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도(花郞徒)와 성(性) 그리고 태권도(跆拳道)
화랑세기花郞世紀, 18세 풍월주風月主 춘추공春秋公(6)
보스톤코리아  2020-11-09, 11:53:27 
625년 정월 대보름날 김유신이 김춘추을 불러 집앞에서 축국을 하다가 고의로 옷고름을 밟아 찢고서 자신의 집으로 가서 꿰메자고 하였다. 먼저 큰 동생인 보희에게 시켰지만 보희는 ‘병이 나서’ 못하고, 다시 작은 동생 문희에게 시켜서 옷을 깁게하고 자신은 자리를 피했다. 그들은 김유신의 뜻을 알았고 사랑을 하였다. 그리고 문무왕이 될 김법민이 이듬해 태어났고 문희는 후일 춘추가 왕위에 오르면서 왕비가 되었다. 삼국사기, 삼국유사, 화랑세기에 보면 동일하게 김유신이 처음에 보희를 춘추와 맺게 하려고 계획하였다. 하지만 보희는 그날 ‘무슨 일이 있어서(삼국사기)’, ‘남녀칠세부동석의 유교적 도덕관념을 나타내며 거부(삼국유사, 삼국유사에는 병이 들었다는 부연 설명도 있다)’, 또는 ‘병이 들어서(화랑세기)’ 등의 이유로 거절하면서 그만 왕비가 될 절호의 기회를 날려 버렸다. 각기 조금씩 다르게 기록되어 전하긴 하지만 보희는 그날 분명 무슨 피치못할 사정이 있었다. 즉 같은 집에 살고 있는 오라비 김유신이 모르는 ‘병’ 이 있었다. 중병이거나 사고를 당했다면 김유신이 모를리가 없다. 그랬기에 그는 큰동생 보희에게 바느질을 핑계로 김춘추와 맺으려고 했던 것이다. 그럼 과연 보희는 무슨 병을 앓고 있었을까?

이의 실마리는 고려사에 기록된 ‘작제건의 탄생설화’에서 찾을 수 있다. 고려사에 있는 태조 왕건의 조부 작제건의 탄생설화는 ‘보희와 문희’ 의 이야기, 즉 ‘매몽설화’ 를 완전히 표절한 것이다. 그리고 그 설화는 김관의金寬毅316) 의 편년통록編年通錄에서 채록했다. 당나라 황제가 신라 보육의 집에 와서 묵다가 찢어진 옷을 깁는데 언니는 코피가 나서 못하고 아우가 대신했다. 이것이 인연이 되어 동생 진의와 동침해 낳은 아들이 바로 왕건의 할아버지 작제건이다. 여기서 바로 언니는 ‘코피’ 가 나서 바느질을 못했다. 참고로 편년통록은 삼국사기(1145년 편찬) 와 같은 시기에, 삼국유사(1281년 저술) 보다는 먼저 저술되었다. 과연 언니의 코피는 무엇인가? 이것은 우리 전통시대에는 월경月經의 은유로 인식되었다. 그래서 그날(625년 정월 대보름날), 보희는 달거리를 하고 있었으며 김유신은 그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기에 처음에는 보희에게 김춘추의 옷을 깁게하였다. 그러나 단지 옷을 깁기만 하는 ‘행사’ 가 아님을 자매들도 알고 있었기에 달거리를 하는 보희는 가지 못했고 대신 동생 문희는 한겨울 추운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날렵한 옷차림(삼국사기의 기록)’ 을 하고 김춘추가 기다리는 한적한 곁방으로 갔다. 그리고 눈부시게 아름다운 문희의 자태에 마음을 빼앗긴 김춘추는 (아마도 혼인을 약속하고) 사랑을 나누었다. 이 사건은 당시의 남녀간의 성적인 면에서 본다면 보희와 문희의 김춘추를 둘러싼 색공色供의 장면이 떠오른다. 그리고 보희는 월경 중이었기에 동생인 문희에게 양보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 색공은 단 하루의 색공이 아니었다. 나중에 여러 우여곡절을 거쳐 춘추와 문희는 포사(포석정)에서 혼례식을 하였고, 곧 첫 부인 보라가 죽자 정궁이 되었으며, 춘추가 풍월주의 위에 오르자 문희는 화군花君(풍월주의 부인)이 됨에 보희는 서형산에 올라 오줌을 눈 꿈을 동생에게 한 폭의 치마로 판 것을 후회하며 시집을 가지 않았다. 그 뿐만이 아니라, 654년에 김춘추가 왕위에 오르자 문희는 왕비가 되었다. 치마 한 폭에 왕비의 자리를 날여버린 비운의 여자, 보희는 그 많은 날 중에 하필 그날 달거리를 하고 있었을까? 그러나 아마도 우리 역사서에 달거리 한 날짜가 정확하게 기록된 여자는 보희 밖에 없을 것이다. 그날은 달도 밝은 625년 정월 대보름날이었다.

화랑세기에는 그날의 사건이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이에 앞서 문희의 언니 보희寶姬가 꿈에 서악西岳에 올랐는데 큰 물이 경성에 가득한 것을 보고 불길하다고 생각했다. 문희가 비단 치마로 바꾸었다. 그 후 열흘 만에 유신이 공과 더불어 집 앞에서 축국蹴鞠을 했는데 곧 정월 오기일午忌日이었다. 유신이 일부러 공의 치마裙를 밟아 옷섶의 옷고름을 찢었다. 들어가서 꿰매기를 청하니, 공이 따라 들어갔다. 유신이 보희에게 시키고자 했는데 병 때문에 할 수 없어서 문희가 이에 나아가 바느질을 하여 드렸다. 유신은 피하고 보지 않았다. 공이 이에 사랑을 했다. 1년쯤 되자 임신을 했다.
그 때 공의 정궁부인正宮夫人인 보라궁주寶羅宮主는 보종공의 딸이었다. 아름다웠으며 공과 몹시 잘 어울렸는데, 딸 고타소古陀炤를 낳아 공이 몹시 사랑했다. 감히 문희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비밀로 했다.]

김유신의 계략에 사고를 친 김춘추는 사랑하는 정처 보라가 이미 있었고 또한 갓 태어난 딸 고타소의 재롱에 묻혀 살았기에, 선뜻 문희를 집으로 데려가 후처로 삼을 엄두를 내지도 못했고 문희의 아랫배는 불러 오르기 시작했다. 김춘추 첫 딸 고타소는 후일 김품석의 부인이 되었다가 642년 백제의 장수 윤충이 대야성을 함락시킬 때 남편의 손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316) 김관의는 의종(1146~1170 재위) 때 검교군기감을 역임했고, 문서들을 수집 정리하여 의종때 편년통록을 저술하였다. 현재는 전해지지 않는다. 고려사의 고려개국의 전설 등에 관한 내용을 이 책에서 채록하였다.

참고문헌: 삼국사기, 삼국유사, 화랑세기 – 신라인 그들의 이야기(김대문 저, 이종욱 역주해, 소나무), 화랑세기 – 또 하나의 신라(김태식, 김영사), 신라속의 사랑 사랑속의 신라(김덕원과 신라사학회, 경인문화사), 한국사데이터베이스(db.history.go.kr)


박선우 (박선우태권도장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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