이나 무기로 볼 때 캐링턴 부대는 전투용으로 편성된 부대이라기 보다는 공병부대 같은 성격이 강했다. 이 부대는 보즈만도로의 안전한 통행을 확보하기 위하여 기존 코너 요새 외에 두 개의 요새를 더 건설하기 위하여 파견되었다. 캐링턴 부대는 보즈만 도로를 따라 북상하여 7월 13일부터 인디언의 가장 중요한 사냥터인 빅혼 산기슭에 필 커니요새(Fort Phil Kearny)를 짓기 시작하였다. 요새가 완공된 뒤에 인디언들도 이 요새를 구경하였는데 대포도 갖추고 있을 뿐만 아니라 워낙 튼튼하게 지어졌기 때문에 요새 공격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인디언들은 생각했다. 따라서 적절한 술책을 써서 군인들을 요새 밖으로 나오게 해서 섬멸시키는 전략을 구사하지 않으면 적들에게 이길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도 가졌다. 캐링턴은 8월초 150명의 군인을 보즈만 도로를 따라 약 140km 북쪽으로 보내어 빅혼 강 연안에 스미스 요새(Fort C. F. Smith)를 건설토록 지시했다.

캐링턴 부대, 특히 필 커니요새는 처음부터 인디언들의 게릴라식 공격에 지속적으로 시달렸다. 인디언 연합군의 중심에는 항상 붉은 구름이 있었는데 날로 동맹이 커져 이 무렵 전사의 규모는 3000명에 달하였다. 보즈만 도로를 통행하는 마차는 군용이든 민간용이든 가리지 않고 공격하였으며 요새 인근에서 벌목작업을 하던 군인들도 공격을 받았다.  그해 12월 인디언 연합군은 필 커니 요새에 주둔하는 군인들을 몰살시킬 작전을 꾸몄다. 12월 21일을 승리의 디데이로 잡았다. 인디언의 전략은 적절한 유인책을 써서 군인들을 요새 밖으로 나오게 만들어 일정거리 만큼 인디언들을 추격해 오도록 만든 다음 길목에 매복해 있던 전사들이 한꺼번에 달려들어 일망타진 하는 것이었다. 붉은 구름은 덕과 지략과 용맹을 고루 갖춘 빼어난 지도자였다. 특히 그는 유인 전술을 잘 활용하였으며 인디언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원정을 나가 장기간에 걸친 전투를 치룰 경우에는 전투 병력과는 별도로 병참병력을 전선의 후방에 배치하여 전쟁물자 공급을 원활히 함으로써 전사들의 전투능력을 십분 발휘하도록 조치하였다고 한다. 

필 커니 요새 주둔군 책임자로 있는 페터만(William J. Fetterman) 대위는 자기 주장이 강하여 상관의 지시대로 움직이지 않고 혼자 판단하여 독단적으로 행동하는 경향이 있는 장교였다. 그런 점을 잘 아는 캐링턴 대령은 페터만에게 인디언과의 교전시 인디언을 뒤쫓더라도 롯지 트레일 릿지(Lodge Trail Ridge)를 넘어가지는 말라고 지시를 내려놓은 상태이었다. 그러나 페터만은 기회가 오면 인디언과의 전투에서 승리하여 소령으로 진급해야겠다는 생각에 사로 잡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 날 공격에서 가장 중요하고 위험한 유인병(decoy) 역할을 완벽하게 해낸 사람이 다름 아닌 전설적인 인디언 전사 미친 말(Crazy Horse)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페터만 부대는 인디언들의 계략에 속아서 넘어서지 말라고 지시받은 선을 훌쩍 넘어 미친 말이 중심이 된 유인병들을 쫓아갔다가 매복해 있던 인디언들에게 꼼짝 못하게 포위되는 바람에 그날 전투에서 한 명도 살아남지 못하고 81명이 몰살을 당했다. 인디언측도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약 200명의 인디언들도 죽거나 다쳤다. 페터만 대위를 포함한 미군전사자들은  리틀 빅혼 국립묘지에 안장돼 있다. 백인과의 전투에서 죽어간 수많은 인디언들은 어디쯤 묻혀 있을까? 국가 조직을 갖춘 든든한 후견인이 없었으니 시신을 제대로 수습하고 장례를 치루고 기념 묘지에 안장한다는 일은 처음부터 기대할 수도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캐링턴이 전투 현장을 찾아와 멀쩡한 시신은 하나도 없을 정도로 심하게 난도질되어 있는 것을 보고는 종교적 광신자들이나 할 수 있을 법한 믿을 수 없는 사건이라며 크게 경악하였다.  그런데 유일하게 한 병사의 시신만은 온전하였다고 하는데 끝까지 자신이 맡은 소임을 다하며 죽어간 나팔수에 대한 존경심의 표시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만약에 캐링턴이 샌드크리크에서 인디언들이 당했던 현장을 목격하였더라면 어떤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인과응보라는 말이 이 경우에도 쓰일 수 있는 말인지 모르겠다. 인디언은 그들의 부모형제와 친척이 당했던 방식 그대로 돌려주었을 뿐이다. 캐링턴의 생각이 맞을 수도 있다. 시빙턴이 스스로 얘기했듯이 그는 광신적 믿음에서 대학살을 자행했고 인디언들은 이를 학습하여 모방했으니까 말이다. 굳이 두 케이스를 비교한다면 샌드크리크에서는  부녀자와 어린아이가 대부분인 133명이 학살당한 사건이었던 반면에 페터만 전투의 경우에는 교전 중에 81명이 전사한 사건으로 그 성격에서 큰 차이가 있다.

(다음 호에 계속)

김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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